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전업강사이자 서평가의 일상인데 거기에 독서가의 욕심까지 보태지면 읽는 책은 수십 권으로 불어난다. 책상과 식탁, 그리고 침대에 쌓여 있는 책이 그렇게 수십 권이다. 물론 책장과 방바닥에 있는 책들도 언제든 눈에 띄는 대로 소환된다. 손택의 일기와 노트를 묶은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이후)는 방바닥에 쌓여 있다가 소환된 책. 지난주엔가 주문했던 원서를 받은 참이라 생각이 나서 펴보았다. 첫 문장에서 깼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머니는 자서전을 쓸까, 하는 생각을 열없이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손택의 말이 아니라 엮은이인 아들 데이비드 리프의 말이다(아들이 상속자이자 편집자이니 작가의 운명으로는 나쁘지 않다). ‘깨작거리기 시작했다‘가 무얼 옮긴 것인지 찾아보니 ‘toyed‘를 옮긴 것이다. ‘열없이 깨작거리기‘는 toyed desultorily‘란 옮긴 것이고. 의미야 다의적이어서 번역에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말 ‘깨작거리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만 갖고 있는데 아들이 어머니에게 쓸 수 있는 말인가.

‘toy‘는 동사로는 ‘만지작거리다‘의 뜻을 갖고 있고 ‘desultorily‘는 ‘산만하게‘‘띄엄띄엄‘ 등이 사전적 의미다. 내가 옮긴다면 그냥 ˝자서전을 써볼까란 생각을 이따금 내비치셨다˝라고 했겠다. ˝열없이 깨작거리기 시작했다˝는 너무 강한 문체적 표현이고 뉘앙스도 너무 부정적이다. 이런 번역은 역자를 의식하게 된다. 번역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으면 역자의 개입이 있는 게 아닌가 원문을 찾아보게 되는 것. 번역자의 존재를 드러내느냐 마느냐는 번역론의 유구한 문제지만 나는 필요할 때 드러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물러나 있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는 입장이다. 번역자의 처세술이다.

손택이 깨작거렸다는 문장에 놀라 급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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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9-01-01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깨작거리기‘라는 제목에 놀라 급하게 읽고 생각없이 좋아요 했다가 급하게 좋아요취소 했습니다. 내용은 공감하지만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공개적으로 번역자를 까대시는 것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서재의달인답지 않은 처세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댓글을 남기는 것도 저답지않은 처세입니다만.

로쟈 2019-01-01 20:46   좋아요 3 | URL
네 요즘은 번역에 대해 자주 시비하지 않는데 역자의 선택이 의외여서 다른 의견을 적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아침부터‘는 피했습니다.

카키모카 2019-01-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좋은 지적 같네요. 안지는 별로 안됐지만 서재 잘 보고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9-01-03 22: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분홍돌고래 2019-01-11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어 선택에 대한 의견 제시는 번역자를 ‘까대는‘ 것과는 층위가 다른 일이라 봅니다. ‘깨작거리다‘는 보통 부모나 선생 등 연장자의 행위를 묘사하거나 설명할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