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강의와 관련한 책들을 읽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가까이 손에 잡히는 시집을 아무 곳이나 펴서 읽었다. <이연주 시전집>(최측의농간). 1953년생으로 1992년에 타계했다.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1991)이 데뷔시집이고 <속죄양, 유다>(1993)이 두번째 시집이자 유고시집이다. <시전집>에는 이 두권의 시집 수록작에다가 동인지 발표작들을 더 보탰다. 그래도 250쪽 가량이다. 한 시인의 생애.

너무 오래전 기억이어서 요절했다는 사실이 어렴풋하다. 다만 두 시집을 손에 들었던 것 같다. 1990년대 초는 ‘세계사 시인선‘을 문지나 창비 시인선만큼 자주 구입했던 시절이다. 학부 3학년부터 대학원에 이르는 시절. 진이정과 김신용의 시집이 기억난다. 이연주의 시집도 제목은 또렷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시들은 아니었다. 지금 다시 보니, 90년대풍이라는 느낌도 든다.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이미지들이 곧바로 시인의 세계관으로 읽힌다.

잡히는 대로 읽다가 와 닿는다고 고른 건 ‘좌판에 누워‘다.

나, 간 절은 자반 고등어다
홍제동 시장터에서 도매값 팔백원이다
비늘은 죄다 떨어져 나갔다
살은 질기다

칠백원, 어때요?
아줌마 너무하시네, 칠백오십원!

창시 빠져나간 뱃가죽 좌판에 늘어붙어
식탁으로 가는
길, 기다리는

해가 또 진다

이 시를 살린 건 2행 같다. ˝홍제동 시장터에서 도매값 팔백원이다˝. 반면에 비슷한 발상법으로 쓰인 ‘매음녀3‘은 실패한 시로 여겨진다.

소금에 절었고 간장에 절었다
숏타임 오천원,
오늘밤에도 가랑이를 열댓 번 벌렸다
입에 발린 ××, ×××
죽어 널브러진 영자년 푸르딩딩한 옆구리에도 발길질이다
그렇다, 구제불능이다
죽여도 목숨값 없는 화냥년이다
멀쩡 몸뚱어리로 뭐 할 게 없어서
그짓이냐고?
어이쿠, 이 아저씨 정말 죽여주시네

실패한 건 상투적인 장면 묘사라서다. 그래서 ‘좌판에 누워‘ 1연만큼의 힘이 시에 실리지 않는다. 시집의 시들은 대부분 ‘좌판에 누워‘와 ‘매음녀3‘ 사이의 스펙트럼에 놓이는 듯싶다. 좀더 구체적인 상황과 이미지를 그려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엘리엇의 용어를 쓰자면 좀더 예리한 ‘객관적 상관물‘이 필요하다).

다시 강의준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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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way 2018-04-13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실에 누워 - 하루하루(삼성병원 20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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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때 성매매 의혹받던 대한민국 최고 식물인간이다.

매년 받는 배당금만 팔백억이다

수족은 죄다 아들에게 갔다.

삶은 질기다.




살아는 있나요. 어때요?

한국 아훼들 너무한다. 걔 이미 갔어!




혼이 빠져나간 육체만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

증여만 남은

길, 기다리는




올도 누워 욕만 쳐먹는다.




사랑해요 쌈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