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비밀번호는 길어지기만 한다




동전에는 다른 면이 존재한다. 기업과 조직들이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동안, 사람들 역시 자신의 컴퓨터에 기록을 쌓아 가고 있다. 파일, 북마크, 다운로드 받은 음악, 비디오 트랙, 사진 앨범, 이메일 메시지, 애플리케이션과 온갖 종류의 저장된 데이터는 그것들을 관리하고 지키고 업데이트하고 백업까지 하라고 요구한다. 좋든 싫든, 사람들은 모두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생성하는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하나의 파일은 또 다른 파일에서 생겨난다. 일례로 백업은 백업되는 것이 무엇이든 자동적으로 그 파일의 디지털 발자국digital footprint을 두 배로 만든다. 다양한 문서나 영상이 사람들의 하드드라이브에서 똑같이 늘어난다. 이메일에 첨부된 파일은 첨부 파일로서 똑같은 파일을 만들어 내며, 이메일을 받은 사람은 더 많은 복사본을 복제하면서 메시지를 저장하거나 전송한다.


소비자들은 이 막대한 양의 정보를 저장하고 감독하는 일을 물려받았다. 이 작업에는 주로 즐겨 찾는 웹 포털을 열 때 필요한 긴 목록의 디지털 열쇠, 즉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가 포함되어 있다. 사용자는 그러한 목록을 업데이트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컴퓨터에 비밀번호 파일을 저장해 놓으면, 해커가 컴퓨터에 침입했을 경우 모든 계정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책을 세운다. 일부 사람들은 월 이용료를 내고 온라인 ‘금고’에서 비밀번호를 암호화한다. 내 경우는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 목록을 출력해 놓고 이동형 USB 메모리에 기본이 되는 디지털 파일을 업데이트해서 주 컴퓨터와 연결되지 않도록 한다.





컴퓨터에 매인 농노가 된 사람들은 ‘비밀번호 피로password fatigue’라는 현대의 신드롬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다. 2002년 영국의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보통의 인터넷 사용자가 보유하고 있는 온라인 계정은 21개였다. 이 수치는 그때 이후로 두 배로 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미국에서는 더 클 수도 있다. 거의 모든 웹 포털이 사용자들에게 새롭고 ‘안전한’ 비밀번호를 만들어 내어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되는 이 요구에 지쳤고, 그 결과가 바로 비밀번호 피로다. 게으른 사람들은 개인 비밀번호로 ‘password’를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은 많다. 믿거나 말거나 ‘password’는 2년 연속으로 가장 인기 있는 비밀번호 자리를 차지했다가 2013년에 ‘password’만큼이나 기발하다 할 수 있는 ‘123456’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컨슈머 리포트》의 2010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사용자의 3분의 2 이상이 모든 계정에서 똑같은 비밀번호를 사용하거나 약간 변형한 형태의 비밀번호를 사용했다.


메간 케닐리는 2012년에 《버크셔 이글》에 실린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정말로 사소해 보이는 일 때문인데도 웹 사이트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만들거나 생각해 내라고 재촉한다. 비밀번호는 사소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각자의 생활에 접근하기 위해서도 일상생활에 꼭 필요하다.”(케닐리의 주장은 우리의 정보적 신체가 생물학적 신체를 대신할 정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온라인에서의 삶이 ‘삶’ 자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비밀번호는 사람을 아주 귀찮게 한다. 그녀는 “일상생활의 기초로서 필요한 비밀번호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 외에 모든 새로운 비밀번호가 특별한 조건(8~10개의 문자, 구두점 포함 또는 구두점 사용 금지, 대문자, 가짜 단어, 이름 금지 등. 말도 안 된다!)을 규정하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라고 지적한다.


그러한 요구는 또 많은 그림자 노동을 발생시킨다. 경험적으로 보면 비밀번호가 안전할수록 기억하기가 힘들어진다. 온라인 보안 전문가들은 ‘tuliplover’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지만, ‘2LiP!LvR.’는 훨씬 더 만족해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화성인이 보낸 트윗처럼 생긴 일련의 기이한 영숫자보다는 자신이 외우고 있는 비밀번호를 선호한다.


비밀번호 만료는 문제를 악화시킨다. 하버드 대학은 직원들에게 해마다 새로운 비밀번호를 만들라고 요청하지만, 그 정도의 요구는 비밀번호가 90일마다 만료되는 기업의 상황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이다. 직원들은 새로운 비밀번호를 만들었다가 3개월 동안 기억한 다음, 다시 새로 비밀번호를 생각해 내어 기억하는 동안 과거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상황을 반복한다. 결국 직원들은 흰 수건을 던지고, 사용할 때마다 임시 비밀번호를 이메일로 보내 주는 ‘비밀번호 찾기’ 방식에 의존한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그림자 노동의 2.0, 3.0, 4.0 버전을 꾸준히 출시한다. 컴퓨터를 가진 사람은 누구든 기존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 버전이 출시됐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받는다. 대개는 무료이며, 업데이트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용 중인 브라우저나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종료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론적으로 그러한 조정은 소프트웨어의 기능이나 보안을 향상시키지만, 대부분 업데이트로 성능이 달라진 경우를 경험하지 못했다.(어쩌면 중요한 것은 무언가가 발생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례로 바이러스 공격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도 소프트웨어를 하나 구입하는 일은 은그릇을 하나 구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은그릇은 구입해서 자기 것으로 사용하면 끝이다. 하지만 당신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소프트웨어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출시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소프트웨어가 진화함에 따라 ‘당신의’ 소유물 역시 계속적으로 달라진다. 발밑의 땅이 계속 움직인다는 얘기다. 또한 업그레이드를 항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해 동안 컴퓨터 운영 체제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중요한 기능이 차단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웹의 진화하는 디지털 환경이 이미 구입한 운영 체제를 ‘더 이상 지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상태가 아주 좋아지면서 최저 운행 속도가 시속 130킬로미터로 높아졌기 때문에 엔진도 더 크고 빠른 자동차를 구입해야 한다는 얘기와 비슷하다. 높이지 않으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계속 판매하기에는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 『그림자 노동의 역습』 출간 전 연재 6회에서 계속



<민음사 출간 전 연재 안내>


① 출간 전 연재는 매주 화/ 목/ 토 <민음사 알라딘 서재>에서 단독 공개 됩니다.

② [출간 전 연재] 글은 책의 본문 내용 중 편집을 거쳐 공개됩니다. 

③ 『그림자 노동의 역습』은 2016년 10월 21일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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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2016-10-22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번호 피로~!에 완전 공감 끄덕끄덕했네요.
그림자 노동이란걸 알면 알수록 은근 중독인걸요.

노란개구리 2016-10-2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업데이트나 유지관리, 정보 검색등 별 생각없이 하던 것들이 다 내 시간을 들여 남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니 놀랍네요. 생각해보면 서비스 제공자 측에서 편의를 제공해줘야 하는건데 요즘은 서비스를 사용자가 따라가고 따라가지 못하는 사용자는 도태되는 것 같군요.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가 이젠 공급으로 수요와 소비를 창출하는 쪽으로 바뀐 것 같기도 하구요. 잘 봤습니다.

레피 2016-10-29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번호는 정말 공감이 되네요. 저도 로그인할때마다 시도해보다 결국은 아이디랑 비밀번호찾기를 이용하니 말이죠.

계란 2016-10-3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스워드 진짜 완전 공감! 그리고 달마다 바꾸라네 짜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