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강의가 끝나면 다음날 강의준비로 넘어가야 하지만 막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 틈에 눈이 간 책은 마크 릴라의 <분별 없는 열정>(필로소픽)이다. 오래 전에 초판으로 읽었는데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읽어볼 의향도 있다. 개정된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같이 빼낸 원서에는 저자의 새 후기가 추가되었다.
저자가 ‘분별없는 열정‘이라는 제목으로(원제를 직역하면 ‘분별없는 정신mind‘이 되려나) 겨냥하는 건 하이데거에서 데리다에 이르는 20세기의 간판 철학자들이다. 이들이 자아도취에 빠져 전체주의 정치를 옹호했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의 공저자인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만 저자는 자유주의 입장의 정치철학자다. 그런 입장에서 주요 철학자들을 논평한 것으로 읽을 수 있겠다. 어느 만큼 동의할 수 있는지, 혹은 동의할 수 없는지 따져보는 게 독서의 포인트.
마크 릴라의 다른 책으로는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필로소픽)도 있는데 얇은 책이어서 가까이 두었음에도 어느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게 책들과의 숨바꼭질이다. 그러니 눈에 띄었을 때 읽기 시작해야 하는 것. 독서에도 ˝내일은 없다˝는 좌우명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내일 강의를 앞두고 이 책을 읽는 건 분별없는 열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