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피곤한 아니 피를 말리는 직장생활에 낙오자(?)가 하나 생겼다.
입사한지 석 달을 이제 넘긴 새로 입사한 사무실 막내 직원..사실 막내란 호칭이 붙일 정도로 푸릇푸릇한 영계도 아니고 이제 막 30줄에 들어선 나이는 그래도 적당히 차버린 중고신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이쪽 업계의 일이기에 나름 판단하건데 어느 정도의 조급한 마음과
욕심, 일에 대한 정열도 평균 이상은 가지고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특히나 우리 쪽 같은 전문직(말이 전문직이지 쌩 노가다.)은 바쁘면 바쁜 만큼 자신이 챙겨먹을 지식과 커리어는 본인이 노력하기에 따라 거의 거저 주서 먹는 환경이 조성되곤 한다. 다시 말해 남들 1년에 걸쳐 배울 걸 3개월 속성으로 일대일 맨투맨으로 일을 배우고 습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등가교환의 법칙이 존재하듯 쾌속습득은 결국 대부분의 개인시간을 저당 잡히고 올인을 해야 하는 어찌 보면 가진 만큼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아마도.

본인 생각엔 이 두 가지를 같이 병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밤 11시, 12시를 넘어 퇴근하는 날, 친구들과의 모임에 뒤늦게 참여해 부어라 마셔라 음주가무를 즐긴 후 새빨개진 토끼 눈을 하고 겨우겨우 출근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곤 하더니만 결국 일주일 전, 토요일 맡겨 논일을 저녁식사도 거르고 부랴부랴 끝내고, 30분마다 울려 퍼지는 핸드폰의 발신지를 향해 사무실엔 "중요한 모임"을 언급하며 황급하게 퇴근을 했었다.

문제는 다음날 일요일 아침.
새벽 4시에 퇴근하여 오전에 모자란 잠 좀 채우고 오후에 넉넉히 출근하려고 했으나 소장마마의 급문자가 졸리고 피곤한 몸 상태를 대번에 초긴장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메차장 큰일 났다. XX가 했던 작업 죄다 개판 오 분 전이다. 오전 3시까지 보내야 하는데 빨리 와라."

부랴부랴 출근하여 상황을 살펴보니...
막내가 황급하게 했던 작업의 90%는 얽히고설킨 채 개판의 수준도 아닌 거의 백지의 상태로 나뒹굴고 있었다. 결국 일주일 가까이 붙잡고 있던 일의 결과물은 써 먹을 수 없는 지경이고 마감은 채 4시간도 안남은 상황에서 4명이 달라붙어 일단은 형식만 차리는 약식의 방법으로 1시간 오버하여 마감할 수 있었다만...

소장마마 화가 머리 끝 까지 나버린 상황까지 가버렸다.

여타 소장과는 다르게 일이 급하면 본인 스스로 같이 밤을 새며 일감을 죽이는 소장마마는 전날 밤 꼬박 새버린 까닭에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상황까지 가버린 것.

더더욱 재미있는 상황전개는.
막내가 월요일부터 전화조차 꺼진 상태로 무단결근 했다는 것…….하룻밤이 지난 후 화요일 오전에 몸이 안 좋아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다는 것..또 통화 두절되었다가 화요일 날 저녁에 링거 맞다 잠이 들어 지금 일어났다는 것..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출근하겠다고 언급. 하지만 그날 출근 안하고 핸드폰 또 두절.

이 상태가 목요일까지 진행.

결국 무단결근 4일후 5일째 아침 7시에 내 핸드폰으로 온 3통의 문자.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로 시작한 첫 번째 문자는 3번째 이런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달라는 황당한 끝맺음으로 막내와 우리사무실의 인연은 끝을 맺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토요일...
출근 후 막내 자리를 정리하면서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무단결근 후 코빼기도 안보였던 녀석의 소지품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 그리고 무단결근 중에 왔던 택배역시 교묘하게 상자 모퉁이만 뜯어진 채로 내용물은 쏙 빼간 상태..

그러니까 사무실에 밤 11시 반까지 사람이 있었고 아침 9시에 출근을 했으니까. 그 시간에 몰래 들어와 자기 짐 챙겨 나갔다는 상황이 유추된다.

일이 힘들고 몸이 힘들고 피곤해서....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인정과 이해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순간.
3개월이 넘게 들었던 미운 정 고운 정을 한 순간에 정리해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남에 있어서 시작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마침표를 찍는가의 중요성을 간접경험으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우리 사무실에서 도망자의 낙인이 찍혔을지언정 대인관계에서 낙오자나 도망자가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 일단. 좁디좁은 이 쪽 바닥에서의 재취업은 힘들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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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10-22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박이다 그친구..... 심하다 심해.... 정말 별일이 다있네~

Mephistopheles 2008-10-28 12:31   좋아요 0 | URL
아마도 월급날 즈음에..전화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현 상황으로는 급여지불은 일단 보류상황이거든용...^^

Arch 2008-10-2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 아니네요. 저도 그런 사람들 몇몇 보긴 했지만 정말 얄밉다.

Mephistopheles 2008-10-28 12:32   좋아요 0 | URL
그 나름의 개인사정은 분명 있겠지만서도....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꽤 받았으니까.. 나름의 사정일지라도 분명 잘못된 건 잘못된거라고 보여집니다.^^

순오기 2008-10-2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직장생활 기본도 안 갖춰진 인간이라니~~~

Mephistopheles 2008-10-28 12:32   좋아요 0 | URL
의외로...많더군요..그 동안 사무실을 거친 인력을 보면 말이죠..^^

무스탕 2008-10-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차장님의 눈 밖에 난 중고신입.. 앞으로 갈 길이 걱정이네요.
(메차장님을 거론 안해도 자질 부족으로 보이긴 하네요..)

어느정도 정리가 되셨나요? 가끔이라도 뵈니 반가워요~ ^^*

Mephistopheles 2008-10-28 12:33   좋아요 0 | URL
전 딱 3번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친구...정확하게도 3번째 무단결근이 바로 자퇴 및 해고로
이어져버렸어용..^^

메르헨 2008-10-25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헉...저희 사무실에도 말이죠. 이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직원은 아니고 인턴이었는데...오늘도 못 나오겠다고 문자 넣었길래.
알았다고 답장했더니.
"화나셨어요????"
이런 답변이 왔어요.
진짜 웃겼어요. 왜 화가 나것습니까...인턴인데 직원도 아니고...
나이도 열살이나 차이나는 어린아이에게 ...ㅋ
저도 암턴 웃긴 일 있었답니다.

Mephistopheles 2008-10-28 12:34   좋아요 0 | URL
음....그 인턴직원은 분명 화나셨을지도 모른다는 일련의 착각(?)을 했단 말이 되는군요..사실.. 사회생활 10년이 넘어가버리면 새로들어오는 직원 특히 신입이나 인턴에게는 거의 무관심에 사무적인 일로써만 연결이 되는 관계가 되곤 하는데 말입니다..^^

가시장미 2008-10-2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망자 ㅋㅋ 제목하고 글이 딱 어울리네요! 요즘은 교육수준은 높아져도, 곱게 자란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유아성을 지닌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아- 근데 은근 찔리네요 ㅋㅋ 저도 결혼할 때, 임신한 관계로 좀 급하기 일을 그만뒀거든요. 그 회사에서 참 책임감 없다고 생각했을텐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