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 먼 길을 오셨다. 작가와의 만남에서 사회를 보았다. 대담 원고도 직접 마련했다. 사회 보는 것은 두 시간 남짓이지만, 대담 원고 준비는 며칠이 걸린다. 원고 마련하는 게 몇 배나 힘들다. 워낙 달변이시라 마련한 질문지의 삼분의 일은 날렸다. 단답형 작가는 질문 항목이 많이 필요하지만 선생님의 경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말이 말을 이어가는 형국이라 질문지가 없어도 진행이 가능할 정도였다. 참고로 작가와의 대화 질문지 원고를 올려본다.

 

 

 

<선생님을 곁에서 본 소감>

 

1. 잘 생기셨다. 고희가 코앞인데 오십 대 중반으로 보임.

 

2. 날렵한 몸매를 지니셨다. 할아버지 삘이 절대 아님. 말 그대로 청년작가 분위기

 

3. 담배 피는 모습마저 섹시하셨다. 잠깐 휴식 시간에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셨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몇몇이 황홀경에 빠졌다는. 재바르게 누군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내줬다. 그 어떤 절경보다 멋진 장면이지만 작가의 프라이버시 존중을 위해 공개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 

 

4. 남저음 목청의 중후한 목소리를 지녔다. 달변가가 저 목소리로 강의한다고 생각해보시라. 참 듣기 편안하다. 열정마저 넘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5. 이 모든 것의 갑은 무엇보다 작가 정신이 투철하시다는 것,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숨결로 느낀 순간이었다.

 

 

 

<대담 내용 간단 정리>

 

  아버지와 나의 세대는 광풍의 질주시기였다. 개별자의 꿈보다 공동체의 희망을 위해 야수적으로 일만 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라는 사회적 명령에 저항할 틈조차 없었다. 아버지들이 바친 헌신으로 우리는 이만큼 누리고 산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의 눈물과 땀의 결과가 오늘날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부권은 내려앉고, 가족은 해체되기 직전이다. 물질에 오염된 환자만 양산했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안락한 삶을 제공했지만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각자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행복하다. 세상이 주입해준 삶이 아니라 하루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구든 행복해질 준비는 되어 있다. 다만 우리가 불행한 것은 더 가진 자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벽 넘고, 달 뒤엔 무엇이 있을까. 늘 삶의 이면에 대해 의심하며 탐구해야 한다. 표면 구도 너머의 욕망이 없으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눈앞에 출렁이는 황금물결의 완벽함이 이 세계의 완벽함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허기와 결핍의 문 앞에 서성여 본 사람은 그 이면의 눈썰미도 발달하기 마련이다.

 

 

 

  내 안엔 짐승이 우글거린다. 이 짐승들은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들을 잠재우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품을 쏟아낸다. 창조적 자아가 발현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자기 갱신, 자기 변혁에 대한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늙어도 젊다. 청춘은 내부의 명령이지 표피적 현상이 아니다. 따라서 내 안의 창조적 짐승 한 마리를 끊임없이 키워라.

 

결국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사는 존재이다. 사랑의 불모지에서 헤매는 우리, 사랑의 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랑의 끝은 결국 사랑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대담원고>

 

*오프닝 - (성악 합창으로 오프닝) 먼 길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서 무척 영광입니다. 올해의 우리 도시 한 권의 책이 선생님 작품『소금』입니다. 이 책을 중심으로, 작가님과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도시에 와보신 적은 있는지요? 이곳에 대한 이미지나 여행담이 있다면 잠깐 들어봐도 될까요?

 

 

*등단 40년 만에 고향 논산(강경)으로 가셔서, 펴낸 40번째 소설이『소금』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소금에 나오는 강경읍이 실제 선생님 학창 시절 강경읍 모습하고 비슷한지, 아버지 캐릭터 선명우와 작가님과의 연관성도 궁금합니다.

 

 

*흔히 ‘자본 3부작’으로 『비즈니스』,『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소금』을 언급합니다. ‘자본주의 논리나 소비 중심 사회에 저항’ 하는 작가정신이 느껴지는데 이런 주제로 작품화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소금』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아버지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도 좋은데요,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었다.” (p.150∼151) 선명우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작품으로 토론을 해보면 얼마간의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정서적 충격을 받습니다.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절규하는 독자들도 있거든요. ‘아버지의 가출’이라는 이 도발적인 발언에 대해 선생님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빨대론 부분도 여쭤 보고 싶습니다. 빨대 하나 들고 세상의 구조에 충실했던 이 땅의 아버지들. 핏줄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이 시대 염부1, 염부2로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을 옭아매었는데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부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빨대론은 이 사회에 여전한 건지요?

 

 

*얼마 전 신문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만났습니다. “압축성장시기는 ‘불’의 시대였다. 그 결과 ‘물’이 부족한 사회가 됐다. 오직 불같이 살았던 애비들의 시대를 부정해야 한다. 죽여야 한다. 새로운 삶의 동력을 물에서 끌어내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선생님께 불과 물의 이미지는 어떤지 ‘소금’에서의 아버지와 연관 지어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께 따라 붙는 청년작가라는 별호가 무척 맘에 드는데, 선생님께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면 누구나 청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희를 바라보는 연세에도 청년 작가를 지켜온 구체적인 비결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촐라체』를 아드님 박병수 연출가의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올린 적 있는데, “소설은 원작일 뿐이고 연극은 연출자의 작품이다. 원작자이자 아버지의 작품이 아니라 너의 작품이 되어야 한다” 고 말씀하셨는데요, 원작자로서 저런 쿨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선생님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더불어『은교』영화 때도 별 간섭하시지 않으셨는지요?

