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51005

 

<원림>

- 삶으로서의 도교 ; 자발적 가난

 

나의 여러 가지 딜레마 중의 하나는 도교적 심상을 삶 자체에 적용하는 것과 문화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갈등이다.

 

도교는 (노자, 장자, 양주에 따라 철학적 의견을 매우 달리하지만, 실천적으로는 대개 공통점을 갖는) 무욕 無慾, 무소유 無所有를 주장한다. 이 가치관의 나에 대한 적용은 자발적 가난이다. <자발적 가난>도 좋지만, 내가 기본으로 삼은 책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이다. 내 인상 중 자발적이면서도 가장 내핍된 가난한 삶을 실천했을 때는 2000년 초반이다. 단면적으로 당시에는 한 달 전기료가 900원 내지 1200원 정도 나왔다. (전기료가 천원 미만일 때는 격월로 고지된다.) 당시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한국 전력에서 내가 사는 집을 찾아왔었다. (내 서재 초기 글에 몇 에피소드가 더 소개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이런 나의 생활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이야기를 해 보자.

 

안해와 아이 친구 엄마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에 우리 집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TV가 없다는 사실보다 더 놀랐다. 그리고 남편(바로 나, 마립간을 가리킨다.)이 이기적이라고 했다. 왜 이기적이라고 했을까? 안해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있고, 올 여름에 그리 덥지 않게 보냈다. 나의 사무실에 역시 에어컨이 있지만 올 여름 에어컨을 작동한 기억은 10회 미만이다. (어쩌면 5회 미만이다. 손님과 함께 있을 때.) 선풍기와 부채로 여름 보냈다.

 

왜 아이 친구 엄마는 나를 이기적이라고 했을까? 남자는 사무실에서 에어콘 아래 시원하게 보내고 안해와 아이는 집에서 덥게 보낸 것으로 추정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사실판단에 있어 오판이다. 에어컨이 없는 것에 대한, 비판을 너머 비난에 가까운 책망은 아이가 1~2살 때였다.

 

에너지 절약(이는 환경 보호의 일면이라고 생각한다.)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서 에어컨 없이 사는 내 삶이 맞을까, 아니면 신체적 약자인 주부와 아이를 위해 적당히 에어컨을 켜고 사는 삶이 맞을까. (여기에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딜레마도 엮이게 된다.)

 

내 판단에는 TV와 에어컨이 없어도 결혼 후의 생활에 가난한 삶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평균적이 삶이다. ‘자발적 가난을 운운하려면 내 기준에 의하면 나의 2000년 초반 생활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안해와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사실이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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