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8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토마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열린책들)을 읽고 적었다. 그의 핵심 주장은 미국 민주당이 노동자(민중) 정당에서 진보계급(전문직계급) 정당으로 변신하면서 당의 정체성과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클린턴과 오바마의 집권도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민주당의 착각을 더 공고하게 해준 것에 불과했고, 그것이 트럼프 집권의 빌미가 되었다. 10%를 위한 정당으로의 변신이 민주당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 프랭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리로서는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주간경향(18. 08. 06) 진보주의는 노동자들의 철학인가

 

토마스 프랭크는 국내에 소개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등의 책을 통해서 미국의 현실정치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날카로운 비판을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가 승리한 2016년 미 대선을 앞두고 낸 이 책에서도 그러한 특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1970년대 이후 미국 민주당이 걸어온 길을 해부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매우 신랄하면서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를 예견한 책으로도 주목받았다.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은 미국 민주당의 실패와 그 교훈이 우리의 현실에 여실히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인 공화당과는 달리 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민중의 당’을 자임해 왔다. 그리고 이 정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은 노동자 계급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 민주당은 차츰 전문직 종사자들의 정당으로 변신했다. 소득불평등과 노동계급 중산층의 붕괴가 가속화되었지만 민주당은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공화당을 1%를 위한 정당이라고 비꼬았지만 그 대안이라는 민주당은 10%를 위한 정당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지지층의 변동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오늘날 민주당이 전문직 계급의 당으로 탈바꿈해서인데, 이들 전문직이 오늘의 진보계급을 자처한다. 다르게 말하면 오늘날 진보주의는 노동자들의 철학이 아니라 지식경제 승리자들과 월스트리트 거물들의 철학이다. 이들은 ‘배운 사람들’로서 ‘창조적인 계급’이고 ‘혁신 계급’으로 칭송된다.   


문제는 이들 전문직이 노동 문제와 소득불균형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시민의 자유와 동성결혼 같은 사안에서는 매우 진보적인 입장을 갖지만 경제나 불평등 문제에서는 진보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능력주의의 신봉자들이어서다.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독점한 계급으로서 전문직은 자신들의 특권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수혜자로서 빌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를 묶어주는 공통점도 바로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믿음이다. 그들은 자연스레 행정부를 최고 명문대와 전문대학원 출신들로 채웠다. 두 사람은 모두 교육이 개인의 성공뿐 아니라 국가를 구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경제 문제는 교육 문제가 된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가난한 사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고 그래서 전문경영인 같은 엘리트가 되지 못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믿는다.” 요컨대 교육이야말로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고학력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당이 되면서 노동자로부터는 등을 돌렸다. 그 결과는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노동자 계급의 이탈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단호하다. “민주당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선택해서 나아간 방향은 국가를 위해서도 그리고 당 자체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실패였다.” 

 

18.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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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08-03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통령 이하 청와대가 휴가 중 이 책을 보았다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워서 만인을 위해 쓸수 있을텐데...책 제목 땜에 읽지도 못했겠네요 ㅎ

로쟈 2018-08-03 23:43   좋아요 0 | URL
읽을 사람은 읽겠죠. 한국정치와 관련해서도 프랭크 같은 저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young026 2023-07-16 17:0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 얘기의 주제는 ‘만인을 위해‘ 정치하면 진다는 것 같아서...우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