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침묵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언어로 위장하여 다가오는 가식과 가짜 친교와 가짜 친절을 모두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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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되도록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며, 되도록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월급이 적어도 혼자할 수 있는 조용한 일을 찾는다. 그리고 서툰 외국어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더듬거리며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

‘외계인 무선통신’의 회원들은 지구에서 성공하기 위해 아등바등거리지 않는다. 이곳은 자신의 고향이 아니며 자신의 삶의 터전이 아니다. 지구는 그들에게 외계 행성이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원숭이 무리에서 명예로워지거나 이름을 날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이 지구 위에서는 그렇다.

지구로 유배되어 있는 삶. 고향을 상실한 삶. 그들은 이 지구라는 유형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이 지구를 탈출하는 꿈을 매일 꾼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주 끝까지 전파를 날릴 수 있는 강력한 무전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디쯤에 있는지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모르는 고향 행성을 향해 그들이 날리는 쓸쓸한 전파는 오늘밤도 달의 뒤편을 지나서 우주 끝으로 날아갈 것이다.

왜 그들은 강한 지구인으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정체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 p. 209

아이로니컬한 점은 타임스키퍼들이 모두 시간을 절저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매우 규칙적이고 정확한 삶을 선호하는 사람들이고 시간에 대해 강박적일 만큼 철저한 사람들이다.

"규칙과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요. 그래서 삶을 규칙적으로 만들어야 하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해요.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다음날을 위해 적정한 수면시간과 운동시간을 고려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는 다음 스케줄에 지장이 없도록 항상 면밀하게 신경을 써요. 주말에는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도 준비 해놓죠.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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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면이 없는 사람들과 체면을 차리며 의무감에 못 이겨 규격 바른 대화를 하는 자리에 앉으면 당장 가슴이 답답해진다.

...

어렵사리 말을 마친 후에도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 말 한마디를 꼭 해야 하는 건데 빠뜨렸다든가,
그 말 대신 이 말을 했어야 하는 건데… 따위 후회가 최소한 사흘은 간다.

-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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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도 사라지고 발랑까진 동네가 돼버린지 오래다. 단지 교통이 불편할 따름이다. 운전만 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살만할 텐데 그걸 배우기 엔 너무 늦은 나이에 차없이 살수 없는 동네에 둥지를 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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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별세계의 연속인 양 낯익은 거리가 낯설어져 잠시 방향감각을 잃고 우두망찰하게 되는 것도 어딘지 감미롭고도 쓸쓸한 영화의 뒷맛이었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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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p.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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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 사태를 좀 아시고 말씀하세요. 아이엠에프로 회사문을 닫을 참인데 취직이라니요. 남 복장에 비수 찌르는 겁니까, 사람들을 보세요. 모두가 죽을상이 돼 있지 않습니까. 젊은 후배 세대들이 지푸라기 같은 희망도 잡을 길이 없어 절망에 빠져 있는데 나이 잡술 만큼 잡수신 분이 어떻게 사태 파악도 못하십니까, 영감님 세대가 그처럼 까막눈으로 그렇게 사셨으니까 나라가 이 꼴 아닙니까. 취직 욕심을 내실 게 아니라 집에 가 참회나 하십시오. 나라 망한 책임을 통감하시고 참회나 하시라고요.

참말 되게 퍼붓더군. 난 그때까지 아이엠에프가 뭔지를 몰랐거든. 나라일이야 나리님들 소관 아닌가. 하긴 몰랐다는 것도 안될 일이긴 하지. 허지만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닌 건 분명하잖은가. 헌데도 직싸하게 욕을 먹었다네. 그러곤 다시는 취직운동에는 나가지 않았지.

대통령이다 장관이다 국회의원이다 하는 놈들, 그리고 돈쟁이 놈들도 다 빠져나갔는데 왜 내가 욕을 먹겠어. 난 나를 욕하는 세상을 향해 왕창 망해버려라, 하고는 이를 갈면서 칩거를 시작한 거야. 난 머릿속으로 놈들의 상판을 문둥이처럼 만들어버리는 상상을 하면서 홀로살이를 즐기고 있었던 거야. 상상만으로 신나데.

-P.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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