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달에 받은 선물인데, 이제 주섬주섬 읽고 있다. 

미들섹스의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책이고, 김용언님의 평보고 읽고 싶던 차에 한 권 고르라는걸 1,2권은 한 권인거라며 두 권 골랐던 책. 


간질간질하다가, 한번씩 윽. 하게 되는 이야기들, 메모해뒀다가 애인한테 이야기해주고 있다. 

처음 얘기해준건, 똥이야기. 연애소설에 똥이야기 나오는거 첨봤네. 우리 얘기 진짜 재미있는데, TMI 라서 말은 못하겠고. 여튼, 나는 어제의 2똥을 보고하고, 애인에게 쓰담쓰담을 시켰다(옆구리 찔러 칭찬을 시켰다).는 정도만 ㅎ 


두번째로 이야기해준건 여기에 쓸만하다. 


매들린은 레너드 앞에 계속 자기검열 하느라 섹스도 못 즐기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레너드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레너드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벌거벗은 채 방안을 가로질러 그녀의 가방안에 항상 넣어두는 '사랑의 단상'을 꺼내어 홱홱 넘겨 자신이 원하는 페이지를 찾아 침대로 돌아와 그녀에게 건넨다. 


사랑해. 

주템 / 사랑해


이 단어들을 읽자 매들린에게 행복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휙 들어 레너드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가 그녀에게 계속 읽으라고 손짓했다.


" 이 문형은 사랑에 대한 선언, 즉 고백이 아니라 사랑을 갈구하는 반복적인 발화를 나타낸다." 


별안간 매들린의 행복감이 줄어들고 위기감이 자리를 대신했다. 자신이 벌거벗고 있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양어깨를 웅크리고 침대 시트로 몸을 가리며 순순히 계속 읽어 나갔다. 


" 일단 첫 고백을 하고 나면 "사랑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며..." 

  

레너드는 쪼그리고 앉아 만면에 히죽거리는 웃음을 띠었다. 그때 매들린이 그의 머리에 책을 던졌다. 


이 글을 읽을 때 나의 심정은 <사랑의 단상> 이 하드커버이기를.. 레너드 머리에 모서리로 콱 맞았기를.. 


애인은 행동파이고, 나는 말파이다. 애인은 사랑 표현에 서툴고, 쑥스러워 하고, (사랑하긴 하겠지. 라는 말파의 의심을 늘 받고 있는) 아낀다. 나는 재채기하듯 사랑한단 맘이 문득 들 때면, 이미 입에서 뱉고 있다. 말파와 행동파를 두고 보면, 절대적으로 행동파가 훌륭하지만, 말파인 애인을 사귀고 있으니, 가끔 사랑해. 보고싶어. 좋아해. 말도 해줘야한다. 우리는 이년차를 지나 삼년차로 접어 들었는데,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정말이지.. 애인이 아직도 쑥쓰럽고 당황해하며 할 말을 찾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위에 나온 것 같은 이야기 우리도 몇 번인가 했다. 누구도 롤랑 바르트가 아니어서, 저렇게 딱 정리해서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이십년 전에는 몰랐던 거, 지금은 읽으니깐, 딱 알겠네. 내가 사랑해. 사랑해. 죽고 못 살며 말해도, 행동이 따라가지 않으니, 애인은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긴 하나. 왜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위해서 하라 그러는 것도 못해주나. 나라면.. 생각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 나도 한 때는 괴로워했다. 요즘도 가끔. 나는 정말 사랑하는데, 왜 집을 못 치우는 걸까. 왜 책을 다 못 팔아치우는걸까. 침대에 누워 책읽으며 괴로워함. 장난 같지만, 심각한 이슈다. 우리의 극과극 성향이 딱 부딪히는 지점이라서.


친구왈,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변하고 싶다고 해서, 변해지지 않지. 다만, 못 변해서 괴로워할 뿐이지. 라고. 음. 그래.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연애와 동거와 결혼이 다른데, 같이 살게 된다면, 서로를 인정하되, 변해야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좋은 쪽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 많다. 정리정돈청소를 하고 사는 것이 좋으니깐, 나는 그렇게 변하는데, 책을 끼고 있는거랑 다 버리고 파는거랑 어느 쪽이 좋으냐는 취향의 문제. (물론, 지금은 너무 많긴 하지만. 알아. 안다구.) 


