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처음으로 '에일리언'을 만들었을 때에는 이 영화가 시리즈로 제작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첫 작품이 흥행을 하면서 후속작을 제작하려고 했을 것이고 그 후속작의 연이은 성공으로 4편까지 제작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 '에일리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다른 포스트에서도 밝혔듯이 영화 '프로메테우스' 때문이다. 최근 새로 나온 '프로메테우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영화이고 이 새롭게 선보인 영화가 그가 만든 '에일리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된 영화 '에일리언'. 네 편이나 되는 분량이다 보니 모두 감상하는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총 네 편의 에일리언을 통해서 우선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제작기술의 놀라운 발전이다. 첫영화가 제작되었던 1979년. 변변한 장비도 없었고 CG라는 것도 아직은 없었던 시절. 모든 것을 특수효과로 처리해야했던 시절이라는 걸 감아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다. 역시 리들리 스콧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첫 영화 이후 두번째 영화가 나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러면서 그 사이 영화 기술도 많이 발전을 했다. 두번째 에일리언이 86년에 나왔고 세번째가 92년에 그리고 마지막이 97년에 나왔는데. 이처럼 시간적 간격이 생기다보니 각각에서 점차 발전해가는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첫번째 편에서는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는 CG가 뒷편으로 갈수록 늘어갔고 그 기술도 점차 향상되어 가는걸 볼 수 있는데. 하지만 그 당시의 CG라는 것이 오늘날과는 많이 달라서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고 오늘날의 눈높이에서는 많이 아쉬운 것들이 사실이다.

 

 

 에일리언 시리즈가 특이한 것은 총 네편의 시리즈가 각기 다른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점은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시리즈를 예상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편 한편의 성공이 다음 시리즈를 불러왔고 그러면서 각기 다른 감독들이 맡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에일리언의 각 시리즈는 각각 그 감독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뭍어난다. 3편과 4편의 감독은 잘 알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1편과 2편의 감독들은 그 스타일이 확실히 뭍어나는데. 1편같은 경우는 리들리 스콧감독이 맡았고 그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와 많이 닮았다. 2편 역시 그 감독의 영향력이 뭍어나는데 제임스 카메론이 보여주는 에일리언 2편 속의 세상은 '터미네이터'와 유사해 보인다. 그 영화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 에일리언 시리즈의 특징이다.

 

 

 에일리언 시리즈는 '에일리언'이라는 미지의 생명체가 등장하고 이것이 가져다 주는 공포영화다. 그간 공포영화라면 귀신이 나오거나 상어가 나오는 것이었는데 공포영화의 새로운 품목을 추가했다는 것이 한가지 의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공포영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SF를 접목시켰다는 점 또한 평가할 대목이다.

 우주공간이라는 낯선 세계와 그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미지의 생명체가 가져다주는 공포와 SF라는 두 장르의 만남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지만 에일리언 시리즈가 가진 단점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요즘 나오는 시리즈물처럼 처음부터 시리즈를 예정하고 있지 않았다는 앞서의 언급에서 시작된다. 최근 나오는 영화들은 처음 제작될 때부터 다음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만든다.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이라던가 '스파이던 맨', '엑스맨'과 같은 시리즈들도 모두 그렇다. 하지만 이런 유행은 최근의 추세다. 예전에는 영화의 속편이란 전편의 흥행여부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전편이 흥행에 성공해야 후속편이 등장했고 '후속편이 전편만 못하다'는 말도 그래서 탄생한 것이다.

 

 에일리언 시리즈는 그와 같은 예전 속편 시리즈를 그대로 따라간 영화다. 그러다보니 영화간의 유기적 연관관계는 극히 낮다. 게다가 감독들 또한 모두 다르다고 했던 점도 그렇다.

 이야기의 연계성이 낮고 각각의 이야기들도 에일리언과 '리플리'라는 주인공만 제외하면 각각 개별적인 영화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각각의 이야기는 다음편을 기약하지 않았던 탓에 다음편이 등장할 때에는 그 첫스토리라인을 잡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각각의 시리즈가 각기 별개의 캐릭터들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 '리플리'라는 구심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플리라는 인물이 각 시리즈를 연결하고 있는데 이 연결고리들을 어떻게 이어가야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연결고리가 가장 잘 연결된 것은 2편과 3편이다. 2편과 3편은 연결이 그래도 자연스러운데 그렇다하여도 완벽히 매끄럽지는 않다. 다른편들도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은 억지스럽다. 그것이 억지스럽고 매끄럽지 못하다고 하는 이유는 완전히 박멸한줄 알았던 에일리언의 재등장이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에일리언이라는 괴물 그 자체다. 그런데 한편의 이야기들이 끝날 때면 그 괴물은 그 이야기 속에서 죽어 버린다. 1편에서는 확실히 그와 같은 괴물 에일리언은 완벽히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에서 등장했던 에일리언 역시 모두 소거된다.

 하지만 각각의 후속편들은 그런 에일리언들이 부활하게 되고 그들의 부활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바로 이 지점인데 이와 같이 완벽히 사라진줄 알았던 괴물의 부활은 모든 공포영화가 갖고 있는 후속편의 공식들이다. 죠스시리즈도 그렇고 드라큐라 시리즈도 그렇고. 완벽히 죽고 사라진줄 알았던 괴물들은 어떻게든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부활하는 방편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예를 들면 알을 낳아놓았다던가 하는 것들. 혹은 아주 작은 세포덩어리가 남아 있었다는 것들. 그리고 그런 알이나 세포조각이 전편의 마지막에서 슬쩍 보여준다는 것 등.

