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곁에 두고 싶은 책 중의 하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소설이되 소설이 아니다. 소설을 가장한 언어 사유법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찬 철학서이다. 정체성을 찾아 끝 간 데 없이 사색하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내면 일기라고 보아도 좋겠다.

 

   인간은 완벽하지도 않고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의문과 복잡함으로 가득 찬 인간을 탐색하려는 작가의 자의식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우리는 타자를 또는 스스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주인공 프라두는 곧 내레이터 그레고리우스이고, 이는 곧 작가로서의 메르시어이자 자연인 비에리이기도 하다

 

   소설 형식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우연의 연속을 아무렇지 않게 연결시키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 소설이 소설로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중시하는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남발된 우연이 연결한 유기적 관계망 속에 등장인물들은 프라두의 행적에 대해 술술 풀어놓는다. 소설적 긴장감이 없는데도 메르시어의 구라에 쏙쏙 빨려 들어간다.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 진정성이 있고, 말들을 부리는 가슴이 시적이다.

 

   언어의 문제 나아가 결국은 인간의 문제를 다뤘다. 기억과 현실의 교집합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여러 매개물들이 적재적소에 쓰여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체스는 주앙 에사와 그레고리우스를 과거로 안내하는 주요 매개물이다. 그 외 붉은 삼나무, 이스파한, 피니스테레, 리스트론, 타라파우 등의 이미지를 따라가며 작가의 의중을 읽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계급의식도 투영되었다. 각각 귀족과 농민(실우베리아, 프라두 / 그레고리우스, 조르지)으로서의 삶에 대한 진솔한 성찰이 이 소설의 무게감에 보탬을 준다.

 

   다만 액자 기법으로 차용된 프라두의 글들이 <언어의 연금술>이란 제목에 걸맞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의문이 남았다. 옆에서 증언해주는 등장인물들의 프라두에 대한 아우라를 프라두의 글이 받침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랄까. 대체적으로 고뇌와 성찰의 고백이지만 가끔은 신변잡기 식에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문장이 이어질 때는 책장을 넘기기 힘들기도 했다.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은 내면을 토로하는 일기장 역할을 하는데, 탐색 과정의 느닷없음과 상황 이해 부족 등으로 완전하게 탐독하기는 힘들었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작가의 사유와 독자의 해석이 합일점을 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변죽을 울리는 듯한 부분이 느껴지는 건, 서로 다른 문화에서 오는 기질적 차이 때문이 아닐는지.

 

   확실한 것은 철학적 사유 깃든 장면보다 에피소드가 가미된 이야기를 풀어낼 때 메르시어의 문체가 더욱 빛난다는 점. 애매모호한 장면이 아니라 선명한 실체가 있는 부분에서는 버릴 게 없는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그레고리우스의 흔적을 따라 훌쩍 리스본으로 떠나고 싶게 만든 책. 내가 밟은 가장 먼저의 유럽 땅. 그래서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도시. 온통 노란 빛깔의 벽, 구시가지 바이후 알투 언덕의 골목들, 타호(테주) 강의 다리, 벨렘 거리의 빵집, 대성당과 제로니모스 수도원 등등. 그레고리우스가 쫓아다니던, 낯설지 않은 지명들을 만날 때,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 맘 속의 스냅사진을 꺼내어보곤 했다.

 

  그렇다. 묘령의 여자가 내던진 한 마디에 홀려 떠나보는 도시 이미지로리스본보다 나은 데가 있을까. 이런 괜한 생각까지 덤으로 얻게 하는 책. 

포르투게네스!  리스트론!

 

 

    

<등장인물>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 (문두스) -고전문헌학자, 언어 교사, 고도 근시, 이혼 후 19년 째 혼자 산다. 박물관 경비원과 청소부 부모를 둔(166) 가난한 집 출신

*플로렌스 - 제자 출신 그레고리우스 아내. 5년 결혼 생활 후 이혼함.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 (1920~1973) -의사 출신 시인이자 언어 신비주의자, <<언어의 연금술사>> 쓴 귀족 포르투갈 작가. 에사의 삼촌 주앙보다 5살 많음. 1975년에 출간된 작품. 30대 초반 작가. 그레고리우스가 번역해 나감, 활화산 같은 열정과 오만하리만큼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 집안 경제력 외모까지 다 갖춘 남성의 화신, 주앙 에사를 만나 저항운동에 관여함. 동맥류 앓음,

**부인 - 파치마, 35살 심장마비로 죽음,

 

*콘스탄틴 독시아데스 - 그리스 출신 안과 의사, 20년 지기

*캐기 - 동료 선생, 아내는 정신병원에 입원

*주제 안토니우다 실우베이라 -기차에서 만난 도자기업자, 이혼 후 큰집에서 혼자 산다. 나중에 그레고리우스에게 그 집을 제공한다.

