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자루, 굵고 긴 똥 덩이, 난쟁이의 굵고 긴 똥 덩이가 길어봐야 얼마나 길겠나. 하여 샤워를 하고 몸을 닦으며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속의 나를 닮은 난쟁이 똥자루를 슬픈 표정으로 노려보게 된다. 대체 저 난쟁이 똥자루 같은 자는 어쩌자고 저리도 하체가 짧단 말인가. 사실 내가 슬픈 이유는 단지 하체가 짧기 때문만은 아닌데 하체에 비하여 지나치게 발달한 상체와 머리의 부조화가 나로 하여금 그를 측은하게 노려보도록 조용한다. (나로 하여금 목적어 부사 종용하다의 문장이 나의 글에 어찌 이렇게도 자주 등장한단 말인가, 반성해야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아이의 몸뚱이에 어른의 얼굴을 얹은 것 같고 그래서 퍽 볼썽사납다. 나도 사실 머리를 길러보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은데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므로 암묵적인 두발규정 탓에 그렇게 하지 못함이 우선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나는 머리가 커 보일까봐 일부러 짧게 깍는 경향이 강함이 사실이다. 입대 신체검사에서 나의 키는 171.5cm 였다. (반올림을 염두에 두고 0.5mm 까지 기록하는 이 가엾은 주도면밀함이여) 제대를 하고 기록된 나의 키는 169cm 였고 그 몇 해 후 회사 신체검사에서의 나이 키는 166.8cm 로 기록되었다. 이런 식으로라면 나의 지금 키는 165cm일 가능성이 없잖아 존재하고 그래서 지금도 낙하하는 꿈, 비행하는 꿈을 자주 꾸고 키가 큰 사람으로 꿈에서 생활을 하다가 잠을 깬 후 현실세계의 나를 자각하며 조금 슬퍼하기도 한다. 일병 일호봉 (일호봉도 호봉인가) 때 사제 생활 (사제는 프리스트가 아님을 주지하지 아니하여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 꿈을 실컷 꾸다가 눈을 떴는데 시야에 흐릿하게 보이는 정면의 사물을 어두침침한 가운데 식별하기 위하여 집중을 하다가 그것이 체스트로 (어떤 이들은 관물대 라고도 부른다) 확인된 직후 내 가슴이 느꼈던 그 실망감과 박탈감에 비견 할 만한 나의 키에 관한 컴플렉스이자 원망(願望)이다. 그러고 보니 프로필 사진의 내 다리가 잘려 있다. 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가엾은 주도면밀함을.    



 
 
다락방 2012-05-21 13:25   댓글달기 | URL
저는 초등학교 시절 신장이 반에서 중간쯤이었거든요. 그런데 앉은키는 뒤에서 두번째였어요. 이게 뭘 말하는지 아시나요, 구차달님? 전 이걸 명백하게 유전이라고 생각하며 부모님 원망을............... ( '')

구차달 2012-05-21 13:43   URL
제 동생은 키가 181cm 인가 182cm 인가 그래요. 그러니까 그 말인 즉 유전 운운의 원망은 무소용이라 그저 랜덤 조합의 결과물 자체에 대한 한탄 밖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전 달리기도 잘하고 팔씨름도 잘 합니다. 젠장, 그런데 이 서글픔은 무엇일까요. 점심 많이 드셨습니까.

다락방 2012-05-21 13:57   URL
너무 많이 먹어서 앉아서 일하기가 불편할 지경이에요. 하아-

구차달 2012-05-21 14:08   URL
먹는게 남는거죠. 암요. 하하.

잉크냄새 2012-05-21 14:04   댓글달기 | URL
헐, 공감합니다. 머리 큰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 그래도 전체 키를 올려주기도 합니다.

구차달 2012-05-21 14:09   URL
아니, 잉크냄새님은 점잖은 가운데 웃겨주시는 유머 센스가 독특하신 것 같아요. 혼자 실제로 킥킥거렸습니다. 저는 머리를 바짝 세우고 다녀 볼까요. 하하.

네꼬 2012-05-21 18:12   댓글달기 | URL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추천했어요.

