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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백년전그림, 서양여성이 그린 한국미

엘리자베스 키이쓰(Elizabeth Keith)란 외국 여성이  한국의 설날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여성은 한국을 소재로한 전시회를 외국에서 연 최초의 외국인 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 그림을 보구 침을 꼴깍 삼켰으니까요.
그림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키이쓰(Elizabeth Keith)라는 영국에서온 여성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이쓰(Elizabeth Keith)는 1887년 영국에서 태어나 수채화와 드로잉을 독학 했습니다

그녀가 28세 되던해 일본에 사는 언니를 방문했다가 동양의 정취에 홀려 돌아갈 배표도 반납하고
한국 일본 중국,과 필립핀등 동양아시아를 두루 다니며 오리엔탈 문화에 흠뻑 빠졌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이쓰(Elizabeth Keith)

“New Years Shopping, Seoul” 1921
목판화Woodblock print

 

Elizabeth Keith

새색시(Bride) 년도미상 수채화

 출처 - 예술의 전당

 

 Elizabeth Keith,

 Court Musicians, Korea1938

그림출처 : Artelino
 

 Elizabeth Keith
A Game of Chess1936
그림출처 : Artelino

 

Elizabeth Keith,
아침의 환담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 1921

 

 에리자베스 케이쓰 Elizabeth Keith
결혼식 잔치 Country Wedding Feast 1921

 

제목미상 1921
Woodblock print

 

 

마침 일본에 항거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던 1919년 이었는데 그녀는 한국이 일본에 시달렸던 입장을

깊이 공감하였던 여성 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이쓰(Elizabeth Keith)가 일본에서 한국을 소재로한 미술전의 그림은 동대문을 그린 수채화

였습니다. 이것을 본 일본 목판화가의 권유로 목판화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녀를 화가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이쓰(Elizabeth Keith) 그후 다년간 목탄 프린트화에 전념 하기도 했는데

화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고 인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공식적이고 개방된 그림 전시회라는 자체가 없다 싶이 한 그 당시의 한국에서, 외국여성이 한국을 그린

그림들을 외국인은 물론이고 한국사람들도 많이 관람을 하였던것은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여간 관심있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후 그녀는 1936년과 37년 일본 개인전과 더불어 런던과 뉴욕에서도 전시를 하게 됩니다.

2차대전과 더불어 동양과 서양을 왕래했던 그녀는 59세 되던해에도 도코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1956년이 되던해 69세를 일기로 그녀는 일생동안 그림을 통해 동양을 알리다 눈을 감았습니다

 

 

리자 베스 키이마스씰

에리자베스 키이쓰작 아기없은 여인

 

 

또한 엘리자베스 키이쓰의 그림은 1934년 아기업은 여인으로 크리스마스 씰로도 만들어져
당시 구세요양원에 구성되어 있던
크리스마스 씰 위원회의 김병서 집행위원이 서울에 와서
크리스마스 씰 모금을 위해 활동 하였다는 1934.11.9 조선일보 기사로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크리스마스 씰 값은 판매가격이 2전으로 나와 있는데 그 2전이 지금은 얼마가 되는걸까요,

이외, 외국인으로 릴리안 메이 밀러(Lilian May Miller), 윌리 세일러(Willy Seiler), 등의
판화도 한국을 그린 외국인들의 작품으로 있습니다.

 

 출처:지전의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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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연 > 강산의 일러스트



 


 





마지막 것은...'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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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프라다백에 관한 진실

혹시 이렇게 생긴 백팩을 기억하세요?

 

 

    

한때 세계 여성들을 열광시켰던 프라다 제품입니다.
가볍고 실용적이고 질기고 장점이 많은데  값은 엄청 비쌉니다.
시꺼먼 보자기감같은 천으로 만든 백이 왜 이리 비쌀까 하는 생각이 들지요.

 

여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세계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계의 수퍼파워’라고 불리지요.
그런데 얼마전 뉴요커라는 잡지에서 이 사람에 관한 기사를 읽다보니,
프라다는 디자이너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하는군요.

