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오랜만에 동네서점에 들렀다가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민음사) 개정판을 손에 들었다. 판권면을 보니 1판이 나온 게 1999년이고, 올 9월에 2판이 나왔다. 하지만 옮긴이 서문을 보건대 초판이 나온 건 1992년이므로(당시 <포스트모던적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서광사판도 같이 나왔다) 무려 26년만에 개역판이 나왔다. 리오타르의 불어판 원저는 1979년에 나왔기에 거의 40년 전 책이다. 개역판은 초역의 오역과 오류들을 바로 잡았다고 하므로 사실 이제 읽는다고 해서 늦은 건 아니다. 게다가 포스트모던의 여러 쟁점들은 여전히 진행형이기도 하고.
아마도 90년대 중반 대학원 시절에 두 종의 번역본을 영역본을 참고해가며 읽었던 듯싶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대유행기에 가장 많은 참고의 대상이 되었던 책이 바로 <포스트모던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미스터리한 일 가운데 하나는 프레더릭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가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이 이야기된 저작이면서도 말이다). 사실 책의 핵심은 서론에 곧바로 나온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을 ˝거대서사에 대한 회의˝로 곧장 정의하고 있어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상세한 해명이 <포스트모던의 조건>이기도 하다.
책을 다시금 손에 든 건, 근대문학과 근대성에 대한 강의를 수년간 해오면서 갖게 된 생각들을 포스트모더니즘론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싶어서다. 말하자면 생각의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대보려는 것이다. 성장기 아이들만 그런 체크가 필요한 건 아니다. 삶이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라면 지식과 생각의 성장은 각자의 도덕적 의무다. 20년이 지나고 30년이 흘러도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 꽤나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야심한 시각에 이구아수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넘긴다. 아직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