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는 코끼리인데 코끼리는
육중하고 엘리펀트는 불가해하다 왜
엘리펀트일까 모스크바에서
언제던가 구스 반 산트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손인지 발인지 코가 손인지
무엇이 코로 들어가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
콜럼바인 고등학생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사냥했지
아무렇지도 않게 난사했지 아니
조준했지 울면서 벌벌 떨기도 했었나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엘리펀트처럼
두 친구는 친구답게 냉정하고 무자비했다네
나는 아이다호의 구스 반 산트를 보러 갔다가
이런 구스 반 산트 같으니
이것이 엘리펀트인가 엘리펀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영화에서 난 코끼리를 본 건지 기억이 없는 건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방관했지 우리는 모두가 목격자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숨죽이고 있었다네 여기는 모스크바
콜로라도가 아니라오
두 친구가 돌아보기 전에 우리는 입을 씻기로
아무도 공중전화로 달려가지 않았다네
아무일도 없었던 그날
콜로라도 하늘엔 흰구름 떠가고
모든 상황은 민방위훈련처럼 종료되었지
왜 엘리펀트인가 묻지 않았네
그런데 이제 와서

엘리펀트, 그러니까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모스크바의 하늘에도 흰구름 떠가고
나는 불가해한 일들에는 불가해한
표정으로 응대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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