*마리아나 (콩세이사옹) 에사 - 리스본 안과 의사

*줄리우 시몽이스 - 리스본 헌 책방 주인, 프라두 관련 길잡이를 해줌.

*후이 루이스 멩지스 리스본의 인간백정, 프라두가 목숨을 구해줌. 이 일로 프라두는 사람들로부터 상처.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 포르투갈 정치인. 1932년부터 1968년까지 36년간 총리로 독재. 나치 원조, 유대인 수용소 짓기 등 나치 방식 모방. 전후에는 서방측에 가담하여 북대서양 조약기구 참여로 국제적 지위 보장 받음.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을 계속 유지하여 국제적 비난을 받음. 1968년 낙마 사고로 1970년 세상을 떠남.

*비토르 코우팅뉴 프라두 소식 알고 있을 이전 책방 노인, 줄리우 시몽이스가 소개해 줌.

 

*아드리아나 프라두의 여동생, <<언어의 연금술>> 책을 출간. 낙태의 충격을 겪었고, 자신의 현재 삶 대신 오빠의 과거 인생을 살고 있다. 오빠의 파란 집을 지키며 현재와 과거의 시계를 오간다.

*멜로디(리타) 프라두의 막내 동생, 바이올린 연주자, 들끓는 화산 같은 오빠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지만 프라두는 멜로디를 부러워함. 자유로운 영혼

*주앙 에사 마리아나 에사의 삼촌, 회계사 출신 저항 운동가, 농부 자제, 프라두보다 5살 어림, 영국 여행에서 우연히 프라두 만나 교류하면서 저항운동 같이함,

*조르지 오켈리 프라두와 주앙의 학창 친구, 약사가 됨, 저항운동가, 프라두와 정반대의 성격, 그래서 프라두가 친구로 삼았다고 베르톨~신부가 전해줌.

*아고스칭냐 신문 (여자)실습생,

*마리아 주앙 아빌라 플로레스젊은 시절부터 프라두가 좋아했던 여자, 농부 딸, 간호사

*알렉산드리 오라시우 드 알메이다 프라두 프라두의 아버지, 유전적 척주경직증 앓는 판사, 독재에 부역하고 저항하지 않은 자책으로 자살.

**아내 마리아 프라두

*바르톨로메우 로우렝수 드 구스마옹 프라두의 학창 시절 선생(신부), 거짓말 하지 말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절대 명령에 대해 논쟁 벌임, 요양원 생활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 저항 운동 동지, 우체국 근무, 기억력 좋아 저항운동의 비밀을 다 외움, 조르지의 애인, 아마데우와 서로 첫눈에 반한 사이. 조르지를 위해 아마데우는 신의를 지킴. 그녀를 죽여야 한다고 판단한 조르지, 주앙과 그레고리우스는 그녀를 국경지역으로 도망치게 함. 그레고리우스 무덤 앞에서 조르지와 서로 눈길 주지 않은 채 조우함. 한참 뒤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역사 강사로 일한다는 소식, 파치마 죽은 뒤 프라두가 사랑에 빠진 여자. 아버지는 비밀경찰에 잡혀 타라파우로 끌려 감.

 

*나탈리 루빈 그레고리우스 제자 

*에바 폰 무랄트 - 세상에나, 라는 별명으로 불린 학생

**에바 아버지는 판사

*부리 / 비에르지니 르도엔 - 동료 교사

*한네스 슈나이더 -그레고리우스가 이스파한에서 가정교사를 할 뻔했던 사람

*- 페르시아 통치자 총칭, , 지배자

*루슬리 부인 - 그레고리우스 옆집 사람

*클로틸드328 - 아드리아나네 도우미

*바다호스 -멩지스 부하, 저항운동 감시

*아드리앙 교수 에스테파니아 피아노 선생님, 바다호스에게 끌려가서 행방불명

*디아만티나 에스메랄다 에르멜린다 도벽으로 아버지에게 판결 받은 여자, 프라두는 아버지의 위선에 복수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친다.

