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두 편의 시를 쓰고 두 개의 강의를 했다. 다른 건 하지 못했다. 아니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뭔가 더 해봐야 한다. 강의준비든 원고준비든. 지난봄부터 쓰기 시작한 시는 세보니 176편이다. 연말까지 200편을 쓰는 게 목표였는데 요즘 페이스로는 아마도 이번 겨울까지 써야 목표를 채울 것 같다. 반타작을 하더라도 시집 한 권 분량은 채운 셈. 20년 전에 중단한 시작 이력을 우연히 다시 되살리고 싶었고 그렇게 되었다. 그걸로 만족한다.
세계문학강의도 전체 규모를 고려하면 후반부로 향하고 있는데 내년에 전체적인 윤곽을 그린 책도 낼 예정이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 30년간의 관심사를 정리하게 되는 셈. 더 구체적으로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뒤를 잇는 책(그는 <소설의 이론>을 도스토예프스키론의 서론으로 썼다)을 나는 읽고 싶었고, 여차하면 내가 써보고자 했다. 사실 15년 전에 쓴 학위논문도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 대신에 ‘사회주의 이후의 도스토예프스키‘가 될 수도 있었다. 그때 썼다면 아마 지금 생각과는 다른 논문이 되었을 것이다. 늦어진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인 셈.
근대소설사에 대한 정리와 도스토예프스키론은 짝이 되는데 막연한 예상보다는 앞당겨서 책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30년간의 과제의 종결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어서 만감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살아왔던가 같은 느낌. 아마도 장성한 자녀를 결혼시킨 부모들의 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끝나간다는 느낌 말이다. 이런저런 책들을 포함하면 앞으로(10년간?) 20권의 책을 더 낼 듯싶다. 그러면 만년에 이를 터이다.
대학 1학년 때의 치기어린 포부는 한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소설, 그리고 한 권의 철학서를 쓰는 것이었다. 시는 적잖게 써보았으니 만년에는 소설과 철학서를 궁리하면서 보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게 살다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