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은 덴마크의 경제사회학자 브룩 해링턴의 <국경 없는 자본>(동녘)이다. ‘전 세계 0.1% 부의 동선을 관리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부제로 슈퍼리치들의 자산관리사들을 다룬 책이다. 상위 0.1%의 재정 담당 집사라고 할까.

어젯밤에 이창동의 <버닝>을 보면서 불만스러웠던 부분인데 ‘한국의 개츠비‘로 불리는 벤이 영화에서는 종수의 시점으로만 다뤄지고 있어서 끝까지 미스터리한 인물로만 그려진다(물론 일부 들여다보게 한 면은 있다. 용산참사를 다룬 그림 전시장에서 전혀 부담없이 식사하는 부르주아 가족의 모습). 그러면서 거대한 계급간 차이가 모호하게 신비화된다(종수가 이해하지 못하듯 관객도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남겨진다). 발작적인 폭력은 그것이 실제이건 환상이건 간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창동의 다음 영화가 이 문제를 다시 다룰 수 있을까. 혹은 극영화라는 형식이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영화를 본 소감이다.

이 문제를 다루려면 작가지망생이 아니라 자산관리사의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원작자 하루키에 대해서도 똑같은 지적을 할 수 있다). <국경 없는 자본>의 서두에서 언급되는 작품이지만 찰스 디킨스가 <황폐한 집>에서 성취한 것을 오늘의 작가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상대로 해낼 책무가 있다. <국경 없는 자본>은 그런 문제의식을 심화하는 데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금 회피, 불평등 문제를 다룰 때 언론과 정부는 부자와 과세제도, 공공 정책에 초점을 맞춰왔다. 확실히 이들은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제도, 정치, 자본 흐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산관리사’라는 환원할 수 없는 요소가 여전히 남는다. 이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존재뿐 아니라 고객(부자)과 고객의 자산을 대중의 시야에서 지우는 것이다. 

<국경 없는 자본>은 이렇게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던 사람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며 독자가 이들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부자들이 정당한 몫의 세금을 내고 법규에 따르도록 하고 싶다면 부유한 개인이 아닌, 그들에게 봉사하는 대리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소개에도 나오지만 자산관리사의 역할은 ˝자신들의 존재뿐 아니라 고객(부자)과 고객의 자산을 대중의 시야에서 지우는 것이다.˝ <버닝>에서 벤의 존재가 수수께끼로만 재현되는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가 그 정체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면 영화 역시 더이상 현재성을 가질 수 없다.

<국경 없는 자본>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국제 조세피난처를 다룬 니컬러스 색슨의 <보물섬>, 그리고 슈퍼리치들의 세계를 내부에서 들여다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의 <플루토크라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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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5-27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닝의 원작이 하루키라는걸 알고나니
담주 영화를 보려던 마음이 싹 가시는~
(이창동 이름 하나로 보려고 했었는데)
책을 먼저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로쟈 2018-05-27 20:0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여러가지 생각해보게 만들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