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책과 생각'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이번 이탈리아 문학기행을 기획하게 해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대해서 적었다. 당연히 여행가방에 넣고 갔던 책이었고, 현지에서 다시 음미해본 책이었다. 


















한겨레(19. 03. 15) 이탈리아 여행에서 찾은 위대한 것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독일에서 일약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된 괴테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바이마르 공국의 고문관으로 초빙받는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1786년 가을, 중년의 초입에서 괴테는 오랫동안 벼르던 이탈리아 여행을 감행한다. 바이마르의 대공에게조차 행선지를 숨긴 비밀여행이었다. 이탈리아 로마를 목적지로 한 그랜드투어는 당시 유럽 귀족층의 유행이었고 괴테의 아버지도 결혼 전에 일년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와서 이탈리아어로 쓴 여행기를 남겼다. 서른일곱 살 괴테로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필생의 과제가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휴양지 칼스바트에서 출발한 괴테는 이탈리아 북부 볼차노와 트렌토를 거쳐서 베로나와 베네치아에 이른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제국의 기억을 간직한 ‘세계의 수도’ 로마였는데 베로나에서 유적 가운데는 처음으로 원형극장을 보고서 경탄한다. 원형극장은 “민중들로 하여금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는 기분이 들게 하고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평지에서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보려면 서로 높은 위치에 서려고 다투게 되지만 원형극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모두에게 시야가 확보되는 극장에서는 모두가 주인이 된다. 괴테는 원형극장 자체가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각자가 주인이 되는 원형극장은 이탈리아 여행의 목적과도 무관하지 않다. 괴테는 그 목적이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위대한 것, 아름다운 것이라면 기꺼이 존경하려는 마음이 그의 타고난 성격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행복한 삶은 그렇듯 위대한 것, 아름다운 것과 매일매일 접촉하면서 사는 삶일 수밖에 없다. 그가 오랫동안 로마를 꿈꿔온 이유다. 목표한 날짜에 로마에 닿기 위해 괴테는 피렌체를 포함해 여러 도시를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친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에 입성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장관과 파괴의 흔적과 마주하여 경탄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마치 “커다란 학교”에 들어선 기분을 느낀다. 그러면서 “정신은 무미건조하지 않은 엄숙함과 기쁨이 넘치는 안정에 도달한다.”
















첫번째 로마 체류 기간까지를 다룬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1부는 실제 여행으로부터 30년이 지난 1816년에 출간된다(이탈리아 남부 여행의 기록까지 담은 최종판은 1829년에야 나온다). 여행시의 메모와 기록, 일기와 편지를 정리한 것이어서 세월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실감이 구현되어 있다. 어쩌면 그 30년의 시간은 이탈리아 여행이 경험하게 해준 진정한 재생, 제2의 탄생에 견주면 사소한 의미만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경험이다. <이탈리아 기행>이 여러 종의 번역본으로 나와 있지만 이 책의 용도는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에 들고 다니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이달초에 이탈리아 남부여행까지는 따라가보지 못했지만 밀라노를 경유하여 베네치아에서 로마까지 괴테의 동선을 따라가며 <이탈리아 기행>을 손에 들고 수시로 펼쳐보았다. 괴테처럼 장기 체류를 감행할 형편은 아니었지만 위대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체감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괴테는 “마흔이 되기 전에 위대한 것을 연구하고 습득해서 나 자신을 성숙시키고자 한다”고 서른일곱에 적었다. 각자가 자신을 성숙시키는 과제에 나이 제한이 있을 성싶지 않다. 마흔 이후에도 우리는 위대한 것을 연구하고 습득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여행 이후에 완성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괴테는 예술과 여행 경험이 시민계급이 귀족계급과 대등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기행>은 그 경험의 가치를 실증해준다.


19. 03. 15.
















P.S. <이탈리아 기행>이 책으로 출간된 것은 실제 여행으로부터 30년 뒤인데(기사에서는 '20년 뒤'라고 나갔는데 착오다), 그것은 괴테가 1811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자서전 <시와 진실>의 연장선상에 놓이기 때문이다(전체 4부로 구성된 <시와 진실>은 괴테 사후인 1833년에 완간된다). <시와 진실>은 출생부터 1775년 바이마르에 부임하기까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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