상대방에게 좋은 모습이고 싶다는건, 사랑하는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지만, 변하는 건 역시 자신을 위해 변하려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나아지려고 노력해야지 서로에게 다른 어떤 원망이나 실망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자신과 주변을 좀 더 잘 돌보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응원해주고, 북돋아주고 있는 단계이다. <사랑의 생애>라는 책이 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와 함께 나이 들고 있고, 경험들과 함께 성숙해 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지치지말거라, 사랑이여. 


나는 말의 힘도 신봉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사랑해' 라고 자꾸 '선언'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지. 말이 아무리 끌어주려고 해도, 아무리 말에 가까이 가려고 해도, 움직이는 건 '몸'이란걸. 


오늘은 하루 종일 맘껏 아파도 되고, 자도 되고, 책 읽어도 되고, 청소해도 되는 알바도 데이트도 꽃일도 없는 날이다. 

어제 몇달만의 지독한 생리통으로 끙끙대고 있으니, 전복죽과 장조림 기프티콘을 보내주며, 나가서 사오라고. 일하러 가기 전에 챙겨 먹고, 약도 챙겨 먹으라고. 이것이 행동파 애인이 보여주는 사랑.


일하러 갈 시간이지만, 오늘은 휴무이니, 나는 청소를 하겠다. 연말에는 애인 집에서 하루, 우리 집에서 하루 보내고 싶다. 

우리집 춥다고 우리집에서 잘 때 애인 추워서 우는데, ㅎㅎ 집도 따뜻하고, 깨끗하게, 맛있는 거도 사서 하루 보냅시다. 

덜 추운 겨울 좋아. (넘 추우면 길냥이들 때문에 속상해서 안돼) 크리스마스 좋아. 연말 좋아. 새로 시작하는 새해 좋아. 

이 집에서의 마지막 겨울이다. 따뜻하게 보낼거야. 내년에는 또 새로운 각오로. 

사랑을 갈구하는 반복적 발화. 하며 맞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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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같은 화요일.. 요즘은 월화가 이거저거 일이 많다. 집에 식구가 늘어서 11시 넘어 들어와 12시가 쉬이 넘어 버린다. 그리고, 졸리다. 


까지 쓰고 자버렸다. 

백만년만에 늦잠 자서 8시 다 되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꽃이벤트를 올립니다. 빠밤- 


배송비 포함 만오천원입니다. 


스타티스, 부프리움, 석죽이 메인이에요. 톱꽃도 좀 들어가고요. 베로니카도 들어가요

상큼하고 오래가는 꽃들입니다. 길에 핀 들꽃같은 느낌의 꽃들이에요. 

맑은 초겨울에 어울리는 미니부케 되겠습니다.


다섯분, 오늘 다섯시까지 주문 받습니다. 




이런 꽃들로 아래와 같은 미니부케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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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08:52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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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09:04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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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좋다 2017-11-1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하고 싶습니다.

2017-11-15 12:25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5 14:53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5 15:05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5 16:53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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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6:56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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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7:05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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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7:34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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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좋다 2017-11-1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잘 받았어요. 와이프가 좋아하네요. 감사해요

2017-11-16 12:2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랜만에 페이퍼 

생활을 다잡자 생각할수록, 책을 읽어야지. 뭐라도 끄적여둬야지. 생각하게 되는데, 둘 다 계속 미룬다. 

다사다난하고, 안 미루는건 청소 정도인 것 같다. 


작실 한 시간 정도 다녀와야 하는데, 나가기 싫어서 드.디.어. 뭐라도 끄적이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근래 정리하고 청소하고 했던 것도 책과 끄적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나. 


알바를 하니 좋은건, 꾸준한 뭔가가 생긴 거, 쥐꼬리 월급을 받는 거,밤에 잠을 잘 자는 거. 꽃시간과 겹치지 않아서 왜 이제 시작했나 싶었는데, 피곤해서 생각들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고, 자꾸 날만 지나가면 어쩌란 말인가-> 요즘의 깨달음 포인트


침대 밖은 위험해. 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일어나서 작실에 다녀와야 한다. 

좋은 걸 자꾸 생각해내야지. 작실에 가면 커피를 내려 먹을 수 있다. 집에 물이 떨어졌다. 작실에 가면 물을 마실 수 있다. 

가는 길에 1500원짜리 김밥( 6년 넘게 지나만 다니고 한 번도 안 사봤는데, 의외로 실하고 맛있어서 놀람) 살 수 있다. 

등등등 


일단 아침을 먹을까. 아침을 먹고, 생각 끄고, 나간다. 


