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마지막 일정으로 강의차 지방에 내려가는 중이다. 강의책과 함께 가방에 넣은 책은 지젝의 신간(Reading Marx)과 정한아의 시집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다. 소설가 정한아와 동명이인.

첫시집으로 <어른스런 입맞춤>(문학동네)가 있고 이번이 두번째 시집. 간간이 시작 메모가 달려 있는 게 특징이고 대체적인 안정감이 장점이다. 안정감은 논리에서 나오는데, 아무 시나 들춰도 되지만 가령 마지막 시 ‘하느님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죽은 자는 편리하다
모든 책임은 그에게 떠맡기면 되니까
울부짖을 목구멍도, 송사를 제기할 손가락도 없으니까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죄와 사랑은 이제 영원히
무저갱 속으로 침묵하고
침묵의 관은 넓고도 넓어
여차하면 삼라만상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

‘죽은 자는 편리하다‘는 단언 이후에 그에 대한 해명이 따르는 것, 이런 게 이 시인의 시다. -하니까가 붙는 것이다. 내지 그런 게 붙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해명이 불필요하다고 보는 시인들도 있다. 그들은 뒤도 안 보고 질주한다. 반면에 정한아는 뒤돌아본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철저하게 봉사하겠다는 건 아니다. 적당히 놀라게 하고 낯설게 하고 협박할 준비도 갖추었다. 그럼에도 문형 자체의 논리성은 견고하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은 ‘샬롬2‘에서도 마찬가지다.

웃지 않는 여자 거지 김태희가 나는 좋아
김태희는 만두가게 청년들이 붙여준 이름
밤새 축구 보고 감자탕집에서 나오다 만난 김태희는
역전 벤치에 양반다리로 앉아 해돋이를 보고 있었네
집이 없는 김태희
신들린 김태희
(...)

여기서도 ˝웃지 않는 여자 거지 김태희가 나는 좋아˝라고 쓰고 김태희가 누군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김태희는 만두가게 청년들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덧붙이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막상 요즘 시들이 이런 방식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한아의 시가 논리적이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걸 해설에서 조재룡 교수는 ˝정한아의 시는 가식이 없다˝고 평한다. 가식적인 시들이 많기에 눈에 띈다고 읽힌다.

아직도 눈이 피로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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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05-1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기는 것이 시집이어서 좋습니다^^

로쟈 2018-05-11 12:24   좋아요 0 | URL
읽기 편하기도 하고요.~

2018-05-11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