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혁신이라는 말

 

“보수는 혁신합니다.” 여당 회의실 배경 현수막에 적힌 글귀가 뉴스 화면에 잡힌다. 곱씹자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문학 용어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보여주자는 것일까. 말뜻만 살펴도 보수는 혁신의 대상은 될지언정 혁신의 주체는 될 수 없다. 즉, 보수를 혁신할 수는 있어도 보수가 혁신을 할 수는 없다.

 

 

보수의 사전적 풀이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고,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다. 한 마디로 전자는 지키려 하는 것이고, 후자는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가급적 지키려는’ 성질의 것이 어떻게 ‘완전히 바꾸려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혁신(革新)은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의 껍질을 벗겨 무두질하여 쓸모 있는 가죽이 되게 새롭게 만드는 일이 혁신이다. 피부를 벗겨낸 상태인 피(皮)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완전히 다른 제품인 혁(革)이 되려면 거기에다 여러 까다롭고 힘든 공정을 보태야 한다. 단순한 물리적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위적 제품이 되려면 피와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지나, 가죽이 문드러지고 펴지기를 수십 차례 해야 한다. 극한의 고통 뒤에야 ‘혁신’이 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키려는 보수는 새로워지려는 혁신과 궁합이 맞으려야 맞을 수가 없다. 보수의 태생적 운명이 혁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혁신의 옷걸이에다 일말의 ‘개선’이라는 옷이라도 걸어보려는 시도, 혹 그것을 두고 ‘혁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나쁜 것을 고쳐서 좋아지는’ 개선과 혁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수의 말뜻에는 미묘하나마 변화를 수용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으니 개선이라는 말과는 얼추 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무결한 변화를 뜻하는 혁신은 보수라는 말과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날마다 ‘혁신’을 부르짖는 그들 앞에서 국민은 ‘개선’의 기미조차 느끼지 못한다. 정치계의 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심각한 인플레 놀이 중이시다!

 

 

 

 

 

 

 

 

 

 

 

 

 

 

 

 

 

 

 2. 연민도 지나치면

 

정직하기는 쉬워도 편견을 버리기는 어렵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축적된 지식이나 충분한 경험을 쌓기 전에,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섣불리 판단하거나 평가한다. ‘교육자 집안 출신이라니 믿을 만한 인품을 지녔을 거야, 동남아 노동자니 가난하고 지저분할 거야, 시각장애인이니 무조건 도와야 해.’ 이런 일상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잘못된 예측을 했지만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에 기초하여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편견이라고 보지 않아도 좋단다. 편견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 같아 맘이 한결 편해진다. 단순한 편견을 넘어 ‘골통’ 이 되는 경우도 있다. 뒷받침이 되는 근거나 정보 앞에서도 그것을 부정하고 제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은 가치 기준점이 오직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상황이나 대상을 바로 보려 하지 않는다. 모든 걸 제 기준에서만 실제보다 높이 평가하거나 낮게 평가한다. 편견이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편견이 무서운 건 여차하면 그것이 ‘집단의 결속’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귀속 본능이 있는 인간은 제 안정을 꾀하기 위해 부지불식간에 대립 구도를 만든다. 잘 알지 못하고 친근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완전한 감정은 집단적 편견으로 확대되고, 무죄한 대상들은 방패 없이 그 편견의 칼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 문예 교실 종강을 했다. 개인적인 보람은 조금이나마 가졌던 그들에 대한 내 편견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점이다. 그들에 대한 내 무지는 ‘무조건 보호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여나 상처 받을까 조심스레 접근했고, 그러다 보니 의도한 만큼 진솔한 시간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이 인다. 그들 말처럼 그들도 혼자 밥 떠먹을 수 있고, 지팡이에 의지해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연민도 지나치면 자만이고, 배려도 앞서면 편견이 된다. 이런 생각들이 집단적 편견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 사실을 깨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3. 예술혼 끝에는

 

‘천국의 문’이 서울에 왔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이 걸작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청동 문짝 부조물이다. 로렌초 기베르티의 작품인데 7미터 높이에 6톤 무게가 나간단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념해 경복궁내 고궁박물관에서 다른 작품들과 전시되고 있다. 피렌체에 가면 이 ‘천국의 문’과 ‘두오모 쿠폴라’(대성당 돔)만은 꼭 봐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는 작품이다. 피렌체의 산 조반니 광장에는 세 개의 중요 건물이 있다. 대성당, 세례당, 종탑이 그것이다. 그 중 세례당을 장식하는 세 문 중의 하나가 천국의 문이며, 대성당 두오모의 돔 지붕 형식이 쿠폴라이다. 구약성서의 주요 내용이 각 10장의 판에 새겨진 ‘천국의 문’은 동시대의 예술가인 미켈란젤로가 인정할 정도였다. ‘너무 아름다워 천국 입구에 그저 서있고 싶다.’ 라고 그가 말한 것을 계기로 ‘천국의 문’이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문으로 만들 부조상을 현상공모했을 때 기베르티 외에 응모한 주요 인물은 금 세공사였던 필리포 브루넬레스코였다. 두 시작품은 지금도 전해져 관광객들은 비교해 볼 수 있다. 브루넬레스코의 것은 조각의 느낌이 강하고 혁신적인데 비해, 기베르티 것은 회화적이고 보수적인 느낌이 난다. 공모전의 최종 승자는 기베르티였는데, 실력이 나아서라기보다 기법 상 좀 더 가벼워 경제적인 측면도 고려되었다고 한다. 기베르티는 천국의 문과 다른 한 쪽문을 완성하는데 거의 한 평생을 쏟아 부었다. 브루넬레스코도 패배자로 남아있지는 않았다. 공동제작을 권유한 관계자의 청을 마다하고 건축 공부를 했다. 고대 로마 유적 및 구조물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하여 완성한 작품이 바로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이다.