*엔리크 - 프라두 아버지의 운전수이자 비서

*세실리아(336, 345, 514) -포르투갈어 잘하는, 초록색 옷을 즐겨 입는 리스본 어학원 선생?

*줄리에타 실우베리아 집 도우미

*필리피 실우베리아 운전사

*아나 프라두의 가정부?

*오로라 파티에서 본 실우베이라 조카

 

<참조>

*부벤베르크 베른에 있는 도시, 광장

*에스타두 노부 시대(Estado novo1933~1974)-포르투갈의 비민주적 정치경제체제

*타라파우 - 정치범 수용하던 끔찍한 감옥(산티아고 하프베르뎅 섬)

*시도니우 파이스 포르투갈 군인, 호색적인 사기꾼으로 묘사, 포르투갈 대통령

*테오필루 브라가 포르투갈 초대대통령

*모시다드 포르투게자 - 이탈리아, 독일을 본뜬 파시스트적 제도, 학생 강제 조직.

*이스파한 -페르시아 도시, 그레고리우스가 가고 싶어 한 도시

*아니타 에크베르크375 배우(1931~2015스웨덴)

*카보 피니스테레 갈리시아 땅, 에스파냐의 가장 서쪽

**까보 다 로까 포르투갈의 대서양 서쪽 땅끝마을

*리스트론561 오디세이에 나오는 넓은 홀 바닥을 청소할 때 쓰는 쇠꼬챙이, 그레고리우스가 자주 되뇌는 단어.

*리스본 지역 - 벨렘(리스본 외곽), 바이후 알투, 알파마 구역, 아우구스타 거리, 카실랴스(주앙이 있는 요양원), 타호(테주)

*아빌라(스페인, 마리아 주앙과 떠나려고 했던 곳)

*코임브라(아마데우가 의학 공부한 곳)

*살라망카(스페인, 에스테파니아가 역사 강사로 일하는 곳)

 

  

13 갑자기 수수께끼 같은 여자와 만난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 찰나에 들었던 것이다.

20 포르투게스. 그의 귀에 멜로디가 들렸다.

22 57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이제 완전히 장악하려고 한다는, 불안과 해방감이 섞인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33 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 전화기에 대호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허하면서도 장엄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35 포르투게스. 벌써 얼마나 다르게 울리는가! 지금까지 이 단어는 갈 수 없는 나라에 있는, 마법에 걸린 보물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그가 문을 막 열게 된 궁전에 장식된 수많은 보석 가운데 하나였다.

40내가 포르투갈어로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소리 없는 열차를 끌고 가는 우주…. --청렴하고 확고부동하게 서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신의 말과 비슷하고, 또한 과장이나 격정이 없이 정확하고 간결하여 단 하나의 단어나 쉼표도 뺄 수 없다는 점에서 언어의 연금술사가 엮은 시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41 그레고리우스는 유럽 지도를 꺼내 펴놓고, 기차를 타고 어떻게 리스본으로 갈지 생각했다. --그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41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이름 없는 포르투갈 여자, 빛바랜 포르투갈 귀족의 사진, 초보자를 위한 어학 교재,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 때문에 한겨울에 리스본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

44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44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많은가!

51 당신은 절대 날 원했던 게 아니야. - 그레고리우스가 플로렌스에게
55인생을 결정하는 경험의 드라마는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56쓰이는 경우가 지극히 들물거나 어려운 동사 형태를 노련하게 쓰면서 교장이 사랑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 그 ‘자신’이었다. 단어들은 그를 꾸미는 장신구였고, 그가 늘 매고 다니는 나비넥타이와 비슷한 존재였다.

68캐기는 자기 눈을 의심하겠지. 문두스가 지금껏 살아왔던 삶으로부터 도망치다니, 다른 사람들이야 모두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문두스가 그럴 리가.

76나에게 보내는 신뢰 때문에 난 아버지를 사랑했고, 절절한 소원으로 날 짓뉴르는 그 부담 때문에 증오했다. -프라두의 글 중

87어떤 도시를 그곳에 있는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것, 이는 그가 언제나 해오던 일이었다.

