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칸트철학회 편의 칸트전집 가운데 <도덕형이상학 정초/실천이성비판>(한길사)이 출간되었다. 지난해부터 나오고 있는 이 전집의 3대 비판서 가운데서는 <실천이성비판>이 가장 먼저 나온 셈이다. 당연히 던지게 되는 질문. ˝이제는 읽어도 될까요?˝
철학전공자가 아니어도 칸트의 3대 비판서는 필독 고전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필독해야 하는 책은 아니었다. ‘필독 고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으로 보통 양해가 되는 책(다양한 <서양철학사>의 해설로 가름하면서). 핑계를 덧붙이자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었다. 내 경우도 학부 때인가 대학원 때 박영사에서 나온 최재희 선생 번역본을 갖고 있었는데 고시서적 같은 모양새로(한자어 투성이의 딱딱한 문장들) ‘고지식한 칸트‘라는 인상만을 심어주었다. 애초에 읽으려고 했다기보다는 모셔두려고 구입한 책이고, 몇번의 이사과정에서 행방도 묘연해졌다.
나중에 백종현 선생의 <실천이성비판>이 드디어 한글세대 번역본으로 출간되었지만 그때는 (강의할 책이 아니고서야) 철학고전을 공들여 읽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역시나 ‘소장도서‘로만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세번째 번역본이 나오면서 얼핏 세 차례 방문을 받은 것 같으면서 이번에도 부인하면 안 될 것 같다. 중요한 기로인데, 아마도 더 나은 번역본이 10년내 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걸 고려하면 내가 <실천이성비판>을 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굳이 읽어야 한다면 말이다(칸트윤리학의 개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검색해보니 최재희 선생본도 한글판으로 다시 나왔다. 이래도 읽지 않겠느냐는 압박인가. 일단은 책수집가답게 주문은 했다. 조만간 세권의 번역본을 나란히 펼쳐놓고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심해봐야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읽을 책은 많고 인생은 짧기 때문이다. 실천적으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