 

 에일리언 2편의 마지막이 이 마지막 공식을 그대로 따랐고 그래서 다른 편들보다는 그나마 연결고리가 강하다는 얘기다. 1편과 2편 사이에는 그런 연결고리도 없었기에 편에서 재등장하는 에일리언 시리즈는 에일리언의 고향별이라는 컨셉에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는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부분이다.

 

 

 다음은 에일리언의 시간적 정리다.

 

 에일리언 시리즈는 앞서 본바와 같이 꽤나 많은 시간적 간격을 두고 제작된 것 만큼이나 그 안에 담겨있는 시간적 흐름사이의 차이도 크다.

 

 일단 에일리언 1편의 시간을 기준으로 2편은 그로부터 57년 뒤의 시간적 공간을 상정한다. 그나마 2편과 3편은 이야기의 연속성만큼이나 가까운 시일을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3편과 4편은 이야기의 맥락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만큼 그 시간적 차이도 무척 많은데 전편의 시공간과는 200년의 시간적 간격이 벌어진다.

 

 1편에서는 최후의 생존자인 리플리가 동면캡슐에서 우주공간을 방랑하다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57년이라는 기간을 둔다. 2편과 3편은 바로 연결되는 이야기 구조 덕분에 시간적 차이가 많지 않고, 3편에서는 완전한 죽음을 맞았던 리플리가 4편에서는 살아나는 컵셉이기에 200년이라는 시간적 갭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에일리언 시리즈가 보여준 것중에서 짚고 갈 점은 4편에서의 내용이다. 사실 4편에서도 '리플리'라는 주인공은 등장하지만 그녀는 전작 속의 리플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리플리라는 존재는 이미 3편에서 완벽히 죽는다. 그 죽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4편이 등장했고 어떻게든 리플리는 에일리언 시리즈에서는 필요한 존재다. 그런데 완벽히 죽은 존재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영화라지만 리얼리티가 극히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복제인간.

 사실 1997년이라는 시간은 21세기라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여러가지 변혁이 몰아친 시간이었다. 그중 하나가 복제양 '돌리'의 탄생이다.

 1996년에 세계 최초로 복제에 성공해서 세상에 알려진 복제양 돌리는 센세이션이었고 어떤 형태로건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그 중에 하나가 윤리적인 문제였는데 영화 4편에서는 그 윤리적인 부분에 대한 메세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다.

 

 에일리언 4편에서는 3편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리플리를 부활시킴으로서 복제인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했고 중간에 복제된 리플리의 다양한 실패작들이 시험관에 담겨있는 장면과 기형적인 실험체 리플리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생명복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메세지를 전한다.

 이 부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논쟁중인 부분인데 여하간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를 보면 항상 공통점이 있어왔는데 그건 바로 인간의 탐욕이다. 리플리를 비롯해 그녀의 주변인들은 에일리언이라는 미지의 생명체 때문에 공포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지만 그것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몇몇 인간들은 '에일리언'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 든다. 그 때문에 에일리언이라는 괴물과 엉뚱한 사람들이 사투를 벌이게 되고 헛된 피가 흐른다. 그 과정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한다.

 

 에일리언을 이용하려 드는 인간의 탐욕. 

 그렇지만 그와 같은 인간의 탐욕, 즉 에일리언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은 곧 파국을 맞게 된다.

 이 지점에서 생각해야할 것은 이같은 인간의 잘못된 신념이 비단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에는 많은 위험들이 존재하는데 인간은 그 위험원을 모두 통제할 수 있고 인간 스스로 그것들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그것이 바로 재앙이다. 사고다. 크건 작건 사고라는 것은 인간이 컨트롤 하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경종이다. 세상에서 컨트롤되고 관리될 수 있는 위험은 없다. 위험은 관리되고 있다고 보여지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요구한다.

 

 

 

 97년 4편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에일리언 시리즈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면 더이상 후속편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완벽히 다른 영화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있다. 최근에 나온 '프레데터 vs 에일리언'과 같은 영화말이다. 하지만 다시금 리플리와 에일리언이 나오는 영화는 없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영화의 감상이 좀 더 더울 때였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점이다. 납량특집으로 어울릴 것같은 공포영화. 서늘한 바람 속에서 보기엔 좀 아쉬운 영화다.

 

 

 시대적인 흐름과 영화 기술의 진보, 그리고 그때그때의 시대적 문제의식까지. 한마디로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

 아쉬운 점은 시리즈마다 따로노는 이야기들과 부족한 세계관이다.

 

 

 다만 최근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하면서 1편과의 또 다른 연계성을 잡아가는데, 에일리언과는 완벽히 다른 얘기가 될 것같다.

 

 

2012.9.15

단잠

 

 

 

 

 

 

 

 



  1. 프로메테우스 - 인류의 기원을 찾아
    from 가벼운 書齋_斷岑 2012-09-17 22:58 
    나는 누구인가? 거기에서부터 철학은 시작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오감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그 인지된 세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그 행위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 있으며 그 의미를 통해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순환적인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종국에 이르는 곳은 결국 나 자신이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그 '나'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 한다면 어쩌면 오만일지 모른다. 실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