구차달 2012-05-21 18:46   URL
이유도 모르는 채로 추천을 누른 이유가 궁금하군요. 네꼬님의 오늘자 페이퍼는 잘 봤습니다. 이 댓글이 달린 것을 보기도 전에 말이죠.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물론 개도 좋아하고 소도 좋아하고 동물은 다 좋아합니다) 네꼬님의 닉네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WiredHusky 2012-05-21 19:44   댓글달기 | URL
구차달님 저도 169입니다. 다른건 다 노력으로 어떻게 해보겠는데, 짧은건 안되더라고요. 좋은책 한권 또 추천 부탁 드립니다.

구차달 2012-05-22 09:00   URL
어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요. 169cm 기록되었습니다. 키라는 게 늘었다 줄었다 하는건지. 동지로군요. 하하. 그런데 제 주제에 좋은책을 감별 할 깜냥이나 될런지 의문스러워서 조심스럽습니다. 언젠가 욕 안 얻어 먹을만한 물건이 눈에 띄면 말씀드릴게요.

후와 2012-05-22 12:58   댓글달기 | URL
어떨 땐 참 신기해요. 이 키로(제 키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구차달님보다도 작은ㅎㅎ) 학교 다니고 군대 갔다오고 일해서 먹고살고... 남들 보기에 좀 그래서 그렇지 생각해보니 큰 문제는 아닌가보네요ㅎㅎ

구차달 2012-05-22 13:08   URL
암요, 먹고 사는데 하등의 지장 없습죠. 다만, 불가능을 갈구하게 되는 탐욕이 원망스러워서요. 하하. 그나저나 이 시점에서 한수철님과 팝님의 키가 궁금해지는 건 비단 저 뿐만의 생각일까요.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문학동네 시집 93 
조동범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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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덮고 리뷰를 쓰기 위해 제목을 끄적이다 보니 왜 제목을 '심야배스킨라빈스살인사건'으로 정하였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심야는 깊은 밤이다. 깊은 밤은 적막감과 불길함을 환기시킨다. 배스킨라빈스는 특정 아이스크림 브랜드 이름이고 그 고유명사는 일반인들에게 흔한 간판이므로 실사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마지막 살인사건이다. 살인은 곧 누군가의 죽음이고 죽임이다. 종합하여 보면 이 시집은 적막감과 불길함을 머금고 있는 통속적인 관찰 내부에의 죽음을 담고 있다, 라고 한다면 이거 억측일까. 수록된 그의 모든 시들이 이 같은 상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속성과 같은 개념으로 본다면 대개 수긍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면도날 같은 시인의 시적 시선으로 생산된 보기에도 좋고 그 의미도 좋은 시구들이 즐비한데 그것들을 한데 도열하게 되면 오히려 우후죽순으로 감상이 복잡해 질 것 같기도 하여 인상 깊었거나 좋다고 생각했거나 했던 시 두 편을 옮겨 본다.

 

둘둘치킨

 

명동 둘둘치킨 앞에서 애인을 기다린다

튀김닭 냄새가 자신의 영역을 그리는 둘둘치킨,

앞으로 퇴근하는 사람들 지나간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유리 너머의 닭을 바라본다

오지 않는 애인

튀김옷을 둘둘 말아 입은 닭들의 천국 안에는

몇 개의 만남과 사소한 시비,

닭들의 죽음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서로 넘나드는 일도 없이,

경계는 늘 견고하다

오지 않는 애인

둘둘치킨의 네온이 켜진다

닭들이 분주히 기름으로 들어간다

몸 안의 수분이 빠져나가기 전에

경쾌하게 튀겨지는 닭

오지 않는 애인

나는 둘둘의 경계 밖에서 시계를 본다

뜨겁게 펼쳐지는 닭들의 천국 둘둘

그곳으로 한 무리의 양복이 들어간다

둘둘치킨 안에서 간간이 즐거운 폭죽이 터진다

나는 둘둘의 경계 밖에 있다

몇 개의 만남과 사소한 시비,

닭들의 죽음으로부터

비껴 있다

오지 않는 애인,

을 기다린다

둘둘 돌아가는 닭들의 천국

지루한 닭들의 장례 앞에서

 

(p.14~15)

 

도마 위의 생선을 토막내고

칼은 자신이 만든 칼집 속으로 박힌다

단칼에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칼의 힘은 단호하다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생선을 잘라

먼 바다를 꺼내놓는 칼

생선은 배를 갈리고 토막이 났어도

눈 감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도마 위에 박힌 칼 한 자루

예리하게 삶의 단면을 겨누고 있다

토막난 생선의

건조한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다

 

(p.51)

 

송승환의 바라보기의 성격이 삐딱한 고찰이었다면 조동범의 바라보기는 있는 그대로의 관찰에 가깝다. 두 사람 공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물론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냥 둘다 좋다.



