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9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크리스토퍼 헤이즈의 <똑똑함의 숭배>(갈라파고스)를 읽고 적었다. 능력주의의 신화와 그 실패를 다룬 책인데, 매우 포괄적이다. 리뷰에서는 분량상 일부만을 언급하고 말았는데,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로는 스티븐 맥나비 등의 <능력주의는 허구다>(사이)도 참고할 수 있다. 한편 <똑똑함의 숭배> 덕분에 로베르트 미헬스의 <정당론>(한길사)도 이번에 구입했다. 저자는 정당정치가 어째서 엘리트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가를 입증하는 저작으로 <정당론>을 인용한다...  



주간경향(18. 09. 03) 능력주의의 실패와 대중의 불신


미국의 정치평론가 크리스토퍼 헤이즈의 <똑똑함의 숭배>는 토마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덕분에 손에 든 책이다. 원제는 ‘엘리트 계급의 황혼’이고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라는 번역본의 부제에 저자의 문제의식이 압축돼 있다. 프랭크가 미국 민주당이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에서 엘리트 진보계급을 위한 정당으로 변신하면서 범한 패착을 지적한다면, 헤이즈는 엘리트의 실패와 그로 인한 대중의 불신이 문제의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엘리트주의는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지만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국가나 사회를 이끌도록 하자는 합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가리키는 다른 말이 능력주의다. 대중적인 용어로는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불리는 능력주의는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체제를 가리킨다. 저자는 미국에서 이 능력주의의 변질 과정과 그 원인을 해부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능력주의의 눈부신 성과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배신의 상징이었다. 인종이나 성, 성적 취향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능력주의는 진취적이지만 인간은 능력 면에서 기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다. 한 역사학자의 말을 빌리면 능력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희롱’이다. 능력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오바마는 전문가들의 판단에만 귀를 기울였던 엘리트주의자였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에도 빈부격차와 불평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저자는 그 원인이 사회 전체에 불평등을 용인하고 사익을 추구하면서도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 계층의 등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애초에 미국에서 능력주의는 시험제도와 학교교육,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시스템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지역적으로는 동부, 그리고 혈통적으로는 백인들이 중심이던 체제를 대신하여 등장한 새로운 시스템이었다. 능력주의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환영받았는데, 우파는 능력주의의 불평등 원칙에 끌렸고 좌파는 인습에 대한 저항과 다양성·개방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동성애자 인권이나 여성의 고등교육 확대, 인종차별의 합법적 철폐 등의 이슈들을 다루는 데 능력주의는 분명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집단행동이나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 능력주의는 무능력할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육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가난한 집안의 젊은 인재가 교육을 통해서 사회의 꼭대기층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한 엘리트가 연대의식을 갖는 것은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자신의 동료 엘리트들이다. 그런 엘리트들이 결정하고 주도한 일 가운데 하나가 부시 행정부가 벌인 이라크 전쟁이었다. 대중이 전쟁에 반대할 때 그와 반대되는 생각을 갖는 것은 똑똑함의 신호였다. 똑똑함의 숭배가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18. 0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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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머리칼 2018-08-3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네요

로쟈 2018-08-30 18:51   좋아요 0 | URL
평소 엘리트주의가 미심쩍었던 독자들에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