 

 

진정한 예술가에게 승자니 패자니 하는 말은 무의미하다. 숭고한 예술혼 끝에는 완성된 작품과 무한한 감동이 있을 뿐이다. 두오모의 돔을 보러 당장 이탈리아까지는 갈 수 없고, 천국의 문 숨결이라도 느끼게 고궁박물관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이 천상의 아름다움 전은 11월 중순까지 계속된다.

 

 

 

 

 

 

4. 이상적인 접근법

 

“인간에게는 크게 세 가지 접근법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고, 두 번째는 늘 남을 자기보다 앞세우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을 처음에 두고 남들 또한 고려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행동치료 전문가 조셉 월피의 말이다.

 

 

늘 남을 자기보다 앞세우는 이들 곁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그런 현상은 인간 속성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대접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대접받기를 더 좋아한다. 누군가를 인정하기도 좋아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상대를 알아봐주려 하는데 상대가 먼저 나를 알아봐주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약점이 있다. 바로 상처 받기 쉽다는 것. 베푼 만큼 상처 받기 쉬운 그들의 약점은 못된 타자들이 새긴 불 자국이다. 자신을 돌볼 틈조차 타자에게 기꺼이 할애한 그 맘을 염치 있는 상대라면 알아봐주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모색한다. 하지만 사람은 천차만별이다. 마음 결 고운 그런 사람들에 대한 겸허한 수용 없이 그들을 이용하고 제 악행의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소위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이 뒤통수에 당해본 ‘남을 우선하는 사람들’ 몇몇은 화병이 생기고 심하면 우울증까지 앓게 된다. 주고도 잃게 된, 자기모멸을 경험한 이런 사람들이 전문 상담가를 찾는다. 그 데이터를 분석한 조셉 월피 같은 이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된다. 남을 생각하는 것도 나를 아프게 하는 선이라면 곤란하다고.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처음에 두고 남을 고려하라고.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그런데 나를 우선하고 잉여의 에너지로 타자를 고려하라는 전문가의 충고가 ‘이상적인 접근법’이긴 하지만 배려가 습관화된 사람들에게는 그것조차 어울리는 옷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전문가의 그런 충고를 거부하는 착한 심성이 그들에게는 본능적으로 꿈틀댄다는 것. 그들을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배려 때문에 얻은 상처마저도 그들은 배려한다는 것. 그리하여 누가 뭐래도 자신보다 타자를 우선한다는 사실!

 

 

 

 

 

 

 

 

 

 

 

 

 

 

 

 

 

 

 

 

5. 청양고추

늦은 여름휴가를 간다. 안면도를 가는 중인데 경유 도시 중에 청양이 나온다. 유독 붉은 고추 홍보물이 여행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마침 청양고추 및 구기자 축제 기간이라 그 열기가 피부로 와닿는다. 청양도 영양이나 청송만큼 고추 특산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모양이다.

 

 

‘청양고추’ 없는 우리식 밥상을 상상하면 싱겁기 그지없다. 흔히 ‘땡초’로 불리는 청양고추가 시중에 나온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 유래 논쟁이 자못 흥미롭다. 1980년대 초반 모 종묘업체가 개발한 고추 품종 이름이 ‘청양’이다. 품종개발자인 유일웅 박사의 공식 인터뷰에 의하면 청양고추 품종은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잡종 교배하여 개발했다. ‘청송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임상재배에 성공했는데, 현지 농가의 요청에 따라 청송의 청(靑), 영양의 양(陽)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하고 품종 등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름에 걸맞게 청양군도 청양고추의 연고권을 주장한다. 1970년대 모 종묘업체가 청양농업기술센터에서 매운 고추 씨앗 여러 종을 받아갔다고 한다. 개발 과정에서 여러 품종이 섞였다 해도 매운 고추의 뿌리는 청양 지역이 틀림없다는 논리다. 청양군 유래설은 설득력이 다소 약하긴 하지만 지방자치 시대를 살아가는 나름의 현명한 대처법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청양고추는 브랜드 명이지 산지 이름이 아니다. 따라서 소비자로서는 원조 논쟁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고추가 그 세 지역에서만 나는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최대 청양고추 재배지는 밀양이란다. 선의의 경쟁이 좋은 품질을 낳는 것이지 원조라는 후광이 품질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손으로 개발한 그 품종은 IMF 사태이후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 경영난으로 대부분의 종묘 회사들이 다국적 회사에 흡수되었다.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청양고추를 먹고 있는 것이다. 청양고추의 빼놓을 수 없는 진실은 몹시 매운 맛을 지녔다는 것과 매운 값만큼의 톡톡한 로열티를 지불한다는 것.

