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에 실린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다루었다. 


















한겨레(19. 11. 11) 베니스의 상인, 걸음마 뗀 자본주의에 던지는 질문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유대인이라면 단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대금업자 샤일록이다. 하지만 ‘1파운드의 살’ 재판으로 잘 알려진 이 작품에서 제목의 ‘베니스의 상인’이 가리키는 인물은 샤일록이 아니라 안토니오다. 주인공이 안토니오라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작품의 초판 판권란에 적힌 제목이 ‘베니스의 상인 혹은 베니스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각본’이었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이 작품은 <베니스의 유대인>으로 불려도 무방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과연 <베니스의 상인>은 누구의 드라마인가.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베니스의 상인>은 안토니오의 의미심장한 대사로 시작한다. 몇 종의 번역본에서 이렇게 옮겨진 대목이다. “진정 알 수 없네. 내가 왜 이처럼 울적한지.”(이경식) “정말이지 내가 왜 이렇게 우울한지 모르겠어.”(박우수) “난 정말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네.”(최종철) 즉 우울증에 빠진 상태인데, 안토니오는 그 원인을 알지 못해 답답해한다. 친구들은 모험적인 투자로 그의 전 재산이 현재 바다에 떠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떠보지만 안토니오는 부인한다. 자신의 재산이 올해 운수에만 달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은 가능성은 사랑인데, 안토니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근심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오랜 친구이면서 친구 이상의 사이인 바사니오가 거액의 상속녀 포샤에게 구혼을 하려는 상황이어서다. 바사니오는 구혼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안토니오에게 마지막으로 큰돈을 빌리려 하지만 재산을 모두 상선에 띄워보낸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의 차용에 보증을 서기로 한다. 그 상대가 평소에 경멸하던 대금업자 샤일록이다.

















상인으로서 안토니오는 상품거래를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 기독교인으로서 그는 유대인을 혐오하며 대금업을 조롱한다. 이자로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합당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친구를 돕기 위해 거래에 나선 안토니오에게 샤일록은 위약 시 살 1파운드로 배상하게 하는 차용증을 작성하게 한다.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자신하지만, 기한을 어기게 된 안토니오는 계약대로 자신의 살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그 사이에 바사니오는 포샤를 아내로 얻기 위한 상자 고르기 시험을 치른다. 구혼자는 금과 은, 그리고 납으로 된 세 상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금이나 은을 고른 다른 경쟁자들과는 달리 바사니오는 소박한 납상자를 선택한다. 화사한 금이나 통화의 주된 수단인 은과 달리 납은 아무것도 기약해주지 못하지만 납상자에는 포샤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다. “겉을 보고 선택하지 않은 자”로서 바사니오는 상자 고르기 시험을 통과하여 포샤의 합당한 배우자가 된다. 이 시험의 교훈은 무엇인가. 분명 금과 은이 납에 비하면 더 높은 금전적 가치를 갖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기독교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차용증서의 조항을 관철하려는 샤일록의 요구에 따라 열린 재판정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법학박사로 분장한 포샤가 샤일록의 요구를 들어주되 1파운드의 살 외에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샤일록에게 파멸을 안기는 것이 결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대목은 재판정에 들어선 포샤가 “어느 쪽이 상인이고, 어느 쪽이 유대입니까?”를 묻는 장면이다. 과연 상품거래로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 안토니오는 금전거래로 이윤을 추구하는 대금업자 샤일록과 얼마나 다른가? 기독교의 가치관은 상업은 정당화하되 오직 대금업만 금지하는가? 자본주의 발흥기의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베니스의 상인>은 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19. 01. 11.
















P.S. <베니스의 상인>은 3월의 이탈리아문학기행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읽었는데, 그와 함께 베네치아 관련서들도 구하고 있다. 다수의 책이 나왔었지만 상당수가 절판된 상태. 구한 책도 있고 구하려는 책도 있다. 최대한 읽고서 베니스를 방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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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9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0sun 2019-01-1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니스의 상인에 주목하는,
왜 제목이 베니스의 상인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해주었던 샘의 강의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
그래서 셰익스피어 작품 강의중 가장 기억에 남네요.

로쟈 2019-01-19 00:05   좋아요 0 | URL
네 셰익스피어는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심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