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곤이 평상에 궁둥이를 걸치는가 싶더니만 벌렁 등을 대고 누워 비비적거렸다. 그러곤 게으름이 닥지닥지 내려앉은 속눈썹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어어! 이어도여, 이어도여!"

‘또!‘

걸신들린 식충이마냥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박기곤은 제 입에 관한 일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게을렀다.

움직이는 걸 얼마나 싫어하느냐면, 박기곤이 입에 달고 사는 소리가 바로 이어도 타령이었다. 그 섬에 가면 일을 안하고도 살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사내로 나서 고작 일하기 싫은 마음에 이어도나 읊조리는 한심한 인생이라.‘ - p.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월이다 이제, 봄꽃들이 다 피었다. 속살대던 꽃들의 만찬은 수그러들고 이때부터 나는 고요해진다. 그야말로 두문불출하고 그간 느낀 것들을 풀어내기 위해 안으로 안으로 기를 모아야 한다. 그래서 여름엔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철저한 내 세계를 펼치기 위해 고독 견디기에 들어간다.

봄내 꽃을 피운 그것들도 결실을 위해서 뙤약볕 아래 몸을 뒤척이거늘, 응달에 들어앉은 사람으로서 내안의 것들을 익히기 위해 이쯤의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면 어찌 글쓰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고독 속에 드는 시간을 부러 자초한다.
그 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 중순부터 선들바람 불기 시작하는 8월 중순까지이니 길어야 두 달이다.

... 그동안은 최대한 혼자가 되어야 한다.
정 답답하면 산길을 걷고, 푸른 달빛에 마음을 얹으며, 바람에 덜어내야 한다. 이렇게 작정한 이상 집안의 대소사나 공식적으로 참여해야할 일 외에는 스스로가 차단해야 한다.

불러내는 사람들을 여과없이 만났다가는 자신을 지키기란 어렵다 분산되는 신경을 관리할 줄 아는 것도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므로 ...

사람을 안 만나고 견디어보는 것은, 속세에서의 도닦기’이다. 한편
한편의 짧은 수필에 혼을 불어넣기 위한 수양인 것이다. 영육간의 기를 모으는 기몰이 말이다. 즉 무색옷을 입은 승려들이 고요의 뜰에 들기 위해 자연 속에 잠기는 것처럼, 나는 내 안의 나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걸름망 장치를 하는 것이다.

이토록 애를 써가며 스스로가 고독 속에 드는 것은, 가장 맑은 정신을 만나기 위한 작업이다.

이때는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다 놓아야 한다.
오직 가슴속 깊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맑은 정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속에서 주관과 객관이 화합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나마 탁하지 않을 정도의 글줄기를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

... 세상에 내놓았을 때 독자가 매끄럽게 읽어내도록 하기 위하여, 쓰는 사람은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은 능숙하고 주도면밀하기만을 요구하는 이세상의 참담한 재앙이자 낯선 국외자다.

너는 걷고 또 걷는다. 주민공원의 솔숲을 헤매고 다니기도 하고 주립 도서관의 서가들 사이에서 마냥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너는 많은 타인들과 엇갈려 지나친다.

카페테라스에 앉아있을 때는 비록 전혀 못 알아듣긴 하지만, 옆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의 말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도 한다.

주립 도서관에서는 비록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아무 책이나 뽑아들고 읽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부단히 누군가와 말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뭔가를 하고 있다.

그들은 자꾸 뭔가를 해야만 지금 여기서 숨쉬며 살고 있다는 실감에 이를 수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네가 그런 타인들의 모습에서 역으로 확인하는 것은 부동 상태의 적요함이다.

그래서 너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오로지 최소화된 움직임 속에서만이 네가 추구하는 고립과 은둔의 평안에 다다를 수 있다고 너는 믿는다.

식물같은 수동태의 삶이야말로 너의 지향점일 수 있다.