89그때 갑자기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이 베르나르두 소아레스(페소아의 필명 가운데 하나)가 책방 점원으로 일하던 도시, 그가 도우라두레스 거리에서 일하며 페소아의 생각 -그보다 앞이나 뒤의 세상이 아는 모든 생각보다 더 외로운 생각 –을 쓴 도시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여기로 왔다.
89묘사된 들판은 원래의 초록빛보다 더 푸르다. 페소아가 쓴 이 문장은, 플로렌스와 그가 결혼 생활을 하며 겪은 일 가운데 가장 예리한 기억을 남겼다. --그 뒤로 그는 어디서든 <<불안의 책>>을 보기만 하면 얼른 지나쳐갔다. 두 사람은 이 사건에 대해 말을 나누지 않았다. 이 일은 둘이 헤어질 때까지 앙금이 남아 있던 온갖 사연들 가운데 하나였다.

92따뜻한 이끼로 덮인 계단에 앉아서 다른 사람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던 그 의사라면 이 책은 그가 직접 출간한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아마도 자비를 들여 출간했을 터였다. 그리고 이 다른 사람이 29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그레고리우스가 찾아야 할 대상이었다.

93독재가 하나의 현실이라면, 혁명은 하나의 의무다. 그렇다면 여기 프라두의 죽음은 정치적인 것이었을까?

97(코우팅뉴) 노인이 고양이와 함께 외롭게 살면서 잃어버린 것은, 거리두기와 친근함에 대한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7우리는 서로에게 이중으로 이방인이 된다. 우리 사이에는 허위적인 외부세계뿐 아니라 외부세계가 각자의 내부세계에 만드는 망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121"헤스텡시아(Resistencia)." 의사는 이 단어를 지극히 당연하게 포르투갈어로 말했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회계사와 의사. 두 사람은 저항운동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고, 완벽하게 변장했으며, 입을 굳게 다물었던 침묵의 대가요 명수였다. (주앙 에사의 삼촌과 프라두 둘 다 저항운동가)

128그레고리우스는 안개에 축축하게 젖은 진열창에 이마를 대고, 곧장 공항으로 달려 취리히로 가는 다음 비행기를 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급박한 욕망은 불타는 듯하다가 떨어지는 열처럼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136그(그레고리우스)는 비밀의 기호인 세드루스 베르멜류스, 붉은 삼나무가 적힌 책을 가지고 온 사람이었다.

178이곳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이런 ‘잘난 척’도 잠은 자야 하는 법. 남은 것은 오만의 시체가 곳곳에 드러누워 풍겨대는 썩는 냄새가 나는 적막감뿐이다. -영국에서 멜로디에게 보낸 프라두의 편지

181그는 베른에 없었지만 베른에 있었고, 리스본에 있으면서도 리스본에 있지 않았다.

182그의 의지가 멈추었기 때문에 시간이 멈추었고, 이 세상도 멈추어 섰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을 만큼 조용히.

183영혼의 그림자. 사람들이 어떤 한 사람에 대해 하는 말과,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하는 말 가운데 어떤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다른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 스스로에 대해 하는 말처럼 확실한가? 스스로의 말이라는 것이 맞기는 할까?--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프라두

196어쩌면 마리아 주앙이 그에게 눈이 멀지 않았다는 것, 다른 사람들처럼 그에게 압도당하지 않았다는 게 (그녀를 사랑한) 이유였을 거요. 그에게 필요했던 게 바로 그거였을 지도 몰라요. 그를 지극히 당연하게 자기와 똑같이 보는 태도 말이오. 자연스럽고 수수한 말과 눈빛과 행동으로 그를 그 자신에게서 구원할 동등함. -바르톨~이 프라두의 사랑 분석

202우리의 모든 행위가 우주 전체로 봤을 때 얼마나 무의미한지 몰라야 천박한 허영심에 빠질 수 있어요. 그건 어리석음이 조아한 형태로 나타난 거예요. - 프라두가 이렇게 말했다고 베르톨로메우가 전해줌.

