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627

 

<너무나 인간적이지만 현실감각이 없는 당신에게> 서평 별점 ; ★★☆

 <후흑厚黑>을 읽고 내가 뭐가 잘못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제목에 홀려서 구입하고 읽은 책. 내용은 별로 없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면 읽으려면 나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다다익선多多益善,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모든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어떤 상황을 설명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어느 사자성어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될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다다익선이 더 많이 사용될 것 같다. 과유불급도 정점頂點을 지나기 전까지 다다익선의 형태를 띨 테니까. 하지만 보통의 사람의 경우 과유불급의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은 어느 글에서 읽은 것이고 어느 정도 일반화가 가능하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일을 판단하기 위해 플라톤-노자주의,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 디오게네스-양주주의를 사용한다. 이 정형은 나의 ‘사람과 쥐’의 글에서 본질주의, 단기적 맥락, 장기적 맥락도 1:1 상응한다. 플라톤-노자주의는 본질주의로,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는 단기적 맥락으로, 디오게네스-양주주의는 총괄적 맥락주의와 일맥상통한다. (<후흑> 내용에는 상당부분이 디오게네스-양주주의를 지향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도 많다.)

 

* 사람과 쥐 http://blog.aladin.co.kr/maripkahn/6925962

 

이 세 가지 중에서 세상일에 어느 것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정형은 무엇일까? (역시 나의 개인적 정형을 이용해 연구된 글을 읽은 바 없어 나의 개인적 견해가 되겠지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가 가장 흔하게 사용된다. 우선 생명의 진화도 단기적 맥락에서 진행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는 사람이 흔하다. 왜일까? 나는 자연이, 이 사회가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 정형이 적용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환경에 맞는 가치관이 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해 그 비율만큼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중점을 두거나 인류애라는 총괄적 관점에 중점을 두는 것이고 이보다 현실적인 것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본질주의(플라톤-노자주의)라면, 디오게네스-양주주의(아웃사이더)라면 생존이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세상을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양극단의 실천적 선택은 ‘사람과 쥐’ 우화에서처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맥락의 공간과 시간의 무한한 연장은 본질이 될 것이다. ‘Extremes meet’)

 

* 밑줄 긋기

p17 고마운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라 ; 필요한 사람에게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우리는 아직 지성이 이 정도 밖에 성숙되지 않은 것이다.

p70 사랑과 존경은 동시에 얻을 수 없다. ; 나는 과거에 사랑보다 존경을 앞세웠다.

p77 정의롭고 진실하게 행동하라 ; 정의롭고 진실하게 행동하려 해서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p78 망각이라는 약 ; 망각이 약이든 아니든, 나는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인데, 40년 동안 고쳐보려 했지만 잘 안 된다.

p82 선하게 살면 장수의 축복을 누린다. ; 경험적으로 전혀 동감할 수 없다.

p91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야단법석을 떨지 마라. ; 경우에 따라서는 ‘미끄럼틀’ 정형이 맞기도 한다. 사소한 시작이 큰 결과를 낳기도. 이런 일이 빈발하지 않더라도.

p111 윗사람의 비밀은 듣지도, 말하지도 마라/p112 윗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 윗사람의 부도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은 개인에게 이익이 되고 손쉽다. 그러나 옳은 것인가?

p114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려라 ; 쉬운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어려운 원칙까지 지키는 지는 미리 알기 어렵다. 또한 원칙만을 지키는 독불장군일 수도 있다.

p115 독불장군이 되지 마라 ; 자주 내가 독불장군인지, 지조와 신념을 지키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선다.

p119 유연한 태도를 길러라 ; 잘 안 된다니까!

p126 충분한 능력을 갖추되, 적당히 보여주어라 ; 현대 사회는 각성제를 복용할 정도 자신을 희생해야 그나마 생존 가능성이 있는 성과 사회다. 충분한 능력을 갖추기도 적당히 보여주기도 어렵다.

p171 현실감각이 없으면 쉽게 조롱의 대상이 된다. ; 실감하는 바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당대에 조롱받던 사람이 후대에 위인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물론 내가 위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p217 잘 모를 때는 안전한 길을 가라 ; 그래서 우리나라 청년들이 고시에 매달리지 않는가.

p229 모든 일은 결과로 평가 받는다 ; 그래서 성과 지상주의인 우리나라가 이 모양 아닌가. 현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불편하다.

p239 확신이 없으면 행동에 옮기지 마라 ; 나는 나의 삶조차 확신이 없다. 그러면 삶을 중단? 나는 기우를 갖고 있다. 내일 하늘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p246 크게 성공하려면 오래 준비하라 ; 크게 성공한 사람은 오래 준비한 사람이다. 그러나 오래 준비한 사람이 반드시 크게 성공하지는 않는다. 가끔 환경이 바뀌어 그 오랜 준비가 쓸모없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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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6-2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인간적이지만...>은 저도 읽었는데 점수가 좀 짜군요.ㅋ
저 같은 경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좀 더 좋게 읽었던 것 같아요.
음미해 볼 말도 많고.
저는 옛 성현의 말씀이니 왠지 별점을 높게 줘야할 것만 같더라구요.ㅋ

마립간 2014-06-27 12:55   좋아요 0 | URL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음미하면서 (밑줄 긋기 이외에도) 반론만 머리에 잔뜩 떠오르더라구요.^^ '세상을 보는 지혜'를 읽으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stella.K 2014-06-27 13:29   좋아요 0 | URL
헉,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세상을 보는 지혜>였네요.
하도 오래 전에 읽어 헷갈렸어요.ㅠ
저는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그 어렵다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정의, 도덕 이런 것만으로는 살아지지 안 잖아요.

