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7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아룬다티 로이의 <자본주의>(문학동네)를 읽고 적었다. <자본주의>가 계기가 되어 로이의 모든 책들 구입하고 있는 중이다.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는 재구입했고,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가이드>는 구입내역에 뜨지 않아 이번에 구입했다. 로이와 함께 인도 출신으로 활발한 사회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판카지 미슈라의 <분노의 시대>(열린책들)도 이달에 나오는 걸로 뜨는데, 무탈하게 나오길 기대한다.  

 


주간경향(18년 5월 14일) 가난과 빚에 쪼들리는 8억명의 인도인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작은 것들의 신>으로 영어권 최고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소설로 거둔 놀라운 성취다. 하지만 다음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에 반하여 로이는 문학을 떠난다. 이듬해에 쓴 <상상력의 종말>이 작가로서는 절필 선언에 해당한다. 동시에 사회운동가로서의 출사표이기도 하다. 소설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여 그는 소설 대신에 다른 글쓰기를 실천한다. 그가 직면한 현실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한데 바로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현실이다.


'유령 이야기'를 부제로 한 <자본주의>는 인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자본주의 묵시록이다. 12억이 넘는 인구의 아대륙 인도는 신흥 경제대국이다. 한동안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수월성을 입증하는 사례처럼 보였다. 3억명의 신흥 중산층은 그러한 성장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로이가 직시하는 건 그러한 성장의 이면이다. 상위권 부자 100명의 자산이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8억의 인도인들은 가난과 빚에 쪼들리며 유령으로 존재한다. 


모든 것을 민영화하면서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는지 그 성장의 과실은 소수의 부자들에게 집중되었다. 돈을 토해내는 수도꼭지를 이들은 힘으로 점유하고서 토지나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미친놈의 소리라고 일축한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갖게 되는 '분수효과'로 인도의 최고 갑부는 세계 최고가의 집까지 갖게 되었다. 헬기 이착륙장이 세 곳이나 되는 27층짜리 개인 집이다. 


이러한 격차와 심화되는 불평등이 어떻게 가능한가. 세계 최대 규모의 인도 육군이 동원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사지로 내몲으로써다. 중앙인도를 개발하기 위해서 강제이주 대상이 된 원주민들은 마오주의자로 내몰려 죄목도 모른 채 수감된다. 항의하던 원주민 교사를 고문한 경찰은 무공훈장을 받고, 교사는 아직도 감옥에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은 인도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빈민과의 무자비한 전쟁을 벌이는 한편 자본가들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해서는 기업 자선사업이라는 기예를 통해 '인지관리'를 한다. 영화제를 후원하고 문학축제를 열며 발언의 자유를 외친다. 하지만 그 축제의 후원사들이 벌인 만행과 인도 정부의 은밀한 집단학살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에 담지 않았다.


로이는 자본주의의 이러한 전쟁과 관리의 기원으로 1920년대부터 출현한 기업 출연 재단들의 역사를 살핀다. 록펠러와 카네기 재단들이 창립한 외교협회부터 그들이 조종하는 월드뱅크와 IMF, 그리고 온갖 싱크탱크들이 인도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어떻게 학자와 교수, 관료, 기업 변호사와 은행가들을 움직이고 특정 담론을 유포시켜왔는지 폭로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위기상태이며 전쟁과 쇼핑이라는 해묵은 수법도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로이는 말한다. 로이와 함께 절망하고 분노하며 희망을 갖게 하는 책이다.


18. 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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