낮에 퍼슨웹 주최의 북포럼에 패널로 참여해 작가 장정일씨와 흥미로운 만남을 가졌다. 화제는 <공부>(램덤하우스, 2006)와 <장정일의 독서일기7>(랜덤하우스, 2007) 두 권의 책이었고 나의 몫은 "단순한 작가 강연회나 독자와의 대화 수준이 아닌 독특한 지점의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는데, 어젯밤에 KBS에서 지난 1월에 방영된 'TV, 책을 말하다'란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다시 보면서(이 방송분에서 작가의 답변은 <독서일기7> 말미에 수록돼 있다) <공부>에 대해 '재탕' 질문을 던지는 건 별로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작가 장정일의 지난 20년'에 대한 독자로서의 감회부터 먼저 적기 시작했는데, 토론문은 그걸로 그냥 분량이 다 차버렸다(하기야 오전에 쓴 것이니 더 쓸 시간도 없었다). 그걸 약간 간추려서 옮겨놓는다. 

 

먼저, 이 자리에 패널로 초대해주신 퍼슨웹과 북포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책’이나 ‘공부’라면 늘 접하는 것이고(“당신이 그거 말고 잘 아는/잘하는 게 뭐있어?”라는 게 자주 듣는 소리죠!) 특히 오늘 독서토론의 대상이 평소 제가 즐겨 읽고 좋아하는 작가 장정일 선생님이라고 해서 제 역량과는 무관하게 초대에 흔쾌히 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가볍게 시작하겠습니다. 가볍게 시작하자면 개인사부터 들추게 되는데(^^), 사실 장정일의 첫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부터가 ‘파격’이 아니었나요?(게다가 이 시집은 ‘김수영문학상’ 수상 작품집입니다. 수상자의 면면을 보자면 장정일은 이성복, 황지우의 뒤를 잇는 ‘우리시대의 시인’이었던 것이죠). 그때가 저로선 대학 1학년 때인데 ‘근엄한’ 시들만 읽어오다가 이런 시를 맞닥뜨렸을 때의 ‘쾌감’은 요즘 다시 맛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시는 이런 식이었지요.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 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작은 술
상추 4 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그렇게 해서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로 마무리되는데,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이 보다 더 유익한 시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장정일은 제게 문학의 모든 아우라를 제거한 말 그대로 ‘포스트모던’ 시인이었습니다(제 생각에 장정일은 시작(詩作)의 패러다임을 ‘시쓰기’에서 ‘타이핑하기’로 바꾼 ‘혁명가’입니다). 앞에 적은 이성복, 황지우의 ‘모더니즘’과 비교해보아도 그 차이는 확연합니다(*작가의 흥미로운 전언에 따르면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 실린 몇몇 시편들 덕분에 북한에서 '장정일'은 '반미시인'으로 문학사에서 거명되고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시인 장정일을 언제나 <무림일기>(1989)의 시인 유하와 나란히 떠올리게 됩니다(장정일 & 유하). 두 사람은 진작에 ‘시의 종언’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연찮게도 두 사람은 모두 시를 떠나게 됩니다(한 사람의 소설은 자주 영화화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 영화를 만드는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도 친연성은 없지 않네요). 


어쨌든 처음 두 권의 시집 이후로 저는 장정일의 책을 대부분 사들여서 읽은 것 같습니다. 그게 80년대말 90년대초인데 당시에 가장 인기 있었던 작가는 장정일도 좋아하는 밀란 쿤데라였죠. 개인적으로 매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은 두 작가여서 언제나 두 사람을 짝으로 떠올리게 됩니다(장정일 &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도 유행이었지만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중에 <독서일기>를 통해서만 간접독서를 하게 됩니다. 해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쿤데라-하루키-장정일’이란 계열을 떠올리게 되는데 앞의 두 사람은 노벨문학상의 단골 후보 아닙니까?(장정일은 “내 소설을 쓰레기”라고 토로하지만, 개인의 기억속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은 좀 다른 것이죠.)

