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1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최근 강의에서 읽은 김에 다뤘다. 강의에서는 문학동네판으로 읽었는데, 펭귄클래식판 외에 시공사판 <인간의 대지>에도 <야간비행>이 수록돼 있다...
















주간경향(19. 01. 14) 인생의 해결책,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알려진 대로 소설가이자 조종사였다. 21세 때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됐고 전역한 뒤에는 항공사에 입사해 우편기를 몰았다. 초창기 비행기는 계기나 안정장치가 불안정해 사고가 나기 일쑤였고 생텍쥐페리 역시 여러 차례 불시착과 구사일생의 경험을 한다. 그는 이 경험을 시적인 문장으로 기록하는데, 그의 문학의 본령은 <어린왕자>보다는 이 비행문학에 놓인다. 1931년에 발표한 <야간비행>도 그 가운데 하나다.


배경은 남미의 부에노스아이레스다. 파타고니아와 칠레, 파라과이에서 각기 출발한 우편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오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항지에서는 이들 비행기에 실려온 우편물을 자정 무렵 다시 유럽으로 싣고 갈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다. 이 모든 항공노선의 총괄책임자는 리비에르다. 태풍으로 기상조건이 악화돼 우편기들의 안전한 도착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리비에르는 당시만 해도 위험부담이 컸던 야간비행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인물이다. “그에게 사람이란 빚기 전의 밀랍덩이에 불과했다. 그는 이 재료에 영혼을 불어넣고 의지를 창출해야 했다.”

리비에르는 조종사들에게 엄격한 규칙을 지키게 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을 극복하게끔 하고자 했다. 그런 자기 성취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고 그는 믿는다. 강한 규율은 조종사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동시에 강렬한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칠레에서 오는 우편기가 먼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 조종사 펠르랭은 험난한 폭풍우를 사투 끝에 빠져나왔다.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그는 예사로운 일인 양 말한다. “리비에르는 마치 대장장이가 제 모루에 대해 말하듯 자신의 직업과 비행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는 펠르랭을 사랑했다.” 

그런데 파타고니아에서 날아오는 우편기는 사정이 좋지 않았다. 안데스 산맥의 뇌우 속은 ‘시계 제로’인 상황. 게다가 태풍으로 인해 정박할 곳이 없다. 연료를 다 소모하게 되면 불시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조종사 파비앵은 절대적인 선택의 순간에 태풍의 틈 사이로 보이는 별빛에 마음이 끌린다. 함정인 줄 알았지만 빛에 너무도 굶주린 나머지 그는 고도를 올리고야 만다. 비행기가 솟구쳐 오른 순간 기체는 평온을 되찾지만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이라는 걸 파비앵은 안다. 

파라과이에서 온 우편기는 무탈하게 도착하고 이제 두 대의 우편기에 실려온 우편물들이 유럽행 비행기에 옮겨진 뒤에 예정된 시각에 출발할 것이다. 세 대의 우편기 가운데 한 대가 실종됐지만 그것은 과정의 일부다. “리비에르가 겪은 패배는 어쩌면 진정한 승리에 한 발 다가서는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오로지 전진하는 사건만이 중요하다.” 

실제 생텍쥐페리의 상사를 모델로 한 리비에르의 태도는 생텍쥐페리의 행동주의적 문학관을 집약하고 있다. 행동은 때로 행복을 파괴하고 사랑 또한 무력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생텍쥐페리는 리비에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인생의 해결책이란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새해를 맞아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된다. 


19.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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