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10년 넘게 해온 일이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보름밖에 남지 않았지만, 기록해놓는 의미도 있겠기에. 하기는 연말도 너무 자주(!) 겪다 보니 이제는 예사로운 일로 여겨진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에서는 앨리스 먼로의 작품집을 고른다. 두번째 단편집 <소녀와 여자들의 삶>과 마지막 작품 <디어 라이프> 사이의 <착한 여자의 사랑>까지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디어 라이프>는 리커버판). 이미 소개된 소설집들까지 포함하면 앨리스 먼로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예술 분야에서는 일본의 지휘자이자 음악 감독 오자와 세이지가 나눈 두 권의 대담을 먼저 고른다. 하루키와의 대담(<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 이어서 오에 겐자부로와의 대담집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포노)가 최근에 출간되었다. 교양서 가운데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지와인)도 얹는다. '아름다움을 보는 감각'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수업이다. 



2. 인문학


페미니스트 신학자 강남순 교수의 책들을 고른다. <젠더와 종교>와 <페미니즘과 기독교>(동녘) 등이 개정판으로 나왔고, 에세이 <매니큐어 하는 남자>(한길사)도 추가되었다. "저자 강남순은 촛불혁명 이후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미래는 젠더ㆍ나이ㆍ성적 지향ㆍ장애ㆍ빈부ㆍ종교ㆍ인종 등 다양한 차별과 배제를 넘어 ‘모든’ 인간의 자유ㆍ평등ㆍ정의가 실현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으며 우리 안에는 세속적 이득을 넘어 인간됨을 지켜낸 ‘저항자’들이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자 강남순이 품은 ‘희망’이다." 그런 희망을 같이 가져도 좋겠다. 



불경 번역의 새 역사를 썼다고 평가되는 역경가 구마라집의 평전이 최근에 나온 가장 놀라운 평전이다. 공빈의 <구마라집 평전>(부키). 자연스레 지난 여름에 나온 후나야마 도루의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푸른역사)도 떠올리게 된다. '한자문화권에서 불교의 탄생'이 부제. "성경의 번역보다 방대한 규모로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인류 최대의 지적인 유산인 불교 경전의 한역 작업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규명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는 <곰브리치의 불교 강의>(불광출판사)도 꼽을 수 있는데, 우리가 아는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아니라 불교학자 리처드 곰브리치다.   



3.사회과학


불평등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룬 버지니아 유뱅크스의 <자동화된 불평등>(북트리거)와 '그린'으로 포장한 기업의 실체(우리에겐 '녹생성장'이란 게 있었다)를 폭로한 카트린 하르트만의 <위장환경주의>(에코리브르), 그리고 여성주의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의 <담대한 목소리>(생각정원)를 고른다. 길리건의 대표작 <다른 목소리로>는 절판된 지 오래인데, 다시 소개됨직하다. <담대한 목소리>의 책소개는 이렇다. "길리건은 20년 이상 여아들의 발달을 연구하며 그들이 가부장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소녀들의 목소리에는 저항과 연대의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 그 목소리는 우리 안에 묻혀 있던 다른 목소리를 일깨우고 공명하여 가부장제를 비롯한 모든 잘못된 권위에 저항하고 성별을 넘어 연대할 힘을 발휘한다. <담대한 목소리>는 젠더 전쟁이라 할 만큼 분열된 한국 사회에 인류애를 회복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갈 대안을 제시한다."



국내서로는 김두식 교수의 신간 <법률가들>(창비)과 엄기호의 신간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나무연필), 그리고 구정은 기자의 칼럼집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후마니타스)을 고른다. <법률가들>은 "해방 후 법조계의 형성 과정을 치밀하게 복원한 책"이다. 



4. 과학


초파리 연구의 가치와 성과를 정리한 스네퍼니 엘리자베스 모어의 <초파리를 알면 유전자가 보인다>(까치)와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의 <플라이룸>(김영사)을 고른다. <플라이룸>은 '초파리, 사회 그리고 두 생물학'이라는 부제처럼 좀더 넓은 시야에서 유전학과 생물학, 그리고 사회 속의 과학의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15년만에 재출간된 다윈의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갈라파고스)도 다시 읽어볼 만하다. 



진화론 분야에서는 읽을 거리가 밀렸다. 척추동물의 진화를 다룬 매튜 보넌의 <뼈, 그리고 척추동물의 진화>(뿌리와이파리)는 '오파바니아' 시리즈의 명성을 잇는 책. 뼈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그에 견주어 피터 엉거의 <이빨>(교유서가)는 이빨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첫단추' 시리즈의 책이지만 이빨에 대해 더 자세한 책은 국내에 나와 있지 않을 것이다. 칼 짐머의 <진화>(웅진지식하우스)는 업데이트된 교과서 같은 책.



5. 책읽기/글쓰기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한문화)는 강렬한 제목 덕분인지 글쓰기 책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존 가드너의 <소설의 기술>(교유서가)과 <장편소설가 되기>(걷는책)는 좀더 직접적으로 창작의 교본 구실을 하는 책. 


  

책읽기 책으로는 문유석 판사의 독서에세이 <쾌락독서>(문학동네)와 용인 수지의 마을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의 서평집,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북드라망)이 눈길을 끈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의 <같이 읽고 함께 살다>(느티나무책방)는 전국의 독서공동체 사람들을 만난 기록이다. 저자는 "제주에서 강원까지 전국에 흩어진 독서 공동체 스물네 곳을 일일이 발로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만났고 기록으로 정리했다. 알라딘도 그런 공동체에 속하는지 궁금하다...


18. 12. 16.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편하게 고를 수 있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문학동네)다. 세계문학전집판으로는 민음사판도 이번 겨울에 출간되는 것으로 안다. 기존의 다른 번역본으로는 동서문화사판과 범우사판도 있다. <닥터 지바고>에 대해서는 내년 1월에도 강의를 하게 될 것 같다. 닥터 지바고 함께 맞는 2019년이라(참고로 지바고는 1929년에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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