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그리고 01
- 내가 경험한 일과 그에 대한 나의 가치판단
<성문 기초영문법> 구매를 계기로 영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먼저 나는 영어를 엄청 못한다. 영어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꽤 일찍 포기했다. 영어에 대한 나의 생각이 고착하게 된 몇 가지 에피소드로 글을 시작한다. (내가 영어에 대한 글을 알라딘에 남길 줄 몰랐다.)
1) (출처가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에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습득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있겠지만) 불가능하다. 모국어처럼 습득하기 위한 언어 노출시간이 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영어는 외국어 학습으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년부터 영어 교육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영어는 공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 나는 아이에게 영어를 모국어처럼 습득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2) 직업적 관계가 있는 한국인 외국 대기업 이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외국 회사에 근무를 하니, 영어 회화에 대해 묻게 되었다. 그 분은 영어 학원을 쉬지 않고 7년간 다녔는데, 그렇게 7년을 다니고 나니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하셨다. - 내가 유창한 영어 회화를 한다는 것을 포기하게 된 계기다.
3) 군복부 중 만난 서남아시아 어느 지역에 근무한 어느 분이 한 이야기다. 근무한 외국의 기관에 어학 강좌가 있었는데, 교실 한곳에서는 회화반, 다른 반에서는 A, B, C를 가르친다. 영어책을 읽는 사람이 영어회화는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A, B, C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에게 이야기를 해 준 분은 당연히? 앞 반이다.) -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의 듣기, 말하기에 약하다는 것은 유전적인 것도 한국어에 관련된 것도 아니다. 단지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유교적 영향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로도 대화가 안 되는데, 영어로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 나는 외국어의 경우 읽고 쓰기에 치중한 공부를 하면 읽기-쓰기 능력만 키워지고 듣고 말하기에 치중한 공부를 하면 역시 듣기-말하기 능력만 키워진다고 판단했다.
4) 예전 직장에서 직장의 후원을 받아 동료들과 함께 잠깐 영어 회화를 공부한 적이 있다. 한 직장 동료가 (CNN과 같은) 영어 뉴스를 들을 때, 주제별로 영어 듣기가 잘 되는 것이 있고, 잘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영어 선생님도 국제 정치에 관한 뉴스를 들으면 본인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다. 즉 이 경우에는 영어 청취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주제에 관한 지식의 문제다. - 나는 언어로서의 영어 능력은 지식과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미국의 거지도 영어를 한다.)
5)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반기문 유엔총장의 영어 연설을 들려주고 누군인지 알려주지 않고 영어 실력을 평가하라고 하면, 대개 영어를 못한다고 한다. 발음이 원어민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영어권 국가의 사람에게 들려주면 영어를 잘 한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사용하는 단어가 고급 단어이거나 명문에 해당하는 문장이 많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영어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6) 후배가 내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후배도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는데 (경제적 능력도 문제지만) 일찍 영어를 시작하면 확실히 영어는 앞서가지만, 국어 습득이 늦게 되어 아이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했다. - 영어유치원에 대해 부정적 감정이 고착된 계기다.
8) 미국에든, 한국에서든 내가 ‘갑’이면 영어 본토 사람과 대화가 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물건을 사려하는 경우가 내가 ‘갑’인 경우다.) 이 때 영어권 사람이 나에게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표정조차 짓지 않는다. 본인은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내가 엉터리 영어를 구사해도 상대방이 대부분을 알아듣고, 잘못 알아들었을 경우에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한 후 나의 새로운 표현이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 언어는 권력 관계가 반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