이렇게 씨잘대기 없는 글을 끄적였으니, 근래 최고 좋았던 것들 몇가지를 풀고 간다. 


때르메스. 정준산업 요술 때장갑을 사시라. 천원이면 사는 때수건을 왜 6천원이나 주고 사야 하나. 싶겠지만 (배송비까지 합하면 더 비싸짐) B품 사도 충분하다. 정품 필요 없어. 3천원짜리 B품 사시면 되고, 벙어리 장갑 사고, 배송비 아껴 더 사고 싶으면 벙어리 장갑 더 사거나, 기다란거 사면 좋다. 때비누는 다이소에서 종류 엄청 많고 천원이면 산다.

겨울이라 바디워시 쓰면 극건조해져서 바디로션 처발처발 해야 하고, 뭔가 샤워수건이고, 샤워볼이고, 때수건이고 맘에 딱 안 들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때수건. 완벽. 비누칠 해서 쓰는건데, 굉장히 굉장히 부드럽다. 때가 밀리는건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물을 끼얹으면, 때가 밀렸던 것을 알게 됨. 때가 분쇄되서 때수건에 흡수? 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씻고 나오면 피부가 맨질맨질 부드러워진다. 


겨울에 핫팩 사실 분들. 

마이핫보온대 핫팩을 사시라. 많이 뜨거워지는 걸 못 참는 사람을(=나,인데, 나도 참을만함)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따뜻함. 인터넷으로 사면, 하나에 560원인가 650원인가 한다. 하루 종일 밖에 있거나 할 일 없어서 쓸 일 있으려나 싶었는데, 어제 작실에서 꽃작업 하다가 손에 동상 걸리는 줄. 바깥 날씨보다 시원한 작실. 손에 계속 물 묻히면서, 꽃냉장고에 들어가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손시렵고, 추워 ㅜㅜ 하지만, 꽃에 좋은거면 나도 좋다. 트루럽. 담주부터는 핫팩 가져갈 예정.   


내일 꽃이벤트 합니다. 

내일 배송 나가는 배송비 포함 만오천원. 이벤트에요. 

연두연두 부프리움, 레몬색 스타티스, 믹스 석죽 등의 상큼한 미니부케입니다. 

예뻐요. 


늘 예뻤지만, 내가 겔름 피우느라 못 했는데, 이번에는 아깝다. 해야 한다. 

6분 가능.사진은 오늘 중으로 올립니다. 볼륨업. 가능한데, 꽃이 아니라 부자재가 모자란 거라서 듬뿍 잡아드리니, 

그냥 만오천원으로 주문해주셔도 됩니다.    


요술때장감, 마이핫보온대, 하이드꽃이벤트, 좋구나. 



라넌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11월과 12월의 꽃구독에는 매주 크리스마스썸띵이 함께 나갑니다. (라고 쓰는데, 내가 왜 설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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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1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르메스 중독자 1인이요!!

2017-11-14 11:0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5 09:0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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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토요일 아침, 엊저녁 읽었던 뉴스가 왠지 내내 겹쳐져서 마음을 긁는다. 

얼핏 읽은 뉴스는 가정폭력을 당하던 여자가 홧김에 집에 있던 수석으로 남편을 죽인 것에 4년의 징역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37년간 얻어 맞고, 정육점을 하던 남편이 죽게 패기만 한게 아니라 칼로 여자를 죽은 고기 칼질하듯 여자에게도 칼질하여 몸에 칼자국들이 있었다고 한다. 동창회를 하고 술을 마시고 온 여자를 또 쥐잡듯이 패서 여자가 집에 있던 수석으로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고. 


이 책은 흔해 빠진 여자 패는 남자 나온 이야기도 아닌데, 여자의 이야기는 뉴스에서 본 여자의 인생을 생각해보게 한다. 

제목은 딸에 대하여지만, 뒤에 해설에 나온것처럼 엄마에 대한 책이다. 30대 중반의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60대 엄마는 80대 치매 노인을 돌보고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서 깜짝 방문한 엄마를 생각한다. 60대의 나이에 몸 상해가며 돈을 벌고 있다. 가진 재주가 있어서 내 알바 시급의 다섯배쯤 받는 것 같다. 집에 있는 것보다 일하는 것을 좋아하니 다행이지만, 그렇게까지 힘들게 일하는 건 역시 돈 때문이겠지. 