 

 

*잠깐 쉬어가겠습니다. 시 한 편으로 분위기를 돋우겠습니다. 전문 낭송가의 목소리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듣도록 하겠습니다.

 

 

*소설에서 첫사랑인 세희 누나 부분이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님 개인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에세이『스무살을 건너는 8가지 이야기』에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때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전반기라고 하셨습니다. 가난 때문에 가족들이 싸울 수밖에 없었고, 등록금이 없다고 아버지가 대학을 포기하라고 했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 하시는데요. 외로움을 구원받아 보려고 소설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결핍이나 외로움이 문학하는 큰 이유가 되는 거지요?

 

 

*인터뷰나 강연 내용을 보면 따뜻한 카리스마가 전해져옵니다. 인상 깊었던 말씀은 “사랑의 손가락이 보름달을 보고 보름달이라고 하는 건 옳지만, 더 가진 자들이 이것이 보름달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유하신 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 현상이나 사람을 대하는 선생님만의 시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국내외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애정이 가거나 권할 만한 소설이나 인문서, 역사책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1993년 절필 선언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절필 전과 후로 선생님 문학관이 나뉜다고 스스로 말씀하셨는데요, 절필 선언 이유와 전후의 작가관의 변화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심각한 얘기만 하면 너무 무겁지요? 여기서 71.12.6일자 선생님의 연애편지 한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25세 무렵 그야말로 청년 박범신 시절의 감수성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연애편지 대상은 당연히 지금의 사모님입니다.

 

 

<그러나 내 사랑하는 당신이여! 콘사이스를 내다 파는 나의 이웃이나 / 막걸리로 창자가 뒤틀려도 어찌할 수 없었던 어느 날 / 나의 허물을 당신은 너무 나무라면 안 된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이 / 생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었던 / 고귀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을 붙잡아 매달 수는 없다. 우리는 다만 개성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그 생을 모자이크 해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곰, 우리 좀 더 겸손해지자. 생이라는 놈은 그냥 오만하게 놔두고 우리는 그 오만의 표피에 우리 나름의 풀칠을 하자. 그래서 우리의 성실과 참다운 인내를 그려 붙이자. 그렇다. 우린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은 우리가 백 번 겸손해도 좋을 만큼 깊고 뜨겁고 목이 멘다. 목이 멘다.>

 

 

*“아직도 아내는 나를 보면 설렌다.”고 자랑하신 인터뷰가 기억나는데 소금에 나오는 김혜란 같은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사모님과 살고 계시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가출을 감행한 채 끝내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상을 구상하셨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분명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셨을 선생님께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상명대 대학원에서 ‘소설창작학과’를 개설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설 문학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무척 반가운 소식입니다. 전업 작가와 후학을 양성하는 것의 양립에 대한 갈등도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의 구체적인 글쓰기 방식이 궁금합니다. 하루에 쓸 분량과 시간을 정해놓고 쓰시는지 아니면 자유롭게 쓰시는 타입인지.

 

 

*여전히 논산(강경)과 서울 생활을 번갈아 하시는지요? 두 곳의 일상을 비교해 들을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구상하거나 출간될 작품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십시오.『소소한 풍경』이 가장 근작인 걸로 아는데 작품 소개말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 말씀 듣고 더 많은 독자들이 선생님 책을 사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시간입니다. 독한 질문일수록 좋습니다.

 

 

*클로징 - (쳄버오케스트라 클로징) 박범신 작가와의 대화에 동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타 인터뷰 상황 맞춰 애드리브로 마무리)

 

 

 

 

<작가 사인회>

 

 

 

<미니 강연>

 

 

 

<사회용 질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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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23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님, 멋져요~ 진행사진도 올려주시징!! ^^
박범신 작가님은 TV에서만 보고 실제 뵌 적은 없어서 궁금하네요.
우리 어릴 때 박범신 작가님 소설에 열광했는데... 소금도 봐야겠어요.

다크아이즈 2014-11-24 06:43   좋아요 0 | URL
연세에 비해 훈남인데다 마력의 목소리까지.
그치 7, 80년대 때 김홍신 작가와 더불어 많이들 읽지 않았었나요.
아침이 너무 늦게 오는 게 참 좋네요. 일찍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껌껌하지 왠지 시간을 번듯한 느낌. 오기언냐, 오늘도 좋은 하루 시작하세요~

라로 2014-11-25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박작가님 답변도 간단히 올려주시면 좋겠는뎅~~~ㅎㅎ

페크pek0501 2014-12-0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게 지내시는군요. 서재에 뜸했던 이유를 헤아리게 되네요.
글 쓰는 취미를 가진 자는 작가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 법인데 질문지 작성 잘 하셨네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허기와 결핍의 문 앞에 서성여 본 사람은 그 이면의 눈썰미도 발달하기 마련이다.˝
위안 한 줄 얻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