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전집 1 : 시 - 화사집.귀촉도.저정주시선.신라초.동천.서정주문학전집 미당 서정주 전집 1
서정주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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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기시가 좋더라 

  친일 행각, 기회주의자, 변절주의자로서의 시각은 잠시 보류하고 읽었다.

  흔히 미당의 시세계는 3단계로 나눈다.  화사집 때의 시기, 귀촉도의 시기, 신라초와 동천의 시기로. 누가 뭐래도 난 분화구 같고 관능미가 넘치던 화사집의 시기가 젤로 와닿는다. 화사집에 실린 자화상·문둥이·화사〉 등의 시는 덧댐도 없고 눈치 보지도 않는다. 탐욕도 없고 계산도 보이지 않는다. 진격의 옷소매 뒤에 수줍은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는 걸 느낀다. 

  2단계인 귀촉도의 시기는 내게 덜 흥미롭다. 동양적인 구도의 의지와 내면 탐구, 전통적 정서 등은 그 시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초기 시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국화옆에서그 시기의 시가 비교적 세간에 더 많이 알려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3단계로 알려진 신라초동천의 시기는 다분히 의도적 시적 형상화의 시기로 느껴진다. 신라 정신 계승과 동양 사상 및 불교 탐색의 시기는 시가 '와서' 쓴 것 같은 초기 때에 비해 시를 하나의 사상처럼 만들어 쓴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마재 신화 이후로는 어린 시절  또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풍광을 짚어내어 한국적 정서를 확대해나갔다. 완숙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초기시를 읽을 때의 손등 위에 얼음이 떨어지는 듯한 쨍한 느낌은 덜했다. 광맥 같은 완숙미도 초심의 염결성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게 시집을 훑는 내내 들었다. 

 

 

   2. 시와 삶은 다르더라

  서정주는 국가다, 라고 고은 시인이 말할 정도로  시적 형상화에 있어서는 천의무봉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럼에도 고은 시인이 스승인 미당의 행보에 대해서만은 비판할 수밖에 없듯이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시인이 꼭 훌륭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니까. 일제를 찬양하는 10여 편의 시와 소설, 비평문을 남겼고, 독재자 이승만을 기리는 이승만 전기를 썼으며,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베트남 파병을 촉구하는 시를 발표했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는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그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전두환의  56세 생일에는 축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고, 소극적인 자세로 가담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음 두 시가 보여주고 있다. 너무 나가 버렸다.

 

   예시1)송정(마쓰이) 오장 송가 -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예시2)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잘사는 이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육천만동포의 지지를 얻으셨나니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987)

 

 

 3. 국정농단 사태를 예언했더라 

  - '순실과 그네'가 등장하는 시를 읽다가 빵 터졌다.

 

223편지 - 서정주

   

내 어릴 때의 친구 순실이

생각히는가

아침 산골에 새로 나와 밀리는 밀물살 같던

우리들의 어린 날,

거기에 매어 띄웠던 그네의 그리움을

 

그리고 순실이

시방도 당신은 가지고 있을 테지

연약하나마 길 가득턴 그 때 그 우리의 사랑을.

 

그 뒤,

가냘픈 날개의 나비처럼 헤매 다닌 나는

산나무에도 더러 앉았지만,

많이는 죽은 나무와 진펄에 날아 앉아서 지내왔다.

 

순실이

이제는 주름살도 꽤 많이 가졌을 순실이

그 잠자리같이 잘 비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방은 어느 모래사장에 앉아 그 소슬한 비상의 별빛을 펴는가

 

죽은 나무에도 산 나무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난들에도 구렁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이젠 자네와 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그 골진 사랑의 떼들을 데리고

우리 어린 날 같이 다시 만나세

갓트인 연봉우리에 낮 미린내도 실었던

우리들의 어린 날 같이 다시 만나세

 

 

  4. 시 맛보기 - 밑줄긋기로 대신

 

27자화상 -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1937년 23세 추석, 1935신건설?)



31화사(花蛇) -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기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22세, 1936년)



85귀촉도 -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128신록 -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과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135나의 시 - 어느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안 동백꽃나무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씨러워 줏어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쉬임 없이 그짓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뒤 나는 연년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줄 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줏어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손에서 땅우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 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241동천 –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265선운사 동구 –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286한양호일 - 열대여섯짜리 소년이 작약꽃을 한아름 자전거 뒤에다 실어 끌고 이조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내가면서 연계같은 소리로 꽃사라고 웨치오. 세계에서 제일 잘 물디려진 옥색의 공기 속에 그 소리의 맥이 담기오. 뒤에서 꽃을 찾는 아주머니가 백지의 창을 열고 꽃장수 꽃장수 일루와요 불러도 통 못 알아듣고 꽃사려 꽃사려 소년은 그냥 열심히 웨치고만 가오. 먹기와집들이 다 끝나는 언덕위에 올라서선 작약꽃 앞자리에 넹큼 올라타서 방울을 울리며 내달아 가오.



294가벼히 – 애인이여 너를 만날 약속을 이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입사귀나 하나 가벼이 생각하면서 너와 나 사이 절간을 짓더라도 가벼이 한눈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지어 놓고 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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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6-12-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예요. 다트 아이즈님~~
올려주신 글 반갑게 읽고, 내 어릴 때의 친구 순실이 읽을때는 ‘빵‘터졌습니다. ㅎㅎ
2017년에는 자주 뵈어요~~

다크아이즈 2016-12-25 17:20   좋아요 1 | URL
보슬비님 여여하신지요? 반갑습니다.
알라딘에서 뜨내기처럼 왔다갔다하는 신세라...
게으름이 덜해서 자주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12-2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 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2016-12-25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1-0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 님 오신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죄송...
저도 서정주 읽을 때 말씀하신 그 부분이 참 걸렸었죠.
일본어로 시를 안 쓰고 더 모국어를 고집해 출판 가능한 곳에만 발표하다 그마저 폐간되자 시를 발표하지 못한 백석과 비교되기도. 헌데 북에서 주체사상 찬양 시를 쓴 백석 시가 망가진 것도 마음 아프더라는... 시대 속에 스스로를 굽히지 않고 나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다크아이즈 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다크아이즈 2017-01-09 00:53   좋아요 0 | URL
백석이 북에서 그런 시를 썼군요. 짠하네요.
완전히 굽히지 않고 살아갈 순 없는 게 인간 한계지요.
아갈마님도 새해엔 더욱 행복하시길~

2017-01-07 0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7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7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0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