이 책에서 요양보호사인 '나'는 집이 한 채 있어서 두 집에 세를 주고, 그 돈을 받아 병원비와 생활비를 한다고 한다.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도 있고, 월세도 받고, 월급도 받는데, 그렇게까지 힘든건가 싶긴 하다. 


딸은 동성애자이고, 애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7년간 사귄 연인이다. 돈이 더 있었음 싶은데, 인정할 수 없는, 꼴도 보기 싫은 딸의 연인이 주는 월세 넉달치를 받고야 만다. 그리고, 그녀가 딸을 이년간 먹여살렸음을 알게 되고, 내쫓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며 괴로워한다. 


주말에 애인과 '우리의 20세기'라는 영화를 봤다. 아네트 베닝은 굉장히 쿨하고 멋진 엄마였지만,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래디컬 패미니스트인 애비가 자신의 아들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에 제동을 건다. 아들에게 '너가 아직 소화하기 힘들겠지만..' 이라고 말하는데, 아들은 '여기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엄마 혼자에요' 라고 말하고 뛰쳐나간다. 


'이해'보다 필요한 것은 '공감'이나 '너나 잘하세요' 혹은 '내버려두기'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기에 이해하려고 하지만, 이해할 수 있을까? '


요즘 나의 가장 큰 화두는 '노년'이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60대의 엄마는 강력한 젊음이라는 망토를 두른 딸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60대와 자신이 돌보고 있는 비참한 80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알려주고 싶어 한다. 


"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는 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경험하지 않고 말로만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특히 힘이 세고 단단한 젊음으로 무장한 지금의 딸애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60대가 되어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면, 분명 나는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 세고 단단한 젊음을 두르고 있는 것이겠지. 예전에 제주집에서 아빠가 말했다. "지금보다 10년만 젊었으면 진짜 더 많은 일을 해볼 수 있었을텐데" 책 좀 읽는 뭣도 모르는 딸은 "아빠가 10년 있다가 지금 돌이켜보면, 지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라고 대꾸했다. 그 근처에 읽었던 자기계발서 같은데 나왔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아빠는 그렇지.. 라고 대답하긴 했는데, 사실, 아빠는 그 나이에도 내가 시도도 못한 많은 새로운 일들을 해냈다. 허접한 딸과는 다르지. 

포기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 행복하게, 열심히,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가려고 애쓰며. 

이 책에서는 노년의 현실과 우울함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지만, 변할 수 있음을, 강력한 젊음으로 무장한 이들처럼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뇌당하다시피 들어 온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아이는 낳아야지' '좋은게 좋은거지'  등등으로 시작하는 많은 하나마나한 말로 주변에서쌓아 온 자신의 인생의 벽을 깨고 불편하지만 선명한 세계로 나온다.    
  

" 권 과장의 얼굴에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 한사람에게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걸 나도 안다. 오늘날 일이란 행위는 모두 훼손되고 더럽혀졌다. 그것은 오래전에 우리 세대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던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일의 주인이 아니고 그것에 종노릇을 하며 소외당하고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리고 끝내는 일 밖으로 밀려나고 쫓겨나고 실패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

  


딸에 대하여, 엄마에 대하여, 노년에 대하여, 일에 대하여 

아버지도, 남편도, 남자친구도 빠져 있는 정말 희귀한 보통의 지금의 여자 이야기. 


이런 순간 더 이상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과 말을 섞고 나누고 어쩔 수 없이 동의하면서 나도 젊은 애들이 말하는 앞뒤가 꽉 막히고 편견으로 가득 찬, 세금만 축내는 부류의 노인이 되는 걸까. 젊은 새댁은 예예, 하지만 별 감흥이 없는 눈치다. 아직은 일이 몸에 익지 않은 탓이겠지. 죽은 성 씨가 담당하던 환자들을 맡았으니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서너 번 몸살을 앓고 난 뒤에는 서서히 적응이 될 테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 이곳을 떠난다. 끝까지 남는 건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에 끝나지 않은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이 시대. 지금의 세대.

탄력을 잃고 흐물흐물해진 살들이 앙상한 뼈에 겨우 매달려 있다. 덜렁거리는 살들을 치대며 비누칠을 한다. 젠의 다리가 덜덜 떨린다. 거품이 묻은 손으로 사타구니를 꼼꼼히 매만지고 시커먼 욕창 주변에 일어난 죽은 살들을 떼어 낸다. 어쩌자고 이 여자는 이렇게 오래 살아 있는 걸까.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타나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

한숨 자고 나면 아주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일이 다 거짓말처럼 되어 버리면 좋겠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 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고집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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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7-10-23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리뷰가 겁나 멋져요

하이드 2017-10-24 12: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주제였어요.
 


