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3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미국 작가 돈 드릴로의 최근작 <제로 K>를 강의에서 읽는 김에 다루었다. 작가적 명성에 견주면 '약한' 작품에 속하지만 냉동보존이란 주제를 다룬 소설로서는 희소성이 갖지 않을까 싶다...


  














주간경향(19. 07. 22) 죽음의 선택, 어떻게 죽을 것인가


<제로 K>(2016)는 현대 미국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돈 드릴로의 최신작이다. 1936년생으로 이미 팔순을 넘긴 작가가 신작에 착수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완성되기까지는 <제로 K>가 그의 마지막 소설이다. 작가들의 노년작이 대개 그렇듯이 이 소설 역시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 그렇지만 동시대 주요 이슈를 정력적으로 다뤄온 작가의 이력을 반영하듯 소재는 특이한데, ‘냉동보존’이 그것이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화자 제프 록하트의 아버지 로스는 억만장자로 냉동보존 프로젝트의 주요 투자자다. 그런 관심은 불치병에 걸린 두 번째 아내 아티스 때문에 얻어진 것이기도 하다. 아티스는 아직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죽음 대신에 죽은 상태, 곧 냉동보존을 선택한다. 몸에서 필수 장기를 제거하고 캡슐 속에 넣어 냉동보존하는 것을 말하는데 뇌는 몸에서 분리해 별도로 보관한다.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지만 미래에 냉동상태에서 깨어나게 되면 뇌는 건강한 나노 몸과 접합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게 한다는 것이 냉동보존 프로젝트다. 로스는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자연사하기까지 아직 20년이 더 남아있지만 아티스를 따라 냉동표본이 되고자 한다. 로스는 “나는 한 형태의 삶을 끝내고 또 다른, 훨씬 더 영속적인 형태의 삶을 살겠다는 거야”라고 말한다. 비록 마지막 순간의 망설임으로 지연되지만 2년 뒤에 결국 그는 아내의 뒤를 따른다.

로스의 첫 아내이자 제프의 어머니 매들린이 아들에게 들려준 바에 따르면 로스 록하트란 이름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스스로 지어낸 것이다. 본명은 니컬러스 새터스웨이트였지만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냉철하게 생각하기 위한 계기로 개명을 결심하고 종이에다 후보가 될 만한 이름들을 적었고 거기서 고른 이름이 로스 록하트였던 것이다. 니컬러스 새터스웨이트가 로스 록하트로 재탄생한 셈인데 그것을 매들린은 ‘자아실현’이라고 불렀다.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선택해 성공한 자산가가 된 로스의 삶이 자아실현의 사례다. 그 연장선에서 로스는 죽음도 선택하고자 한다. 그의 생각은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죠. 하지만 죽는 것도 반드시 똑같은 방식이어야만 할까요?”라는 냉동보존 프로젝트 관계자의 말이 잘 대변해준다.

소설에서 이러한 로스의 선택과 대비되는 것이 제프의 여자친구 에마의 양아들 스택의 죽음이다. 스택은 에마의 전 남편이 우크라이나에 갔다가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시설에서 발견하고 미국으로 데려온 아이다. 부부가 이혼한 뒤에는 양쪽을 오가며 성장한다. 아직 10대인 스택은 우크라이나 민병대에 가담했다가 총에 맞고 전사한다. 죽음의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로스의 죽음과 스택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냉동보존 프로젝트는 지구라는 행성을 뒤덮고 있는 테러와 전쟁에서 종말론적 징후를 읽어내면서 그러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꿈꾼다. 로스의 죽음이 역사적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탈역사적 기획이라면, 스택의 죽음은 여전히 지옥과도 같은 현실의 엄중함을 증언하는 역사적 죽음, 역사 속의 죽음이다. 드릴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선택이 아닌,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죽음의 선택이 이 시대의 화두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19.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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