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종교 문화와 무종교인을 주로 연구하는 미국 사회학자 필 주커먼의 책이 새로 나왔다. <종교 없는 삶>(판미동). 제목만으로도 전작 <신 없는 사회>(현암사)의 짝이 되는 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부제는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인데 그 불안은 신이 없는 사회와 종교 없는 삶에 대한 불안이겠다.

이 불안은 거슬러 올라가면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불안이기도 했다. 알려진 대로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깔려 있다. 세속화의 시대, 무신론 사회와 문화를 어느 정도 경험한 지금 이러한 불안 혹은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이 나옴직한데 <종교 없는 삶>이 그에 해당한다.

˝저자는 오늘날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종교적 태도인 무종교가 단순히 신앙 없음의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종교 없는 사람들의 삶과 가치, 경험을 조명해서 이들이 어떻게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중시하면서 살아가는지, 삶의 고난에 직면했을 때 자기신뢰를 어떻게 적용하는지, 죽음을 어떤 식으로 다루고 받아들이는지, 자율적인 성향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지, 이 세상과 이 시대의 한가운데서 삶에 경외감을 느낀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돕는다.˝

관건은 종교가 없더라도 사회적 협력과 공동체적 삶이 가능할 것이냐다(도스토예프스키 버전으로는 도덕이 가능하냐는 것).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걸로 보인다.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추천사에서 ‘종교 아닌 종교‘로서 경외주의를 제시한다.

“숨 막힐 정도인 종교의 도그마에서 벗어나면 삶과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지금껏 당연히 여기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된다. 이렇게 종교를 넘어서 모든 것을 신기한 눈으로 보며 사는 삶의 태도를 저자는 ‘경외주의(aweism)’라고, 그리고 이런 태도로 사는 사람을 ‘경외주의자(aweist)’라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절실한 ‘종교 아닌 종교’인 셈이다.”

종교 대신에 우리는 ‘종교 아닌 종교‘를 갖는 셈. 강의에서 나는 가라타니 고진의 어투를 빌려서, 고대 애니미즘의 고차원적 회복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수직적인 샤머니즘적 신앙 대신에 수평적 상호존중과 이웃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이웃을 죽이는 종교 대신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의 죽음을 통한 이웃사랑(그리스도의 핵심 가르침이다)의 회복이다(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도 그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백치>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르는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위대한 여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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