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김현구 옮김 /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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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라는 책은 비록 분량은 적지만, 옹골차게 생태문제에 대한 본질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른 생태관련 서적과의 차이점은 생태 위기를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터가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현재의 위기는 자연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의 위기이고, 이 위기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사회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근본적인 전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 자체의 근본적 모순이 환경 위기를 가져왔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前) 자본주의 시대부터 산업화 시대를 거쳐서 현재의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자본주의까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마르크스의 개념인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아메리카 개척기의 인디언 제거와 연관시킨 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기원과 발전에는 필연적으로 폭력과 배제가 수반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계속된다. 과연 포스터의 주장대로 현대의 전지구적 환경 위기의 근본에 자본주의가 또아리 틀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와 대립하여 환경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 책의 주된 관심이 아니기에 잘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포스터는 사회운동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이 인간의 자연에 대한 관계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에, 자연의 사회화는 오직 생산의 사회화를 동반할 경우에만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 그래서 환경혁명은 사회혁명을 필연화 한다. 오직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생산과 자연 양자에 대한 민주적으로 조직된 사회적 통제를 통해서만 무언가 의미 있는 희망이 존재하게 될 것이며 ... ”(p164)

물론 포스터도 사회혁명에 대해 낙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위기에 직면하여 환경운동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현실과, 자본주의 논리에 굴복한 정부와 기업들의 노림수들은 더욱 노골적이며 효과를 보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대중들의 인식과 실천 역시 아직은 낭만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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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책을 보내 줬을때까지도 작가나 이 소설에 대한 배경이 전혀 없어서인지, 그저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고자 기대도 없이 부담없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모텔을 전전하며 도시를 배회하는 한 남자와 개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신선했고, <텐텐>이라는 일본 영화를 떠오르게 하였다. 소설 마지막의 반전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울림과 여운이 깊게 남는다. 자신의 직업과 집을 버리고 3년이라는 시간동안 여행을 하는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그 '한 방'은 모든 의문을 가볍게 날려 버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 전반적으로 가볍고 밝은 분위기의 리듬이 싫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어둡고 비극적인 분위기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은 이 세상이 염세적이고 어둡고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억누르는 시절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작가의 전에 쓴 작품들은 좀 더 어두운 내용이었다니 좀 찾아서 읽어봐야 할 듯 하다. 

어떤 사람이 죽음이란 자신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던 것을 기억한다.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 소통이 가능한지에 대한 작가의 희망을 이 작품 속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고립되고 단절되어 소통이 불가능해져만 가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외로움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소설에서 반복되는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라는 구절은 핸드폰으로 메시저로 또는 블로그로 소통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아 더 외로워지는 젊은이들이 쉽게 동의하는 지점이다. 쉽게 말해 "아무도 댓글 달지 않다", '아무도 문자나 전화 주지 않다' '아무도 메시저에서 말을 걸지 않는다'라는 말들로 바꾸어 읽을 수 있는 는 부분이다. 이처럼 채워지지 않는 소통의 욕망에 굶주린 우리들에게 작가는 소통의 가능성을 보란듯이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