김생민의 영수증 팟캐를 들었다. 


아래 페이퍼와 연결되어,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평이 좋은 김생민의 영수증을 정신무장 차원에서 듣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좋다. 17화까지 단숨에 들었고, 주변 온데만데 다 추천하고 있다. 


워낙 돈 없으니깐, 이거 아낀다고 뭐가 되겠어. 싶은 맘으로 하루하루 보냈는데, 습관의 문제이고, 룰의 문제라는 얘기를 듣고, 몇가지 룰을 정했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잘 지켜지고 있다.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 소비의 이유로 '멘탈의 흔들림'을 드는데, 내가 뭔가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고 싶다. 싶을 때, 아, 내 멘탈이 흔들리는구나. 생각할 수 있으면 더 자제가 된다. 기준점이 달라지니, 예전에는 써도 안 써도 스트레스였다면, 지금은 써도, 안 써도 그뤠잇이다. 스튜핏들이 있지만, 한번에 다 고치려고 하면 안된다고 했다. 반만 고치기. 기한 정해서 하라고 하니 스튜핏도 필요한 것 같다. 상대적인 것. 


가장 최근의 기억 남는 스튜핏은 지난 주말 애인집에서 술 마시다가 치즈 사러 나와서 말랑카우 맛별로 3개 산 것이다. 애인이 옆에서 너무 실감나게 스튜핏! 스튜핏! 그랬는데, 아.. 넘 귀여운 우리 애인님. 이멀전시 스위츠로 파우치에 너덧개 넣어 다닌다. 그렇게까지 스튜핏은 아니었나봐. 

  

내가 만든 몇가지 룰은 이렇다. 


0. 돈은 쓰지 않는거다. 


1. 편의점에서 음료수 사지 않기 

2. 커피 사먹지 않기 

3. 마을버스는 환승만 타기 

4. 물 사지 말기 


우선순위와 절실함이 이 프로그램의 코어라고 생각되는데, 말로와 리처는 나의 최우선순위이다. 근데, 고양이 키우는 여자의 영수증 사연을 듣고, 아,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알바 월급 들어오고 십만원 정도를 ㅇㅇㅇㅇ에서 고양이 간식 등으로 질렀는데, 고양이가 최우선이니깐. 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아니다. 사료와 모래는 필수다. 사료는 가장 좋은 사료들로 입짧은 냥님들 모시는 애인님이 애인님네 애들 안 먹는 사료 다 주고 있다. ㅇㅇㅇㅇ가 십만원 이상 무배라서(이런거 조심! 얼마 이상 무배, 1+1, 쿠폰, 굿즈 등등)  십만원 채운다고 있는 간식, 없는 간식에 되게 귀여울 것 같은 종이집까지 질렀었는데, 사실, 내가 지금 고양이로 써야할 것은 이게 아니다. 말로 건강검진 받아야 한다. 3-40이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발치하라고 하면, 백단위로 들어간다. 그래서 계속 미루면서, 자잘하게 다이소 고양이집오천원 사고 싶다. 고민고민 한 것. 간식 안 줘도 된다. 평소 사료, 물 다 잘먹는다. 그 돈들을 아끼고,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후회하고 있었는데, 배송이 지연되어 환불시켜 버렸다. 그뤠잇. 찡찡이 임보하며 받았는데, 찡찡이 안 먹어서 그대로 남은 최고급캔들도 있고, 애인도 주문하면서 간식 나눠줘서 충분하다. 


5. 말로 건강검진 받을 때까지 냥물품 필수품만 사기 (모래만 좀 더 사두면 될듯하다) 

6. 500원짜리 동전을 모아두는 유리병을 마련했다. (산 거 아니고, 있던거) 


모두 각기 다른 상황에 각기 다른 절실함을 지니고 있다. 내 자신이 더 잘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도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습관을 들이고, 선순환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버텨준 애인에게 감사. 너무 많이 지친 것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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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7-10-19 0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요전에 님 글보고 듣기
시작했어요^^ 넘넘 재밌고
저한테 딱 필요한 컨텐츠더군요^^;
감사!♡♡

하이드 2017-10-21 09:24   좋아요 1 | URL
네, 정말요. 지금의 가난이 개인탓만은 아닌데,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시킨다는 비판도 있지만,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김생민 같은 중년의 남자가 희귀한지라 신선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