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든다’
는 절반의 진실이다.
요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책과 관련하여 즐겨찾기한 알라디너의 글을 읽게 된다. 나의 경험과 곁들여 의견으로 숟가락을 얹는다.
실제 경험부터 이야기하면, 나의 직장에 한 여성과 남성이 왔는데, 여성이 남성을 자꾸 가르치려 한다. 남성이 나에게 하소연하기까지 한다. 이 여성이 나를 자꾸 가르치려 해요. 내가 여성을 타이른 경우도 있다.
이 상황이 나의 아주 예외적인 경험일까? 아니다. 나의 설명이, 많은 사람을 내 말에 수긍하게 하리라 본다. 이 상황의 여성은 어머니였고, 남성은 학생 신분의 아들이었다.
또 다른 예도 들 수 있다. 과장 또는 부장이 여성인 부서에 말단 사원으로 남성 신입이 들어왔다. 남자와 여자가 대면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가? 남성이 여성을 가르치는가? 여선생님과 남학생은? 여성 대통령과 남성 장관의 경우는?
누구를 가르치는 것의 핵심은 성별이 아니라 위계질서의 위치다. 그러면 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거나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그것은 남자의 지배적 성향 때문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의 중매시장의 불문율은 여자에게 조건이 좋은 남자를, 반대로 남자에게는 조건이 나쁜 여자를 소개시켜주는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보다 키가 커서도 안 되고, 학벌이 더 높아도 안 되고, 집안이 좋아도 안 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문헌에서 처음 접한 것은 미국의 미혼 여성의 도시로의 이주다. 시골 동네의 남성을 배우자로 선택하기보다 도시의 남성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지금도 이 현상은 유지된다.
현대는 결혼에 관해 결혼 시장이라는 곳에서 스스로를 상품으로 여긴다. 1등품, 2등품은 소고기와 구분이 안 되니, 그리스 문자를 동원한다. 그리고 이 등급은 위계를 형성한다. 편의상 5등급으로 나눠보자. 알파보이 alfa boy부터 엡실론 보이 epsilon boy까지, 여자는 알파 걸 girl에서 엡실론 걸까지. 결혼을 알파 보이가 베타 걸과 한다. 베타 보이는 감마 걸과 결혼을 하고 사회적 관계를 이룬다. 그래서 남는 사람은 알파 걸과 엡실론 보이가 남는다.
‘남자들은 여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현상이다. 실제의 내용은 ‘남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르칠만한 여성이라고 생각되는 여성과 사회관계를 맺는다’가 원리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제목을 봤을 때 나의 느낌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 태양이 지구 주위를 움직이는지, 지구가 태양 주위를 움직이는지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지구가 움직이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10년 쯤 지난 후, 어떤 사람이 북극성이 사람 눈에 움직이게 보는 것은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지, 북극성이 움직이는 것인지를 연구했다며 그 결과 지구가 움직인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10년 전에 판명이 난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이 사람은 10년 전의 연구는 태양이고 내 연구는 북극성이라서 다른 연구라고 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진화심리학 책을 펼쳐봤더니 1999년 초판 발행이다. 10년이 넘는 사이에 진화심리학에서 설명하는 남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나? 알라딘에 호평이 많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내용이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