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身邊雜記 170918
* 신문읽기
부안 교사 억울한 죽음…“성희롱 아니라고 학생들이 탄원서까지”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672285&code=61121111&sid1=soc
'학생 성희롱' 의혹 부안 교사, 억울한 죽음? 학생들이 보낸 탄원서 내용 보니
http://news.joins.com/article/21830488
‘240번 버스 논란’…CCTV 공개요구까지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10694.html
“240버스 CCTV 공개, 아이 엄마가 강력 반대”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750538&code=61121111&sid1=soc
내 관점에서는 이 두 사건이 같은 사건(, 즉 같은 기제 mechanism)으로 보인다.
그리고 캣맘이 벽돌에 맞아 사망한 것을 초등학생의 사고로 밝혀지기 전까지 ‘의도적 살인’으로 여론이 몰고 간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16/0200000000AKR20151016031154061.HTML
캣맘 벽돌 사망 사고가 있었고, 사고 전말이 나오기 전, 직장 동료들과 이 이야기를 하였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모두 캣맘 혐오 살인 사건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개인적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알라딘 서재에서도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캣맘 혐오에 비판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은 혐오 미러링 (혐오?) 사건이다.
이런 사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음을 안다. 하나는 약자의 분노는 존재하나 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다. 이 주장에 의하면 약자는 윤리적으로 면책된다. 이 경우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활동이 뜸하신 알라딘 면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 알라디너가 여성혐오만큼 남성혐오도 늘었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한다. 혐오와 분노는 다른 감정이다.
두 번째는 공리주의적 접근이다. 수 많은 여성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남성 한 두 명이 죽거나 사회적 린치lynch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갖게 되는 것을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리주의가 정의 justice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동치는 아니다.
혐오? 이들이 뭘 어쨌다고.
뱀발) 링크된 책은 아직 읽지 않은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