 

 

 

 

<전주 PNB 풍년제과 수제 초코파이>

 

<군산 이성당 팥빵과 야채빵을 기다리는 사람들, 당근 우리 부부도 기다렸다!>

 

*늦휴가지는 군산과 전주였다. 빵집 두 군데 순례. 군산의 이성당은 예상대로 줄이 나래비로.

한 시간을 기다려 이름 세 타는 팥빵과 야채빵을 샀다. 인당 각 10개 5개씩 살 수 있다. 팥빵은 속이 꽉 찼다는 장점으로 승부하는 것 같고, 야채빵은 울 아저씨는 맛 나다는 데 미감 바닥인 나는 잘 모르겠다.

  전주의 PNB풍년제과는 수제  초코파이로 유명하다. 본점에 들러 열 개를 샀다. 단 것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이다. 수제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엄청 복잡했지만 이성당처럼 사람 줄 서게 하는 수고는 끼치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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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9-0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셉 월피의 이야기가 눈에 띄네요.
저도 그런 그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너무 착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 위주로 사는 사람들이 고생하는걸 많이 보게 되요.

줄 서는건 싫어하지만 팥빵, 야채빵은 먹고 싶군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9-0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당과 풍년제과 반갑군요. 전 전주와 군산에서 각각 1년 씩 있었지만 막상 먹어보지는 않았네요. 단 음식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하지만 이성당은 정말 몇 번 사볼까 하고 갔다가 줄 서 있는 거 보고 식겁해서 지나치고는 했던 곳입니다.

라로 2014-09-04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각장애인들도 가르치셨어요!!!! 하여튼 대단대단!!!
청양고추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요~~~. 언니 최고!!^^
기베르티보다 브루넬레스코의 짧은 이야기(물론 길었을 인생이지만)가 더 감동적인 걸요!!! 저는 아무래도 브루넬레스코 타입~~~.ㅋ

저는 초코파이는 별로,,,야채빵에 10표요!!ㅎㅎㅎㅎ
대전 성심당에서 줄서서 튀김 고로케와 부추빵!!!!!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부추빵이 젤로 먹고 싶네요,,,!!성심당 부추빵에 100표. 튀김 고로케는 반 먹으면 벌써 질리지만 부추빵은~~~~~~.저 혼자 10개 먹을 수 있어요!!!ㅎㅎㅎㅎㅎㅎ
오늘 아침 직장 근처에 있다는 J.J Bakery라는 이름난 빵집을 어렵게 찾아가서
빵을 잔뜩 사가지고 왔어요.
홋가이도 쉬폰이라는 것도 샀는데 어찌나 부드럽던지;;;;
흐미,,,오늘 아침은 어째 빵 야그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4-09-0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직하기는 쉬워도 편견을 버리기는 어렵다" - 이 말을 새겨 둬야 겠어요.
교단에 서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그 편견으로 인해 조금 말썽 부린 학생들이 완전히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상처를 주기보다 보듬어 줘야 하는 건데 말이죠. 더 코너로 몰아 부치는 경우가 있으니... 옳지 않은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세상이라는 게 슬픈 일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9-0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3자들이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자세를 취해도 되지만 지자체끼리의 원조논쟁은 해당 지역 이해관계자들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죠.청양고추 논쟁도 그렇습니다.일반인들은 청양고추하면 청양을 떠올리지 청송과 영양의 머리글자를 따서 청양고추가 되었다는 것을 모르죠.사실 보통 사람들은 타지역 지명에 대해 그리 신경을 안 쓰잖아요.게다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는 청양이 더 가까와서 놀러가기도 좋죠.칠갑산이 노래 덕분에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아마 청송은 주왕산 국립공원 덕에 아는 사람이 있어도 영양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걸요.영양이 영남유림 전통이 강한 곳이지만 그런 전통하면 아무래도 인접해 있는 안동의 지명도에 밀리죠.영양 사람들에겐 자기 고장 지명도가 낮은 게 답답한 현실이겠지만...

다크아이즈 2014-11-23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단 님들,
지가 알라딘에서만 조울증이 있어서 바람처럼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ㅋ
알라딘 들른지 넘 오래 되어서 일일이 댓글 못 달아 드려요.
대신 윗 분들 서재 돌면서 이쁜 댓글을 달겠습니다.
지금 차례대로 달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