 

 

프라다는 말합니다.
“나는 피상적이고 멍청한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 일종의 열등감을 느껴요.
똑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패션을 싫어한다면서 그런 시간낭비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수퍼-똑똑한 사람들에게 제가 물었어요.
그럼 패션은 도대체 왜 그리 인기가 있는거냐고. 아무도 대답을 못해요.”

 

프라다는 계속 말합니다.
“나는 옷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걸 알아요.
나는 그저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입니다.”

 

프라다의 이력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프라다는 정치학 박사이고, 젊은 시절에는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답니다.
그런데 워낙 옷을 좋아하는 프라다는

그 시절에도 청바지는 싫어해서, 하이힐 신고 빈티지 원피스 입고 시위에 나섰답니다.
전력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만,
전직 공산주의자이자 정치학 박사가 만들어주는 사치품이라...  어째 안 어울리는 것 같지요?

 

프라다는 학위를 받은 후 5-6년 정도 무언극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집안의 부름을 받아 가업에 뛰어들지요.
프라다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고가의 가죽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프라다는 태어날 때부터 소위 ‘명품’에 둘러싸여 자라났다고 합니다.

 

프라다의 인터뷰를 읽어가면서,
이 여자가 두 아들 키우며 무시무시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 키우는 지난 15년 동안 ‘재미’는 포기하고 살았다는 거에요.
자유시간 생긴다고 밤에 나가 논 적도 없고 여행 다닌 적도 없답니다.
패션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그리고 유행을 이끌어가기 위해 죽도록 일하다가,

저녁 때는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웬지 배신감이 느껴졌습니다.
프라다가 내놓은 값비싼 물건에 홀려서 빈지갑 털어가며 비싼 물건을 사고,
다달이 밀린 카드값을 갚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나잖아요.
프라다는 멋있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 열망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소위 명품이라는 것들-명품이라 부르든 사치품이라 부르든-,
워싱턴에서 제가 일하는 동네에서는 이런 상표가 달린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다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명씨’ 핸드백을 듭니다.
실제로는 더 비싼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적어도 일터에서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과 관련해서,
‘핸드백’에게 발언권을 주지는 않습니다.

 

아니, 발언권을 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명품백이라는 걸 들고 다니면, 웬지 ‘나 열등감 있소’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생각되지요.
겁나게 비싼 핸드백을 들고 다니면 폼나고 부티나게 여겨지는 게 아니라,
“도대체 얼마나 벌길래 저런 걸 사나”하는 의문부터 먼저 자극합니다.
명품백을 다달이 한개씩 사도 좋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버는 제 친구는,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왜 그런 데 쓰냐. 내가 돌았냐”고 합니다.

 

자, 여기서 알랭 드 보통이라는 영국작가를 초대하도록 하지요.

(보통은 제가 ‘온 러브(On Love)’라는 소설을 읽은 후부터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인데, 이 사람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삽니다.
그 동안 무슨 신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너무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보통이 이번에 낸 책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Status Anxiety)’이라는 책입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런 겁니다.

 

모든 성인은 두 개의 큰 사랑에 의지해 살아갑니다.
첫째는 남녀간의 사랑,
음악과 문학을 먹여살리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축복받는 사랑입니다.
두번째는 우리가 좀처럼 입밖에 내 말하지 않는 은밀한 사랑,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사랑,
다시 말해서 타인으로부터 오는 인정과 존중, 관심입니다.

 

 

사람들이 돈과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사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따라오는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이 작가는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또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괴롭다고 말하지는 않지요.
이런 것을 내놓고 말했다가는 시기심이 강하다든지, 유치하다든지,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멸시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갈구하는 이 사랑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으로부터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과 똑같이 보편적이고 중요하며
우리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는 고통도 준다는 겁니다.
실연을 당했을 때 인간이 망가지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타인의 사랑에 의존하는 우리의 자아는
끊임없이 외부의 사랑을 주입하지 않으면
바람이 빠지고 마는 풍선과 같습니다.
바늘 끝에 살짝 찔리기만 해도 뻥 터져버리고 말지요.