 

 

 

 

 

 

 

 

 

 

21세기가 시작하자 ‘행복한책읽기’란 출판사에서 ‘우리시대의 인물읽기’라는 기획서를 내는데, 그 첫권이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2001)였습니다(그 이전에 <작가세계> 1997년 봄호가 ‘장정일 특집’이었습니다). 장정일 문학에 관한 아주 유익한 자료가 되는 책이고 저는 바로 사서 읽은 책입니다(그 사이에 ‘거짓말 사건’, <내게 거짓말을 해봐> 때문에 빚어진 필화가 있었는데, 분량상/시간상 생략합니다. 이때의 프레임은 ‘장정일 & 마광수’입니다. 이른바 ‘사회적 공모에 의해 암살’된 ‘수난자 장정일’인 것이고, 그가 마광수에 비유한 표현을 빌면 “우리시대의 모차르트”였던 것이죠).  

 

그 책의 기획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 문학사에서 그렇게 낯설었으면서도 또 그렇게나 빨리 새로운 세대에게 전파된 것이 장정일이었고 장정일의 문학이었다. 장정일 이후의 문학은 독자적으로 이미 상당히 세를 굳힌 듯하다. 그리고 어느새 그가 문학 논의의 중심에서 슬그머니 밀려난 듯한 이즈음 우리가 그에 대한 책 한 권에 이르는 조명을 새삼 시도하는 것은 그가 일으킨 파장이 아직도 한때의 소동이 아니라 제대로 탐구되어야 할 사건이라고 여기는 까닭이다.”(구광본_소설가)

요는 그가 세기말/세기초 한국사회의 ‘문제적 인물’이었다는 것이죠(‘우리시대의 인물’이었다는 것이고요). 그건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2002)이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아시다피시 그는 그해 겨울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리하여 ‘장정일 & 노무현’이 되는데(대단한 거 아닙니까?), 장정일이 노무현과 함께, 노무현보다 먼저 다루어졌다는 사실을 혹 <공부>로 장정일을 처음 만나는 (87학번이 아닌) 87년생 독자들은 실감할 수 있을까요?


아무려나 두 사람은 ‘비주류’의 코드를 공유하는 우리시대의 화두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아시다시피 이 비주류성은 ‘장정일 & 김기덕’이 공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작가가 <공부>를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노무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런 책을 내게 된 것은 2002년 대선 때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집필실을 얻어 글을 쓰고 있었는데, 옆 사무실의 중년들이 ‘노무현 그거 빨갱이 아닌가?’라며 성토하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장정일의 ‘공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우리사회의 ‘상식 혹은 희망’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닐까요?(출판사 문구로는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고 돼 있지만, 우리 사회에 언제 ‘인문학’이 만개하고, ‘상식 혹은 희망’이 만발했었는지는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그건 작가 자신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 게, 요즘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그의 문학이 아니라 그의 <공부>입니다!

 

 

 

 

 


 

 

 

 

<공부>로 아주 넘어가기 전에 ‘소설가 장정일’도 잠깐 언급해두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나 <보트하우스> 같은 작품을 좋아하고(<보트하우스>는 특히나 러시아문학과의 관련성이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온 편지>를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데(소위 장정일을 읽기 위한 코드를 다 ‘드러낸’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소설 대부분은 이젠 <선집>을 통해서만 읽어볼 수 있습니다(그래도 그는 ‘2만부 작가’였는데 말입니다!).



 

 

 

 

 

 

 

<중국에서 온 편지> 이후에 뜻밖에도(아주 뜻밖은 아니었지만) 작가는 <삼국지>로 나아갑니다(그는 “40세 때부터 <삼국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중년이라는 나이와 <삼국지>라는 역사 장르가 저의 독서 습관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라고 적는다). 문화일보에 연재되는 걸로만 가끔 읽었을 뿐 저는 그의 <삼국지>를 완독하지는 않았습니다만(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려 10권이고, 저로선 꽂아둘 만한 서재가 없습니다), 이게 기본적으로 80년대 주류 작가였던 이문열의 <삼국지>를 겨냥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장정일 vs 이문열).

