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트를 읽다가 막간에 눈이 맞아 손에 든 책은 <유학과 동아시아>(도서출판b)다. 헤겔 전공자인 나종석 교수가 동아시아의 유교 전통과 다른 근대(성)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데(<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 같은 대작도 펴냈다), 책에 실린 논문들 가운데서는 유학 전통과 한국의 근대성 문제를 다룬 ‘전통과 근대‘가 요점 파악에 요긴하다. 주로 장은주 교수의 유교적 근대성 이론을 소개하고(<유교적 근대성의 미래>에 수록) 이에 대한 비판의 형태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서구의 근대성과 구별되는 동아시아적 근대성, 더 구체적으로 한국의 유교적 근대성을 식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의 견해가 공통적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평가의 문제에서는 견해가 갈린다. 내가 더 공감하는 건 서구의 민주주의 가치이념과 유교적 근대성이 서로 충돌한다고 보는 장은주 교수의 입장이다. 그는 한국의 근대성에서 구현된 민주주의를 ‘주리스토크라시‘(사법지배체제)로 규정한다. 유교적인 정치적 근대성이 한국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체제는 민주주의와 법치의 외피 속에서 법을 수단으로 삼아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이 자신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억압적 지배체제다.˝ 그리고 이런 ‘타락한‘ 형식의 민주주의를 탄생시키는 문화적 배경이 ˝능력주의 사회의 원리를 최상의 가치로 삼은 유교적인 관료지배체제 전통˝이다. 이는 최근에 확인되고 있는 전 정권하 법원행정처와 대법원의 사법농단과 이에 대한 사법부의 오만한 대응행태에서 여실히 확인되고 있지 않은가.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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