아시지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던 자신감이 다른 사람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단박에 날아가버리는 어이없음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은 현대인들의 야망이 가져온 부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쉽게 좌우되지 않습니다.
귀족이 평민 되기도 어렵고, 평민이 귀족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사회적 지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그 성공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결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일정 수준을 달성했다 해도
그 지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므로 사람들은 늘 불안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원하는 대로 안되니까 더 어렵고 괴로운 겁니다.

 

보통은 현대인들이 사회적 지위에 대해 그토록 불안해 하는 것은
현대의 사회적 지위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첫째, '재능'=하지만 재능이라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실현돼주지 않는다.
둘째,  ‘운’=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므로,

        우리는 불운이 실패의 이유라고 말할 수도 없다.
셋째, '고용주'=우리의 운명은 고용주의 선호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넷째, '기업의 이윤생산능력'=큰 기업에 고용된 사람일 경우, 직업적인 안정이 내부 정치 뿐 아니라 시장상황,

       결국 그 기업의 이윤창출능력에 영향을 받는다.
다섯째, '세계경제'=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기업과 고용인도 결국은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영향받는다.

 

이래저래 속터지는 분석이지요?

 

보통은 온갖 복잡다단한 철학과 심리학, 경제학 이론 등을 끌어들여
아주 유머러스하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괴로워하는 현대인들의 고민을 풀어갑니다.

원래 이 사람은 굉장히 웃기고 너무나 재치가 있거든요.

이 책을 여기저기 들쳐보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노력해서 성공을 이뤘을 때 비로소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분에 넘치는 명품백을 사면서 뭔가 위로받았다면 착각이라는 거니까요.

겉에다 무엇을 치장하든 결국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거니까요.

 

여하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명품백 몇개를 무기 삼아 살아가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험한 곳이라는 거지요.
설사 그것이 1000달러가 넘는 프라다 백이라 해도.

 출처:14번가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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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urblue > 비고 모르텐슨

<두 개의 탑 확장판>을 보다. 아라곤 너무 멋지다!!

게다가 이 배우, 비고 모르텐슨도 엄청 매력적인 인물. 대학에서 스페인 문학을 전공했는데, 영어 뿐 아니라 스페인어로도 시집을 냈다고 한다. 시인에 화가에 사진작가에 음악가에 배우라니. 예술적 재능을 한 몸에 타고난걸까.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라곤,비고 모르텐슨 (씨네21)
“내일 당장 뉴질랜드로 가줄 수 있어?” 1999년의 여름, 에이전트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비고 모르텐슨은 그저 ‘괜찮은 배우’였다. 1985년 <위트니스>에서 아미쉬 농부 역으로 데뷔한 이래, <퍼펙트 머더>에서 기네스 팰트로의 정부 역할이나 < G.I. 제인>에서 드미 무어를 괴롭히는 엄한 교관 역 등을 맡아왔지만 조연인 그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준비하던 <반지의 제왕> 제작진으로부터 급작스런 출연제의를 받았던 것은 행운일지 모른다. 애초 이 영화에서 아라곤 역은 스튜어트 타운젠드라는 아일랜드 배우의 몫이었지만, 프리 프로덕션 도중 피터 잭슨 감독은 아라곤이 이 26살짜리 배우가 맡기에는 너무 큰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르텐슨은 비록 교체 멤버였지만 제작진들로 하여금 ‘드디어 임자가 나타났다’는 환호를 지르게 했다. ‘수수께끼 같은, 수심에 잠긴, 잘생긴’. 당초 아라곤 역을 캐스팅할 때 지침으로 삼았던 이 세 가지 형용사가 모르텐슨 안에 절묘하게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텐슨과 아라곤은 이미지에서만 유사한 게 아니었다. 뉴질랜드에 도착한지 이틀 만에 가진 첫 촬영에서 그는 완전한 아라곤의 모습이 돼 있었다. 피터 잭슨은 “촬영이 시작되자 비고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아라곤과 동일화됐다”고 설명한다. 모르텐슨의 아라곤으로의 ‘변신’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어느 날 잭슨은 모르텐슨을 식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뒤 그의 머릿속으로 뭔가 스쳐갔다.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그를 ‘아라곤’이라고 불렀고, 그 역시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 ‘촬영 기간 내내 모르텐슨이 아라곤의 갑옷을 입고 칼을 옆구리에 낀 채 매일 숲에서 잠을 잤다’는 기사가 일부 신문에 보도됐을 정도. 아라곤이 된 모르텐슨은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스턴트맨이 자신 대신 아라곤이 돼 숲을 누비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탓인지, 몇 장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액션장면에서 그는 직접 칼을 휘둘렀다. 말 타는 것을 좋아하는 그가 특별히 요청해 시나리오도 일부 바뀌었다. 격한 전투신을 찍다가 상대 배우의 실수로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그가 부러진 이를 들고, “강력접착제로 붙인 뒤 촬영을 계속하면 안 될까”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촬영장의 전설이 됐다. 모르텐슨의 열정은 어둠의 세계로부터 중간대륙을 지켜내겠다는 아라곤의 불굴의 투혼과 견줘도 부끄러울 게 없어 보인다.

