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 중 가장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으며 새로나온 책들을 둘러보다가 <황인숙인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삼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고종석의 독자라면 '인숙낭자'를 기억할 텐데, 바로 절친인 황인숙 시인이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책으로 묶였다. 



"세상에 척진 것도 모난 것도 없는 '고양이 시인' 황인숙과 세상에 까탈스럽고 문제 많은 고종석은 동년배에 성별을 넘어선 삼십년지기다. 맨 무릎을 맞대고 앉은 채 뇌출혈 후유증 이야기와 담배 끊으라는 잔소리가 오가고, 어린 시절 소년잡지 이야기에 순간 그 시절로 함께 돌아가는 영락없는 절친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의 자잘한 일상과 관심사를 따라가다 보면 편안한 친구들의 평범한 수다를 듣는 것 같다."


밑줄긋기를 읽다 보니 그간에 뇌출혈로 큰 수술을 받고 회복중이라 한다. 언젠가 들은 듯싶기도 하다. 알려진 대로 고종석은 트위터리언으로도 이름을 날렸고 많은 안티(적)를 만들기도 했다. 인숙 낭자의 질문과그에 답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황인숙: 윤필이는 네가 정치적 포부로 그리는 그림이 보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네가 펼치고자 하는 정치 프로그램이 획기적으로 가치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궁금해 했어. 자꾸 망상, 망상, 그러지 마. 그저 돈이 없어서 망상이 되고 만 빛나는 신념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 그때 진지하게 편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는 자꾸 농담으로 돌리려 했지…. 

너는 아마 트위터로 가장 크게 망한 사람일 거야. ‘망한’을 ‘망가진’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꽤 될 거야. 숱한 적을 만들고 친구도 여럿 잃었지. 트럼프도 망 트위터리언의 하나인데, 그에게는 지지 댓글도 많을 거야. 나는 네 트위터 글에 구십 분 동의했는데, 나 같은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고 짐작해. 그런데 네겐 악플만 벌떼처럼 따라다녔지. 그 차이는 트럼프에게는 있고 고종석에게는 없는 것, ‘권력’이 만든 거라고 생각해. 상처 많이 받았지? 


 

고종석: 상처를 아예 안 받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정도는 아닐 거야. 나는 소셜미디어에다 글을 쓸 때 논쟁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내게 시비 거는 사람들을 무시해 버리는 스타일이니까. 내가 그렇게 적을 많이 만든 것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직함 때문이기도 했어. 예컨대 이런 거야. 몇 년 전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였어. 나는 그 때 트위터에 ‘선생을 20년 이상 가둬놓은 파시스트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내가 선생의 책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다.’고 썼거든. 정확한 워딩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암튼 그런 요지의 글을 썼어. 그와 동시에 내 댓글창이 소위 ‘깨어있는 시민’들과 자칭 ‘좌파’들의 욕설로 난리가 났지.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후회하지 않아. 나는 신영복 선생의 책을 다 읽어봤는데, 그냥 세속의 지혜를 단편적으로 모아놓은 거야. 시인 류시화 씨의 번역서나 라즈니쉬의 책이 그렇듯. 사실 그 책들만 못하지. 신영복 선생에 대한 그 트윗 때문에, 당시에 경향신문 지면에 연재하던 〈고종석의 편지〉에서 신영복 선생 비판이 다루어지게 될까 봐 경향신문 편집진은 즉시 〈고종석의 편지〉를 중단해 버렸지. 사실 내가 그 비판을 예고하기도 했고. 심지어 신영복 선생께 보내는 편지를 탈고하기까지 했는데, 마감 직전에 경향이 나를 필자에서 자르더군.



아마도 못 부친 편지까지 포함해 <고종석의 편지>도 책으로 묶여 나오지 않을까 싶다. 황인숙 시인도 올해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시 '간발'을 포함한 새 시집을 나올 만한다. 검색해보니 <꽃사과 꽃이 피었다>(문학세계사)라는 시선집도 2013년에 나왔었다. 못 들어본 꽃소식이다. 뭐, 시집이 나온다고 내게 통지가 오는 건 아니니...


18.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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