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째 동행한 감기와 작별하고 정신을 가다듬는 중이다. 이번주 강의자료를 준비하다가 니체의 유고들을 마저 주문하고 실존주의 관련서도 추가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니체와 실존주의가 연결되는 대목도 있는데, 공통의 뿌리를 지목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를 들어야 하리라(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 도스토예프스키와 헤겔의 관계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 내년 과제 가운데 하나다.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지만 좀더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프랑스문학 강의에서 이번주부터 앙드레 말로를 다루는데 조만간 사르트르의 대표작들도 읽게 될 예정이다. 실로 오랜만에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 대학에서 강의한 게 거의 이십 년 전이다). 전보다 사정이 나아진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니체의 관계, 그리고 실존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명확하게 해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책장에서 눈에 띄어 빼온 메리 워낙의 <실존주의>(서광사)를 읽으면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로 말하면,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관심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 관심은 사랑과 연대에 대한 관심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여정이었으니,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이해는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에도 필수적이다.

니체의 <권력의지>(부글북스)가 새로 번역돼 나와 구입했다. 니체 전집에서는 유고 19권-21권에 해당한다. 여동생이 악의적으로 편집했다고 해서 악명 높은 책이기도 한데 대조해볼 수 있는 전집판이 있기에 어떻게 ‘편집‘되었는가도 살펴볼 수 있겠다.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그리비)도 침대에 놓여 있는 책인데, 사르트르의 타자와 레비나스의 타자를 오랜만에 대놓고 비교해볼 참이다. 아, 이 정도만 해도 일거리가 적은 건 아닌데 전체 일정에 견주니 표도 나지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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