이처럼 헌신적인 그의 연기는 44년 동안의 만만치 않은 삶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덴마크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모르텐슨은 부친의 사업 때문에 유년 시절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라틴아메리카 일대에서 지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할아버지의 농장이 있는 덴마크에서 사촌들과 함께 살며 웨이터, 돼지운반 트럭운전사, 꽃 판매 등의 일을 했다. 뉴욕으로 돌아와 연기생활을 시작한 85년부터 10년 동안 그의 연기자 인생도 그리 화려하진 않았다. 출연 제의가 많지 않았고, 맡은 역의 비중도 작아 웨이터, 바텐더, 트럭운전사로 돌아가야 했다. 이 와중에 그에겐 악역이 많이 주어졌지만, “아직까지 내가 싫어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적은 없다”는 스스로의 말처럼, 팍팍한 삶으로 여러 계층의 타인들을 잘 이해하고 있던 그는 매 작품에서 성실함을 보여줬다. <퍼펙트 머더>에 출연할 때 영화 속 주인공처럼 브루클린의 아파트를 빌려 살았다는 이야기에서처럼, 그를 아라곤으로 만든 진정한 힘은 영화 속 캐릭터가 되기 위해 자신을 과감히 버리는 노력이었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은 그를 명실상부한 액션영웅의 자리에 올려놓을지도 모른다. 반지의 저주로 괴로워하는 프로도 대신, 그는 악의 무리에 맞서 온몸을 던져 중간대륙을 수호한다. 개미떼처럼 헬름 협곡으로 밀려오는 오크족에 맞서 영웅스런 전투를 펼치는 그의 모습은 천하를 호령하던 여포나 조자룡을 떠오르게 한다. 강인한 얼굴과 단단한 체격, 뛰어난 승마능력을 갖춘 그는 내년 <반지의 제왕> 3편과 서부극 <알라모>, 사막의 말 경주에 출전한 한 우편배달부의 이야기 <히달고>에서 여전히 용맹스런 기상을 뽐내게 된다. 하지만 그가 다른 액션스타처럼 근육에 비해 뇌가 너무 작은 ‘전투기계’로 전락할 것이라고 짐작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는 지적이면서 매력적인, 새로운 개념의 액션영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뉴욕에서 전시회를 연 경력을 가진 사진작가이며, 시집을 낸 적 있는 시인인데다, <퍼펙트 머더>에서 실제로 벽화를 그렸을 정도의 화가이고, 여러 장의 음반을 낸 음악가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아들 헨리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는 게 싫어 <반지의 제왕> 출연을 거부하려 했던, 그리고 어딘가 머물기보다는 “희망차게 여행하는 과정을 가장 좋아한다”는 ‘진짜 비고 모르텐슨’의 모습이 그런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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