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이 올 리가 없지만 모두가
그런 표정이었으므로 나는
네가 오지 못할 거라고 믿었고
믿음은 백년만에 한번 피는 꽃도
능히 피울 수 있기에 나는 달력에다
X자를 그렸고 그건 네가 오지 못한다는
그런 표시였다 언젠가 입을 틀어막고
너를 위해 울었던가 우리는 자주
울먹였어도 그게 나중에는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했지 우리가 어쩌다 만난 것인지
그게 백년에 한번 있을 만한 일이었다고
너는 믿었어 믿기지 않는 믿음으로
강변을 걸었어 바람에 흔들리는 건
구름이었을까 멋쩍게 바람 맞은 날
모든 일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었지
그런 날 갈대들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하지
네가 오지 못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건 필요하고도 충분한 이유가 되지
분명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게 되지
네가 오지 못할 이유는 세상에나
단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도 분명하지만
그게 세상의 법칙이라니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자꾸 뒤집어지는 모래시계처럼
많은 쪽은 언제나 적은 쪽이 되고 말지
태연하게 시간은 모든 구도를 바꿔놓는 거야
그렇다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건 아니고
다만 전세를 거꾸로 바라볼 뿐이지
유정한 사랑은 언제 무정한 사랑이 되는지
그걸 알지 못하고서야 벗어날 수 없는 법
네가 오지 못한다는 연락은 올 필요도 없지
나는 네가 올 거라고 믿으니까
네가 올 수 없다는 게 너무도 분명하니까
너는 기적과도 같은 표정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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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08-0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시인가요!!!
가벼운 시어들인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잘못 느낀거라면 저의 무지를 용서하십시오ㅎ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며‘가
동시에 떠오른 까닭이 뭘까요

로쟈 2018-08-04 19:18   좋아요 0 | URL
제가 황지우를 떠올린 아니지만, 느낌은 잘 전달한 거 같습니다.^^

two0sun 2018-08-0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왕자 강의를 앞두고 이시를 읽고
삼십년만에 어린왕자를 다시 읽고
오십살에 만나는 어린 왕자는 어떤 너로 올런지.
내게서 오라는 연락을 삼십년만에야 받은 어린왕자.

로쟈 2018-08-05 01:22   좋아요 0 | URL
시를 읽는 맥락도 다양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