 

이 구도에 황석영의 <삼국지>가 끼어드는 바람에 작가로서는 ‘물 먹은’ 경우가 된 게 아닌가 싶지만(판매가 상당히 저조합니다) 어쨌거나 우리시대의 삼국지 작가로서도 장정일은 앞 세대의 두 작가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이문열-황석영-장정일). 하지만, 다른 작가들이 가지 않은 장정일만의 길을 그는 개척했는데, 그건 바로 ‘의사pseudo 저자’로의 길입니다.

 

 

 

 

 

 

 

 

 

지난 1994년 <독서일기> 1권을 처음 내면서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린시절의 내 꿈은 이런 것이었다.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 시인․소설가라는 꿈에도 원치 않았던 개똥 같은 광대짓과 함께 또 한권의 책을 출간하고자 머리말을 짜내고 있는 나는 ‘불행한 저자’이다.(...)

 

내가 한 권의 낯선 책을 읽는 행위는 곧 한권의 새로운 책을 쓰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의 양부가 되고 의사pseudo 저자가 된다. 막연하나마 어린 시절부터 지극한 마음으로 꿈꾼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누가 얼굴을 똑바로 하고 자기 자신을 쾌락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단어가 가진 엄밀한 의미를 좇는 쾌락주의자가 되고 싶다” (강조는 나의 것)

 

 

 

 

 

 

 

 

그러한 그의 독서관은, 하지만 변화하게 됩니다. 재즈에서 클래식으로 음악에 대한 그의 취향이 변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일기> 10년째인 2004년에 낸 6권의 서문은 이렇습니다. “보혁갈등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지난 몇 년간을 보내면서, 나의 독서관은 개인적으로 내밀한 쾌락을 좇아가는 독서에서 약간 다른 것으로 진화했다.(...) 시민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 책과 멀리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독서는 민주사회를 억견(臆見)과 독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대립쌍은 ‘시민 vs 우중’ 혹은 ‘좋은 시민 vs 나쁜 시민’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쾌락주의적 독서’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교육을 위한 ‘계몽(주의)적 독서’로 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의 질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공부>와 <일기7>에서 읽을 수 있는 작가의 두 가지 집필계획은 두 가지입니다(저로선 가장 관심을 갖는 대목입니다). 

 

(1)선정해놓고 못 다 쓴(혹은 날려먹은) 30여 가지 주제로 <공부>를 한권 더 쓰기(하지만 그는 “공부는 저의 평생 친구입니다. 이 말은 무지가 평생 저를 따라다닐 것이란 뜻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공부>의 길로 가는가, 다시 <일기>의 길로 가는가, 혹은 둘 다인가? 그는 또 "한 주제로 묶는 게 성실로 여겨졌다“라고 적었다. 가령 그가 “의식적으로 포기했던” 문학작품 읽기는 다시 시작되는가?) (2)2002년 대선 이후의 한국 ‘풍속’을 관찰한 소설(가제는 <서울 금병매>로 돼 있다. 그에게 2002년과 곧 있을 2007년의 대선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공부>의 마지막 마무리 또한 우연찮게도 2007년의 ‘아마겟돈’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독서/공부론과 인문서평의 자리에 오게 되면 작가의 경쟁상대는 달라집니다(흔히 리뷰어로 통칭되지만, 여기엔 ‘서평가-서평자-서평꾼’의 급이 있다). 장정일과 유사한 포지션을 점유하는 이는 도서/출판평론가 ‘표정훈 & 이권우’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공부>(2005)의 강유원입니다(둘은 62년생 동갑내기이다). 요컨대, ‘장정일 & 강유원’. 작가도 읽어보았을 텐데, 먼저 포문을 연 건 강유원입니다. 그는 96년에 나온 <장정일의 독서일기2>에 대한 독후감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그의 비판은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작가에 대한 사전이해가 거의 백지상태라는 걸 보여준다).  

