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나 베란다에 빨래를 널 때마다
그리고 걷을 때마다
이건 아니었지 싶다
빨래건조대에 집게도 없이 널었다가
거두어들이는 빨래라니

빨래란 모름지기 옥상에다 널어야 하는 것
손빨래 대신 세탁기를 돌린다 해도
빨래는 옥상에서 말려야 하는 것
마치 식물처럼
빨래한테도 햇볕과 바람이 필요하기에

햇볕 받으며 마른 빨래는 촉감이 다르지
바람에 한껏 부풀어올랐던 빨래는
생각의 품도 다를 거야
흰 빨래는 그렇게 다시 희어지고
젖은 삶은 그렇게 생기를 되찾고

언젠가 옥상에 널었던 빨래가
소나기에 흠뻑 젖은 날도 있었지
부리나케 뛰어갔지만
소나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어
거둬다가 세탁기에 도로 넣을 수밖에

하지만 마음은 즐거웠지
다시금 헹궈지면서 빨래도 즐거웠을까
인생은 모험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빨래는 옥상에 널어야 하는 거지
집게로 집어서 빨랫줄에 널어야 하는 거지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빨래건조대에 누워 있는 것 같은 날
나는 옥상이 그리워진다네
이건 아니었지 싶으면서
햇볕과 바람과 소나기가 그리워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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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8-11-06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건조된 옷이 머금은 햇볕과 바람냄새 참 좋지요~^^ 하지만 요즘은 건조기가 다 해준다는..ㅋ

로쟈 2018-11-06 22:02   좋아요 0 | URL
편리해지면서 잃어버리는 것들도 많아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