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의 <메타정치론>(이학사)은 뜻밖에도 제때 배송되었다. 다른 책들과 함께 식탁에 놔둔 상황인데 그보다 먼저 펼쳐본 것은 최근 다시 나온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뮤진트리)다. 2014년에 나온 초판도 갖고 있지만 개정판(개정된 게 있는 건지?)도 기꺼이 구입했다. 부제가 ‘오에 겐자부로의 비평적 에세이‘라고는 하나 그냥 산문집이다.

주로 짧은 글들인데 그 가운데 ‘쓰는 생활 습관‘을 펼치니 소설을 써나가기 위해 필요한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답하고 있다. 오에가 추천한 책은 플래너리 오코너의 서간집이다. 오에가 추천할 무렵 일본에서는 마침 번역본이 나왔다는데 아직 한국어판은 없다(좀전에 주문한 참이다). 제목이 <존재하는 것의 습관>이고 분량은 600쪽이 넘는다. 오에는 오코너의 편지를 인용하는데 오코너 자신은 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마리탱의 영향을 받았다고(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매일 소설을 쓰는 습관도 시간을 들인 경험으로 길러짐으로써 쓰는 사람의 인격 그 자체가 되고 살아갈 마음의 준비를 해준다, 그것이 신앙을 지탱해준다고 그녀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코너는 한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소설처럼 긴 글을 쓸 때는, 자신에게 또 다른 누군가에도 가장 중대한 문제 이외의 것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0살 연상의 오코너에게 오에가 배우듯이 나는 오에에게 또 배운다. 종류는 다르지만 매일 쓰는 습관은 나도 갖고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은 존재하는 것의 습관이기도 하니까.

플래너리 오코너는 단편들이 유명한데 선집이 나와 있다. 장편 가운데서는 <현명한 피>가 대표작이다.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다룰 때 언젠가 강의에서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