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8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지난주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조지 레이코프와 엘리자베스 웨흘링의 대담집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생각정원)를 읽고 적었다. 두 사람의 공저로는 <이기는 프레임>(생각정원)도 같이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레이코프 전담 역자라고 할 나익주의 <조지 레이코프>(커뮤니케이션북스)는 리뷰를 쓴 뒤에 주문해서 오늘 배송받았다. 



주간경향(18. 06. 25) 은유에 의해 작동되는 정치적 입장


프레임론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제자와 나눈 대담집이다. '인지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가 부제다. 원제는 '당신의 뇌의 정치학'인데 인지언어학자로서 레이코프는 우리의 정치적 입장이 뇌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뇌의 사고는 은유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이 핵심 논점이다.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할 때 던지게 되는 질문이 한국어판의 제목처럼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같은 것이다.


의식적으론 진보이지만 왜 보수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끌리는가? 그건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추론보다 일상적인 무의식적 추론이 더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무의식적인 추론을 지배하는 것이 은유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은유는 천재적 재능의 산물이고 시적 창조력과 연관된다고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레이코프는 은유가 사고의 일상적인 작동방식이라고 말한다.


정치의 영역에서 대표적인 것이 '국가는 가정'이라는 은유다. 이 역시도 너무 흔해서 은유라고 지각되지 않는다. 국가를 가정으로 간주하기에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아버지 모형이 존재한다. 엄격한 아버지로서의 국가와 자애로운 아버지로서의 국가다. 


엄격한 아버지 모형에서 아버지의 임무는 악에 대항하여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허용되지 않으며 자녀들의 나쁜 행동을 벌하는 것이 부모의 도덕적 의무다. 여기서 아버지를 국가로 대체하면 정치적 보수주의의 국가관이 된다. 보수주의자들이 복지에 반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더 약하고 의존적으로 만든다고 믿어서다. 부자들에 대한 높은 과세에 반대하는 것은 자기절제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반면에 자애로운 아버지 모형은 감정이입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위계적 의사소통 대신에 자녀와 눈높이를 맞춘 열린 의사소통을 지향한다. 진보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자애로운 부모 모형의 국가에서는 시민들이 서로 책임을 지고 보살펴야 한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부를 사용한다는 '공동 재산의 원칙'은 한 가지 실례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금은 국가로부터 투자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과세로부터의 도피는 무임승차 시도에 해당한다.


문제는 우리가 정치 영역에서 이 두 가지 세계관을 모두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3분의 1이 이러한 이중개념 소유자다. 아마도 중도층이라고 불릴 만한 이들은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때 두 가지 모형 가운데 더 끌리는 쪽에 의지한다. 때문에 보수이건 진보이건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레이코프의 시각에서 보자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한국인의 무의식에서 아버지 모형이 이제 엄격한 아버지(박정희)에서 자애로운 아버지(문재인)로 변화해가는 징후로도 읽을 수 있겠다. 한반도 정세가 안보 패러다임에서 평화 패러다임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무의식이 먼저 변화할 필요가 있다.


18.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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