 
 
한수철 2012-05-18 03:05   댓글달기 | URL
저는 먹을 자격은 별로 없지만 먹고는 싶어서 양심에 따라 평소 팔천 원짜리 치킨을 자주 먹게 되는데요. 둘둘치킨은 확실히 보다 더 맛있겠죠?

구차달 2012-05-18 13:30   URL
저희 동네엔 둘둘치킨이 없어요. 충청도 지역에 다사랑이 있지만 이 동네에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팔천 원짜리도 뭐 어떻습니까. 하하. 그나저나 둘둘치킨이 시인의 시로 짐작해보건데 두 마리 치킨 컨셉이 아니라 통구이 식으로 꼬챙이에 너댓마리 끼워서 굽는 방식이라 둘둘 인가봐요. 뭐 그게 중요하겠습니까마는. 전 이만 자러 갈게요.
 

서재지인님의 어제 글인가에서 꽃게라는 단어를 보았고 아닌게 아니라 꽃게를 먹은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되었음직 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꽃게탕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고 하지만 꽃게탕이 세 치 혀 끝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므로 꽃게가 먹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던 가운데 새벽 마감을 하고 있던 중 집에 들러서 반찬 좀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고 알겠다고, 들러겠다고 하여 아침에 들러서, 그런데 뭐길래 식전 댓바람부터 전화를 하셨습네까, 물었더니 마산인가 어딘가를 어제 다녀왔는데 양념게장을 가져 왔으니 가져가라고 불렀다고 하시는데 그래 나는 짐짓 태연한 척, 아, 게장 말입니까. 게장이라, 그 오랜만입니다, 하였더니 물론 웃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사실 속으로 나는 쾌재를 불렀고, 으아, 게장, 게장이다, 라고 외칠 정도였다. 나의 왼손에 산지에서 제조된 양념게장이 들어있는 봉지가 들리게 된 사연은 이러한데, 우연찮은 흐름이지만 사실 그 흐름의 이면에는 나름대로 잘 직조된 우연이 우연이 아니게 하는 필연성이 있을 것만 같았고 그것에 관하여 좀 생각해 보다가 아마도 그것은 지금이 게철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로 하여금 머물게 했는데, 하지만 내가 아는 게철은 가을이 완전 끝나 갈 때즈음의 겨울 직전이었고 실제로 그 시기에 내가 복무하던 그 작은 섬의 갯벌 바위에서 심심찮게 보다 더 심심찮을 정도로 심심찮게 발견되던 '내 인생에 직진은 없어' 라고 인생을 퍼포먼스하는 녀석들을 거짓말 처럼 찜통이나 마대자루를 들고 집게나 손으로 마구잡이로 잡아 넣던 기억이 났고 그렇다면 봄의 마지막 즈음이면서 여름의 초입인 지금은 게철이라고 하기에는 모르긴 몰라도 석연찮음이 있었고, 서재지인의 글에서 발견된 꽃게라는 단어가 나로 하여금 환기시킨 꽃게탕,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년 꽃게철에 마지막으로 꽃게를 먹었을 것 같고 그렇다면 바로 그러한 이유로 지금 이 시기 즈음하여 꽃게를 자연스럽게 먹고 싶어하는 심리가 발동되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소주 대병에서 따라 담은 소주가 가득 담긴 글라스를 홀짝이며 빨갛고 매콤하고 달콤하게 양념된 게들을 게걸스럽게 빨아먹고 있었다. 게장이 밥도둑이라고, 하하, 천만의 말씀. 게장은 술도둑이올시다,이올시다.

 

해체되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 중에서

게여,

네가 가장 맛있다. 

(최승호, '아메바' 中 02. 해체되기 위하여, 의 패러디)      



 
 
소이진 2012-05-16 22:14   댓글달기 | URL
다 읽고나서야 한 문장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난 게장 무슨 맛인지 모르겠던. 게장은 양념맛으로 먹는거에요, 아니면 게 맛으로 먹는거에요? 예전에 시도는 해봤었는데 영 맛이 없더라구요. 게딱지도요.

그런데 세 치 혀 끝에서에서, 세 치가 뭐에요...?

