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학기에 20세기 미국문학을 다루면서 드라이저에 이어 이디스 워튼을 읽었다. 두 대표작 <기쁨의 집>(1905)과 <순수의 시대>(1920) 강의가 일단락되었는데, 여유가 있어서 더 다루게 된다면 몇권 더 얹을 수 있겠다. 다행히 주요작들이 모두 번역돼 있는 상태인데, <순수의 시대>와 관련해서 같이 읽어볼 만한 작품들은 <암초>(1912), <그 지방의 관습>(1913), 그리고 <여름>(1917)등이다. <이선 프롬>(1911)역시 주요작이지만(<겨울>이란 제목으로도 번역되었다) 워튼이 즐겨 다루는 ‘옛 뉴욕‘과는 무관한 작품이다.

워튼의 작품들은 뉴욕 상류사회의 풍속도를 보여주는 사회소설(더 정확하게는 ‘사교계소설‘)로서 의미를 갖지만 주제적 차원에서는 여성 문제를 다룬 소설로 19세기초 영국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과 비교된다. 사회 속의 여성의 삶과 그 조건(혹은 굴레)를 두 작가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데, 워튼이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결혼뿐 아니라 이혼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당장 <순수의 시대>의 여주인공 엘렌(올렌스카 백작부인)은 남편의 곁을 떠나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려 한다. 비록 가족의 압력과 악화된 재정상황에 굴복하여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고 말지만 그런 ‘포즈‘조차도 희귀하면서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주체적인 결혼‘이 여성 주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성문학의 주요 주제라면 그에 이어지는 것은 ‘주체적인 이혼‘이다. 이혼 미수가 아닌 이혼을 다룬 워튼의 작품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워튼 자신은 1913년에 28년간 살아온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함으로써 하나의 전범이 된다(그녀는 곧장 파리로 건너가서 1937년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23살에 결혼했던 워튼은 이혼 이후에 24년의 삶을 더 살았다). 100년 전의 사례인데 여성문학의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21세기의 이디스 워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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