204장례식이 끝났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 비가 오기 시작했소. 사람들이 부둥켜안고 울었지. 가려고 몸을 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하늘이 열린 듯 비가 퍼부어 뼛속까지 젖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서 있었어. 난 사람들이 납같이 무거운 발로 시간을 묶어두려 한다고 생각했소. 시간이 흐르지 못하도록,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그랬듯 흘러가는 시간이 사랑하는 의사를 이방인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 바르톨로메우

221난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자유와 모든 잔혹함에 대항할 적대감이 필요하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무의미하다. - 프라두의 고교 연설문

307리스본 뒤에는 베른이 있었지만, 잃어버린 베른 뒤에는 더 이상 다른 베른이 없었으므로 지금 느끼는 공포는 더 불안했고 무척이나 위험했다.

312유치함은 모든 감옥 가운데 가장 악질적이다. 창살은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감정으로 도금되어 있어. 사람들은 이를 궁전의 기둥으로 착각한다. -프라두

322왜 나에게는 프라두의 친구 조르지 오켈리와 같은 사람이 없었을까? 신의와 사랑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 독시아데스, 나탈리 등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심적 갈등

335어떤 일을 표현한다 함은, 그 일이 지닌 힘은 보존하고 두려움은 제거하는 것이리라. 페소아가 쓴 글입니다. -프라두가 아버지에게
335성공적인 학기라 되길 바란다. --아버지는 저에게 한 번도 이제 새로 시작하는 학기가 저에게 충족감을 주거나 재미있길 바란다고 표현하신 적이 없습니다. 차에 앉아 우아한 쿠션을 쓰다듬으면서 저는 아버지가 쾌락이라는 단어를 과연 아시기는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버지도 젊었던 시절이 있을까. 하지만 언젠가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나? 과거 언젠가.

341저는 이 먼지 냄새가 법전의 본질에 속하는 게 아닐까, 아무도 그 책을 꺼내지 못하게 만들어 고귀한 책의 내용을 책 스스로만 알고 있도록 하는 건 아닐까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프라두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 중

346제일 허무한 건 욕망이고 그다음이 만족이며, 누군가에게서 보호를 받는다는 편안한 느낌도 언젠가는 결국 부서지는 것이라고. - 프라두의 말

357타인은 너의 법정이다. -프라두의 편지에서

363내가 아빠의 상상에 대해 아는 게 있던가? 왜 우리는 부모의 상상에 대해 이다지도 모를까? 어떤 사람이 상상을 통해 받는 이미지에 대해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과연 무엇을 알 수 있을까? - 프라두가 아버지를 두고

407조금이 아니라 하늘만큼 뛰어나야 했어요. 어머니가 저에게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음험했어요. 어머니는 기대를 말로 표현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난 내 의견을 말할 수도, 생각을 할 수도, 어떤 느낌으로 부딪쳐볼 수도 없었어요. --어머니 앞에서 저항한다는 건 불가능했어요. 어머니의 연기는 실수하나 없이 너무도 완벽한, 압도적이고 놀랄 만큼 완전무결한 걸작이었으니까요. -프라두가 엄마에게 쓴 편지

409어머니에겐 뭔가 아름다운 것, 빛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청소를 하는 집이 사람들을 길에서 만났을 때 어머니가 보이던 품위였다. 비굴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릎으로 기어다니며 청소를 했다. 하지만 시선은 그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 있었다. 저래도 되나? 그레고리우스는 어릴 때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지만, 나중에는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자랑스러웠다.

427오빠는 멜랑콜 리가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며, 인간이 알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깨지기 쉬운 인간의 모든 연약함이 거기에 들어 있어.’ - 아드리아나

440내가 약국을 그냥 가지고 있어 다행이오. 내가 우리의 우정 속에서 살 수 있으니까. 가끔 우리가 결코 서로를 잃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소. -조르지

443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레고리우스가 그의 글을 인용했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체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 마리아 주앙을 만난 그레고리우스가 아마데우의 글을 소개

447메멘토(경고)는 권력을 가진 억압자들에게는 위험하다. 이들은 억압당하는 자들의 소원을 아무도 듣지 못하게, 그들 스스로도 듣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을 꾸미니까. - 아마데우

447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나중에도 언제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고치기, 메멘토를 안락함과 자기기만과 꼭 필요한 변화에 대한 불안에 대항할 도구로 사용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이 보석을 사고 저 유명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 스스로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 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변에 누워 있거나 카페에 앉아 있기, 이것도 메멘토에 대한 대답이다. 지금까지 일만 해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답.

519덧없음. 프라두가 좋아하던 단어 가운데 하나라고 마리아 주앙이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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