구차달 2012-05-16 22:26   URL
한 문장은 아니고 크게 두 문장인데, 치가 '자'의 1/10 '자'는 약30cm 세 치면 약 10cm 되겄네요. 아, 게장맛을 모르다니 생에 맛 볼 진미 중 으뜸의 반열에 드는 게장을...

후와 2012-05-17 01:24   댓글달기 | URL
이 시간에 이런 페이퍼를 읽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깝군요ㅎㅎ 꽃게탕 국물이라도 좀 있으면 딱 소주 반병만 마시고 자고 싶은데 말이죠^^

구차달 2012-05-17 02:23   URL
그런데, 이상하게 술 얘기만 하고 되네요. 이거 참. 좀더 건전하고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물론 소주와 맛있는 안주만큼 건전하고 밝은 이야기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poptrash 2012-05-17 06:30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는 4~5월도 게철이라고. 작년 어린이날에 김포 어딘가의 항구에 가서 게를 삶아 먹은 기억이 있어요. 그때도 게철이라서. 저도 문제의 페이퍼에서 꽃게라는 단어를 보고 입맛을 다셨지만 제게는 꽃게 님이 강림하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네요.

쳇 세상이 뭐 이래.

구차달 2012-05-17 19:53   URL
아, 그렇군요. 그럼 게철이 맞는거로군요. 어쩐지 일전에 티비에서 게요리 풀코스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었는데... 아마 누군가 내일쯤해서 게 먹으러 가자고 연락 하지 않을런지... 희망을 버리지 마시길. 그런데 진짜 꽃게탕 너무 먹고 싶네요.

한수철 2012-05-17 21:25   URL
제가 언젠가 텔레비전 맛 프로그램에서 듣기로는, 5~6월이었는데.ㅎ

여하튼 전 탕보다는 찜이 더 당기네요. 한 다섯 마리 정도 말예요.

소주 한 잔 마시고, 한 마리, 소주 한 잔 마시고, 한 마리 이런 식으로..

그리고 2차로 마실 맥주는 쥐포랑 땅콩.

구차달 2012-05-17 21:44   URL
이 글은 거의 자폭 수준인 것 같아요. 의도치 않게 (정말?)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의 구강내 침의 분비를 촉진 시켜버린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저도 입에 침이 고이고 있어요. 제길. 그나저나 소주 한 잔에 게 한 마리면 필시 그 잔은 맥주잔이거나 와인잔이겠군요. 2차 맥주까지라면 전 꽐라입니다. 하하.

마녀고양이 2012-05-17 20:18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문장입니다.
숨도 쉬지 않고 죽 흘러 읽었답니다.

그나저나 어머님께서 구차달님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셨군요.
아무래도 자식은 결코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지 않나 싶어져요....
맛있겠어요, 게장~

구차달 2012-05-17 21:16   URL
다시 보니 작위적이라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게장, 특히 양념게장은 집에서 혼자 탐해야 할 것 같아요. 다 먹고 나면 입이고 손가락이고 그릇이고 참 더럽게도 먹거든요. 아, 이거 저만 그런걸까요. 하하하하.

잉크냄새 2012-05-21 11:55   댓글달기 | URL
오, 게장을 안주로 삼아도 독특한 멋과 맛이 있을것 같네요.

구차달 2012-05-21 12:19   URL
다리를 전부 제거하고 몸통만 먹는다면 고급 안주가 될 것 같긴한데 게걸스럽게 먹지 아니할 수 없는 구조의 안주라는 점이므로 독주의 안주로 가히 일품일 것 같습니다. 하하. 점심 맛있게 드세요.
 