 

“두 번째 독서일기를 읽고 난 후 계속해서 독서일기를 사는 것은 책을 모으는 취미는 만족시켜 줄지언정 더 이상의 지식은 줄 수 없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독서일기를 읽었을 때나 두 번째 독서일기를 읽은 지금이나 놀라운 것은 장정일이 참으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별로 어려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정일의 독서는 아주 폭넓은 듯하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진 않다. 자신이 소설가이므로 당연히 소설을 가장 많이 읽는다. 가끔 인문사회과학이 끼어 있다. 어쩌면 인문사회과학서적은 ‘젊은 시절’에 많이 읽었을 테니까 이제는 별로 안 읽는지도 모르겠다.(...) 장정일은 많은 분량의 책을 읽지만 그것이 지식으로 축적되는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구슬은 많지만 그것을 꿰어서 이론적 줄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또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대해서는 단순한 내용 요약만을 하고 있는 것도 그가 책읽기를 통해서 많은 것을 얻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정일은 객관적인 데이터에 상당히 무관심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책>)

 

물론 우리는 <공부>와 <일기7>의 장정일이 더 이상 강유원이 비판하고 있는 장정일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그 변화의 분기점은 <삼국지>인가, 혹은 2002년 대선인가?)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하지만 그 공부 때문에 부당하게 폄하되는 것은 없는 걸까요?

 

 

“내 무지의 근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상급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는 결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때 내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서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의 열정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우표 수집가나 난을 치는 사람을 지식인으로 존경할 수 없다.(<공부>, 머리말) 

그럼으로써 장정일은 지식인으로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리하여 그의 공부론과 지식인론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토론을 시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겨우...

07. 10. 06.

P.S. 곁가지 멘트들이 빠져서 토론문이 다소 싱겁게 읽힐 수는 있겠다. 작가에 따르면 시는 더 이상 쓸 수가 없고(그가 어느 책에선가도 적어놓은 것이지만, 그가 보기에 모든 시인에게 첫시집이 곧 '유고시집'이다. 이후엔 그보다 더 뛰어난 시집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고로, 두번째 시집을 내면서부터 시인은 '현역'이 아닌 '명예시인'이 된다. 전세계의 12마리쯤인가 있다는 시마(詩魔)가 빠져나간), 생계 때문에 쓰기 시작한 소설은 그나마 괜찮을 걸 쓰게 될 때쯤 문학판이 파장 분위기가 돼 버렸다. 그가 가장 욕심을 부리는 건 '정식'으로 데뷔한 부문이기도 한 희곡쪽(언젠가는 걸작을 써주길 기대한다).

나는 장정일의 이 세 가지 자기상이 모두 의미가 있고 우리문학에 기여한 바가 있으며 따라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나도 우표 수집가를 존경하지는 않지만 시인은 존경한다. 명함에 '시인'이라고 새겨서 다니는 시인들 말고 진짜 시인들). 포럼이 끝나고 잠시 나눈 사담에서 작가는 러시아 작가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희곡들에 대해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경우 러시아에서는 연극으로도 공연된다고 알려주자 놀라워하기도 했다(이 작품은 곧 새 번역본이 출간된다). 그가 한번쯤 러시아에서 불가코프의 작품들이 어떻게 무대화되는지 볼 수 있기를 기원하지만(사실은 나도 못본 거 아닌가!) 여행을 싫어한다고 하니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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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정일판 우익청년 탄생기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05 00:30 
    문학 신간을 자주 검색해보지 않아서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작가 장정일의 신간이 출간됐다. <구월의 이틀>(랜덤하우스, 2009). 제목만 봐서는 9월에 나왔어야 하는 책. 여하튼 오랜만이어서(10년만이란다!) 반갑다. 인터뷰기사가 있기에 먼저 스크랍해놓는다.      연합뉴스(09. 11. 04) 10년 만에 새 소설 낸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아담이 눈뜰 때'
 
 
변호사A 2007-10-07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차에,
아주.. 아주.. 아주 잘 읽었습니다 ^_^

로쟈 2007-10-0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참에 몇 권 읽어보시길...

2007-10-07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7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7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0-07 22:56   좋아요 0 | URL
같은 '애독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