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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아이스 ㅣ 문학동네 시집 81
송승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시인의 자서를 보면서 불현듯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바라본다' 단 한 문장에 불과하였던 그것은 나로 하여금 '이거 뭘 하려는 수작이지' 하는 불안을 갖게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시를 마주하자마자 '어랍쇼' 라고 했고 세 번째, 네 번째 시를 읽어 가면서 '빌어먹을' 이라고 실제로 발음하였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제목이 어떤 역할을 할 것만 같은데 도대체 무슨 역활을 하는지를 '라이터' 에 와서 겨우 눈치 챌 수 있었다.
라이터
새
불 살라먹은 물에 녹아
단단한 몸 안에서 출렁이지
단 한 번 입 밖으로 토해내기 위해
그리고 기다려
찰나를
돌가루 튀는
울음소리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풀
꽃
붉은
그 새의 이름은 없어
지금 저 자욱한 공장 굴뚝 연기 사이로 날아가는
보이지 않는 새
(p.23)
그리고 앞서의 '성냥' 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고 결국 이 시집은 시인의 수수께기函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다 무리를 잃고 부리도 발
톱도 둥근 머리 속에 파묻은 붉은 새 한 마리 어두워지는 저녁을
응시한다
일어나는 불꽃 타오르는 불길 검게 타들어가는 나무 위로 새
가 날아간다 바닥에 떨어지는 재
인큐베이터 갓난아이가 가파른 숨을 쉬고 있다
(p.15)
거짓말이다. 그의 시 제목들이 그의 관찰 대상이 되었다는 것과 그 관찰 대상은 실제의 관찰 대상이기도 하면서 관찰 대상에서 비롯되는 정서로써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였는데 결국 '라이터' 나 '성냥' (다른 대개의 시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의 독립된 마지막 한 줄의 의미는 도저히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의 시를 이해하였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실 어떤 시인의 시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였다고 자부 할 수 있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때로 시인 자신 조차 이해하기 힘든 시를 잉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근거 부족으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방언처럼 터져나오는 시적 언어의 홍수를 체로 걸러내어 전시한 시인의 시를 시인은 스스로 온전히 해석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인 어쩌고저쩌고 하는 문제는 나 따위 한 개 독자가 입에 담을 계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기로 하고, 그런데 이거야말로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는 놈 중의 최고로 생각되는 놈이 이놈인데
모터사이클
단풍이 하루 22km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
북쪽에 첫눈이 도착한다
(p.29)
작가에게 문의를 넣어보고 싶은 심정이지만 정형화된 의미를 찾으려 하는 나의 고루함을 스스로 비난함으로써 중뿔난 의문은 잠재워 두기로 한다.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보면서 시인의 시가 좀 더 분명한 구조로 다시 내 좁은 시야의 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그 깊이가 훨씬 더 깊었던 것으로 그의 시가 신기루처럼 멀리서 볼 때는 분명해 보였다가 가까이 다가가니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듯하였다. 아래는 해설의 일부 인용이다.
주어도 없는 '바라본다' 는 말에 걸맞게 시인은 사물의 편에 서 있긴 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사물의 즉자적 단단함이 아니다. 벌써 사물화한 의식이 이번에는 다시 사물을 의식화화기나 한 것처럼 사물들은 늘 무엇으로 왜곡될 기회를 노리고, (p.59)
시인 송승환의 자기 검열은 꿈과 환상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끈질기고 확실하게 그것들과 교섭하는 방식이다. (p.67)
사물에 투영된 사유 혹은 사유에 투영된 사물, 어쨌거나 그의 시선이 닿는 사물에 관한 언어가 날 것이든 가공의 것이든 그가 바라봄의 결과로 얻은 것으로 시인의 시선과 같게 되는 때 독자도 그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아득한 일이지만 여러가지 의미에서 재밌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