저도 엊그제 <관상>을 봤는데 이종석이 바른 말하다가 눈을 잃은 것을 보면서
확실히 정치와 정의는 다른 건데 저 나이라면 저럴 수 있겠구나 싶더군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건가를 생각하면
이런 책은 확실히 읽어 줄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마립간 2014-06-27 14:05   좋아요 0 | URL
저는 안 그렇게 사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정의와 도덕만으로 살겠다는 사람은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에 불편해 합니다.

저도 관상을 며칠전에 봤는데, 이종석의 역할에 대해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7042601

푸른기침 2014-06-2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짧은 지식과 편견으로는 노자주의를 본질주의와 연결시키지 않고, 오히려 비본질주의와 관련짓는 편이지만, 마립간님의 글을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특히 '인간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히 독서하시는 모습이 마냥 부럽습니다.^^

좋은 저녁요~~~

마립간 2014-06-28 07:52   좋아요 0 | URL
노자와 본질주의 연결은 제가 동양 철학에 관한 교양 도서를 읽고 제 나름대로 판한 것입니다. 처음에 알라딘 서재에서 언급했을 때, 누군가 오류를 지적하거나 반론의 댓글이 있었으면 했는데, .... 댓글이 적은 서재라서 그런지, 이에 대해 댓글의 없어 다른 분의 검정 없이 제 생각을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푸른기침 2014-06-28 11:41   좋아요 0 | URL
짧은 소견 몇 자 더 적습니다.^^ 물론, 제가 철학에 그리 능통한 지식을 갖지 못해 나름 지금까지의 오독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 치우친 생각일 수 있을 겁니다. 절대로 마립간님의 글에 딴지거는 것 아닙니다. 전 마립간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ㅎㅎ 그냥 가볍게 읽어 주세요.

1. 님도 당연히 아시겠지만 플라톤이 본질주의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본질주의자입니다. 둘의 차이는 단지(단지라고 하기에는 틈이 많지만요) 본질이 개체를 초월해 있는지, 개체내에 존재하는지입니다. 어찌보면 서양 철학은 실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한 몇 개의 사조나 철학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본질주의입니다.
물론, 님께서 플라톤을 본질주의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단기적 맥락으로 대응시킨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대응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2. 서양철학도 잘 모르지만, 동양철학은 더더욱 잘 모르는 저입니다.
노자의 핵심 중의 하나는 당연 '道' 이겠지요.
노자의 '도'를 플라톤의 이데아에 억지로 쑤셔 넣는 학자들도 상당히 많은데, 이는 노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생각됩니다. 道라는 어감 때문에, 도덕경의 첫 구절 때문에 오해하기 쉬우나 道는 초월적이고 항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노자는 본질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有와 無의 대립 관계로 세상을 파악하는 비본질주의자입니다. 물론, 동양철학의 특성상, 아니 어쩌면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이, 이렇게 노자를 보는 것만이 꼭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원전을 더 풍부하게 만드니까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플라톤과 아리스트텔레스, 노자, 장자를 묶어 작은 페이퍼 하나 써 보겠습니다. 물론, 기대는 안 하셔도 좋을 만치 형편없는 글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제 댓글이 괜히 마립간님을 언짢게 하지는 않았을까 조금 걱정이됩니다.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고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꾸벅~~


사족 : 벌써 읽으셨을지도 모르지만, 노자에 대한 나름 괜찮은 책이 있어 소개드립니다. 얼핏 떠오르는 책이 이것밖에 없네요.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마립간 2014-06-29 15:57   좋아요 0 | URL
내용이 많아 페이퍼로 올렸습니다. 페이퍼 제목에 닉네임이 언급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던군요. 불편하면 제목에서는 닉네임을 삭제하겠습니다.

제가 서재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저의 생각을 다른 분을 통해 검증받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에게 일부 논쟁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저는 저 의견에 지적/반론을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읽지 못했습니다. 좋은 책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30 09:37   좋아요 0 | URL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는 도가로 대표되는 노자,장자의 도는 자연으로의 회귀'에 방점을 찍었더군요. 도가 이전 공자, 맹자는 유위有爲를 주장하며 인간이 개입해서 세상을 좋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도가는 無爲를 주장합니다. 자연 상태 그대로가 가장 완벽하다는 주의더군요 오히려 인간이 자연을 뜯어고칠려고 하다가 일을 그르친다고 말합니다. 아, 이거 노자 장자 공부 좀 해야 하는데..... 하여튼 제가 읽는 책에서는 그리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립간 2014-06-30 11:58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 도가 및 황로사상은 전체적으로 디오게네스-양주주의적인 면이 있습니다. 무위는 ‘무위이무불위 無爲而無不爲 ; 애써 하려고 하지 않지만 모든 일이 때에 맞게 잘 풀린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는 양주대신에 디오게네스-노장사상주의라는 표현을 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