퇴근을 했다. 물량이 증가 하였다. 이른 퇴근은 앞으로 수 개월 동안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매년 같은 패턴이었으므로 계절과 공기의 흐름과 피로의 정도가 조금씩 변화하는 가운데 부지불식간의 나의 세포들은 초저녁에 그것을 예상하였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될 만큼 스트레스는 심각하지 않은 정도로만 받고 있다. 마감을 하는 중에 새벽 다섯 시를 따라 미명은 담배 한 대 태우는 동안 흐릿하던 사물의 윤곽이 분명해질 정도의 급속함으로 밝아 온다. 마시던 참이슬 대병이 본래 투명한 액체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빤히 보이던 바닥을 더 빤히 보이고 있을 정도로 지난 주 적잖이 마셨던 모양이다. 이제 글라스에 따르면 정확히 한 잔 조금 넘치는 정도, 그 정도는 물론 소주 2/3 병이다. 당연한 듯 '물론' 이라는 부사를 사용한 이유는 자작광(自酌狂)으로서 이제까지의 주협(酒俠)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눈대중으로 잔으로 헤아릴 수 있는 술의 양에 관한 직관이 고도로 발달하였다 하는 때문이다. 안주는 너구리. 실제로 너구리였다면 동물보호협회나 여하한 단체에서 나를 사법기관에 넘겨 법의 심판대에 보기 좋은 정도로 걸어 놓기 위해 고군분투 했을테지만 나의 일상을 읽는 누구나 짐작 가능한대로 추레하게 농심 너구리다. 안성탕면이나 신라면은 라면의 면 자체가 다소 눅눅하다 하더라도 식감이 지나치게 훼손되지 않은 채로 씹어 먹어 줄만한데, 이 너구리로 말할 것 같으면 눅눅하면 허방이다. 곧 fail 이다. (영단어 fail을 낯설지만 굳이 등장시킨 이유는, 비주얼적 게임을 하다가 음울한 효과음과 함께 이 단어를 보게 될 경우 상당한 좌절감이 유발된다 하는 이유 때문으로 그 정도의 실패감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극적 효과다) 아무쪼록 조금전 개봉한 너구리는 싱싱한 면발이 제대로 튀겨져 입안에서 바삭거리는 포즈가 거의 비스킷 수준이라면 과대포장일까. 퇴근하고 나는 나의 일상을 서술하는 가운데 남아 있는 대병 소주를 글라스에 따라 마시면서 너구리를 씹어 먹고 있는 중이다.       



 
 
잉크냄새 2012-05-15 09:37   댓글달기 | URL
역시 스프가 뿌려진 생라면은 국민 안주군요.

구차달 2012-05-15 09:47   URL
아,예. 물론입죠. 라면만한게 또 어데있겠습니까. 하하. 오늘 집이 대청소하는 날이라 부득이 요리는 불가하여, '그런데 나는 남아 있는 소주를 마셔야겠는데 대체 무엇을 안주 삼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군시절 담배를 안주로 잘도 마셨었긴 하지만 이제는 연로(?)하여 그것은 힘들고' 라는 생각 중에 싱크대 찬장을 열고 너구리를 간택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한국 라면을 쉽게 볼 수 있을런지 궁금합니다. 그나저나 중국과 한국은 시차가 거의 없는 모양이군요.

잉크냄새 2012-05-15 14:05   URL
중국이 한시간 느립니다.
중국도 라면이 있긴 한데 기름 덩어리라 보셔도 무방합니다. 김치를 곁들인다면 먹을만한데 한국 라면 특유의 면발의 쫄깃함이라든지 국물의 시원함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구차달 2012-05-15 14:13   URL
한 시간이나 차이가 나는군요.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라면이 기름 덩어리라니 조금 아쉽습니다.

WiredHusky 2012-05-15 10:38   댓글달기 | URL
와, 한편의 문학 작품이네요. 개성이 넘칩니다. 어휘도 정말 다채롭네요. 하지만 백미는 의미심장한 분위기와 농심 너구리가 만들어내는 아슬아슬한 유머의 줄타기 입니다. 이에 비하면 제 글은 공장에서 찍어낸 모조품 같네요.

구차달 2012-05-15 14:15   URL
송구스러울 따름이네요. 그저 술 좋아하는 인간의 아침부터 술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허스키님의 리뷰를 볼 때마다 전 제 리뷰를 하나씩 지우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그나저나 오랜만이에요.
 
드라이아이스 문학동네 시집 81 
송승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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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자서를 보면서 불현듯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바라본다' 단 한 문장에 불과하였던 그것은 나로 하여금 '이거 뭘 하려는 수작이지' 하는 불안을 갖게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시를 마주하자마자 '어랍쇼' 라고 했고 세 번째, 네 번째 시를 읽어 가면서 '빌어먹을' 이라고 실제로 발음하였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제목이 어떤 역할을 할 것만 같은데 도대체 무슨 역활을 하는지를 '라이터' 에 와서 겨우 눈치 챌 수 있었다.