걷고 또 걷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엇갈려 지나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너의 자발적 고립을 뒤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도심의 카페테라스, 콜로니알 광장, 그 인근의 영화관, 주민 공원의 솔숲, 주립 도서관, 동네의 미로 같은 골목들 그리고 다시 도심의 시가지. 너는 무작정 걸어다니며 그 일대를 멤돈다.

너에겐 어떤 목적지도 없다.

너에겐 어떤 이정표도 없다.

-p. 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의 말이 되었든, 어떤 형식으로든 언어로써 사람을 억압하고 싶지 않았다.

타향에서 고향을 떠올리면, 과거의 시간 쪽으로 닫혀있던 내 머리 속의 뒷문이 확 열린다. 과거의 시간은 내 뒤에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내앞에 있는 것은 현재의 시간이고 현재의 사건인 것 같다. 현재를 살고 있을 동안 그 뒷문이 저절로 열리는 일은 매우 드물다. 뒷문이 열리는 일은 ‘고향이라는 말이, 과거의 기억을 촉발하는 경우에만 일어난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현재화하는 미래의 시간이다. 미래는 현재가 되었다가 재빨리 과거화한다. 따라서 나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현재라는 이름의 접속사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고향 마을에 발을 딛는 순간이다.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에는 조상의 무덤이 있다. 우리가 살던 옛집이 있다. 과거에 우리와 상종하던 사람들이 조금도 달라진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나의 과거는 물론, 지금은 세상떠난 내 부모의 과거까지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고향에 마을에 발을 딛는 순간, 시간의 전후는 헝클어져 버린다. 혼자 고향을 방문할 경우엔 더욱 그렇다. 혼자 방문할 경우, 나는 접속사 노릇을 그만두고 그만 과거에 편입되어 버린다.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가서 다음날 할일을 정밀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헝클어진 시간을 수습하고 시계를 제대로 돌리는 일은 고향마을의 동구밖을 벗어나야 가능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인지, 내게만 일어나는 일인지, 고향이야기를 쓸때마다 나는 궁금해한다.

보라. 나는 고향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거기 눌러 살라고 명한다면 나는 거절할 것이다.

고향이라는 게 나라는 인간의 뿌리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고향이라는 것은, 내가 떠나야 할, 버려야 할 그 무엇이기도 했다.

-p.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나는 매일밤 노동에 지친 부모의 얼굴에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이나는 그런 자신에 절망하여 백화점이 내다보이는 압구정의 고급 커피하우스에 앉아온 정신을 집중하고 백화점 앞을 가득 메운 반짝거리는 여성들과 자동차들과 쇼핑백들에 친근감을 가져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 서울시 강남구에 익숙해져보려는 것이다, 두부공장이 있는 경기도의 쇠락한 소도시가 아니라, 물론 처음에 이나는 반짝거리는 옷들과 그옷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날씬한 여성들을 넋을 잃고 황홀한 눈길로 바라보며 벌컥벌컥 커피를 들이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하여 커피가 차갑게 식어갈수록 그런 여자들이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같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저 깊은 바닷속에 사는 납작한 해저생물이나 예쁜 애견 콘테스트에서 일등을 한 분홍색 푸들이나 아니면 물방울 모양의 유에프오를 타고다니는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나는 한껏 더 절망하여 커피하우스를 빠져나온다.

두부를 만든 돈으로 계속해서 이나가 좋아하는 고급 맥주와 고급 치즈를 사고 가끔은 값비싼 와인을 마시면 되지만 그것이 완전한 바보 짓,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짓, 이나의 상상 속 서울시 강남구 주민들에게 비웃음을 살만한 바보짓이라는 것을 이나도 안다.

다 무너져가는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한 이나의 삶과 잘 설계된 사회보장제도와 높은 실업률을 배경으로한 유럽의 치즈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나는 도저히 그 둘을 조화시킬 수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나는 치즈의 곰광이와 벽지의 곰광이 사이에서 잔잔하게 흔들린다. 그 잔잔한 멀미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린다. 잔잔한 멀미 속에서 조금씩 침식되어가는 삶.

- ‘이나의 좁고 긴 방‘ p.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