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강의가 있어서 대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달에는 제주와 충북을 제외한 전국에서 강의가 있는데(광역시를 따로 따지지 않는다면) 충남에서는 천안과 대전에서 서너 차례씩 강의가 있다. 그래도 KTX 덕분에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고, 그렇기에 가능한 일정이기도 하다. 이번주에만 하더라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이반 부닌, 마크 트웨인, 에밀 졸라,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카프카, 카뮈, 카잔차키스 등의 작품을 강의한다(세보니 열 명이군).

가끔 강의에서 다루는 작가와 작품을 세다가 스스로 놀라고는 하는데 처음 강의하는 거라면 한주에 열 명을 강의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의 경험 덕분에 가능해졌는데 이번주에 처음 강의한 작품은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한 편이다(그래도 평균적으로는 매주 한두 편 가량 새로운 작품을 강의에서 다룬다. 그것만 하더라도 연간 50편이 넘는다). 각 국가나 대륙별 강의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데, 수년 내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흑인문학만 다루면(오세아니아문학은 목표에 들어있지 않다) 나로선 장정을 마치는 게 된다. 세계문학 일주다.

러시아문학과 작가들 중심의 강의에서 소위 큰그림을 갖고서 세계문학으로 관심을 확장한 건 4,5년 전 영국문학 강의 때부터다. 그 이듬해 프랑스문학 강의가 내게는 ‘발견‘의 계기가 되었는데 세계문학 이해의 대강을 그때 마련할 수 있었다. 근대문학을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사이에서 보고자 한 게 핵심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각 국민문학의 의미는 개별적인 문학사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당장 독일에서의 셰익스피어나 러시아에서의 괴테 등에 대한 이해가 누락되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만 하더라도 푸슈킨과 고골만으로 해명할 수 없다. 동시대 발자크와 디킨스의 수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 근대 이후 세계문학의 특징적 양상이다(동아시아 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구도와 범위의 세계문학은 나도 대학에서 배운 적이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이지만 배운 것을 강의하는 게 아니라(이건 전달이라고 해야겠다) 배우지 않은 것을 강의한다. 하지만 그 강의에서 배운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기에. 포부가 있다면 누군가 이런 방향으로 나보다 더 멀리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런 바람에서 내가 걸어온 경로를 틈나는 대로 적어놓는다. 누군가 작품과 이론서를 부지런히 읽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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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8-11-0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을 다니시는 것도, 강의에서 다루시는 작품 범위가 넓은 것도, 매번 경탄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건강이 염려되기도 하고요. 한 작가에서 세계 문학의 흐름을 짚어내고 문명사도 보여주셔서 강의가 항상 좁았던 눈을 뜨게 합니다~^^ 부지런히 따라 읽어야겠습니다.

로쟈 2018-11-08 23:43   좋아요 0 | URL
문학이 어디까지 아는지 저도 알고 싶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