 

라이터

 

불 살라먹은 물에 녹아

단단한 몸 안에서 출렁이지

단 한 번 입 밖으로 토해내기 위해

그리고 기다려

찰나를

돌가루 튀는

울음소리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풀

붉은

 

그 새의 이름은 없어

 

지금 저 자욱한 공장 굴뚝 연기 사이로 날아가는

보이지 않는 새

 

(p.23) 

 

그리고 앞서의 '성냥' 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고 결국 이 시집은 시인의 수수께기函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다 무리를 잃고 부리도 발

톱도 둥근 머리 속에 파묻은 붉은 새 한 마리 어두워지는 저녁을

응시한다

 일어나는 불꽃 타오르는 불길 검게 타들어가는 나무 위로 새

가 날아간다 바닥에 떨어지는 재

 

 인큐베이터 갓난아이가 가파른 숨을 쉬고 있다

 

(p.15)

 

거짓말이다. 그의 시 제목들이 그의 관찰 대상이 되었다는 것과 그 관찰 대상은 실제의 관찰 대상이기도 하면서 관찰 대상에서 비롯되는 정서로써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였는데 결국 '라이터' 나 '성냥' (다른 대개의 시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의 독립된 마지막 한 줄의 의미는 도저히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의 시를 이해하였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실 어떤 시인의 시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였다고 자부 할 수 있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때로 시인 자신 조차 이해하기 힘든 시를 잉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근거 부족으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방언처럼 터져나오는 시적 언어의 홍수를 체로 걸러내어 전시한 시인의 시를 시인은 스스로 온전히 해석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인 어쩌고저쩌고 하는 문제는 나 따위 한 개 독자가 입에 담을 계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기로 하고, 그런데 이거야말로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는 놈 중의 최고로 생각되는 놈이 이놈인데

 

모터사이클

 

단풍이 하루 22km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

 

북쪽에 첫눈이 도착한다

 

(p.29)

 

작가에게 문의를 넣어보고 싶은 심정이지만 정형화된 의미를 찾으려 하는 나의 고루함을 스스로 비난함으로써 중뿔난 의문은 잠재워 두기로 한다.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보면서 시인의 시가 좀 더 분명한 구조로 다시 내 좁은 시야의 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그 깊이가 훨씬 더 깊었던 것으로 그의 시가 신기루처럼 멀리서 볼 때는 분명해 보였다가 가까이 다가가니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듯하였다. 아래는 해설의 일부 인용이다.

 

주어도 없는 '바라본다' 는 말에 걸맞게 시인은 사물의 편에 서 있긴 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사물의 즉자적 단단함이 아니다. 벌써 사물화한 의식이 이번에는 다시 사물을 의식화화기나 한 것처럼 사물들은 늘 무엇으로 왜곡될 기회를 노리고, (p.59)

 

시인 송승환의 자기 검열은 꿈과 환상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끈질기고 확실하게 그것들과 교섭하는 방식이다. (p.67)

 

사물에 투영된 사유 혹은 사유에 투영된 사물, 어쨌거나 그의 시선이 닿는 사물에 관한 언어가 날 것이든 가공의 것이든 그가 바라봄의 결과로 얻은 것으로 시인의 시선과 같게 되는 때 독자도 그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아득한 일이지만 여러가지 의미에서 재밌는 시집이다.



 
 
후와 2012-05-15 00:29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시를 집중적으로 읽으시는군요^^

구차달 2012-05-15 00:40   URL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시를 향한 닫힌 시각을 좀 열고 싶었기 때문이고, 시는 짧아서라는 좀 무식한 이유 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시라고 생각하는 나의 글을 뭇사람들에게도 시로써 평가 받을 수 있을런가 하는 생각. 혹은 나는 그들을 납득 시킬 수 있을런가 하는 생각. 뭐 부지런히 읽을 밖에요. 좋은 밤입니다.

poptrash 2012-05-15 02:06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이에요. 저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시를 모르... 제 친구는 <클로로포름>이 더 좋다고 하던데. 저는 <클로로포름>밖에 안 읽어봤어요. 감상은 '아 역시 나는 시를 몰...ㄹ'

구차달 2012-05-15 05:09   URL
시인에게서 사사한 분이 시를 모르신다고 하시니, 전 낙서 몇 개쯤 써 보고 아, 이것은 시라는 것이올시다 하는 패에 속합니다. 그런데 있잖아요. 시에 관하여서는 후발주자 같은 사람인지라 문학과지성 시인선을 볼 때마다 '아 이것은 시집이라는 것이구나' 싶은데요. 다른 출판사 시집들은 좀 대중없어 보여요. 그러고 보면 고리타분하게도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런데 고리타분한 인간이 시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