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출판사 모던아카이브입니다.
신간 『사피엔스의 미래』는 인간의 미래'를 주제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
'독보적 경영저술가' 말콤 글래드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세계적 과학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가
2대 2로 벌인 토론을 생생하게 담은 책입니다.
과연 세계적 지성 4인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볼까요?
『사피엔스의 미래』출간 전 연재1회는
전병근 북클럽 오리진 지식규레이터의
'옮긴이의 말' #1로,
역자가 책을 옮기게 된 계기와
이 책의 주제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지금은 인간의 운명에 대해 질문해야 할 때
‘사피엔스는 이제 스스로 신이 되려 한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첨단 지식을 소개하는 웹진 Edge.org에 실린 글을 읽던 중이었다. 작년 3월의 일이다. 그 무렵 영문으로 출간된 신간의 저자를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대담자는 심리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석학 대니얼 카너먼. ‘죽음은 선택’이라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었다. 아버지와 아들뻘 되는 두 유대계 지식인의 대담 내용은 흔한 역사학의 담론 범위를 훌쩍 넘는 것이었다. 책을 킨들로 내려받아 읽기 시작했다. 자연선택이라는 진화 과정에서 인지혁명으로 만물의 정상에 오른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과학기술을 발판으로 신적인 존재가 되려는 단계에 와 있다는 이야기였다. 곧장 빠져들었다.
Edge.org에 실린 하라리와 카너먼의 대담 기사
그즈음 출판사 사람과 만난 자리에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듣고 있던 편집자가 책 판권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 같다면서 출간을 서둘러야겠다고 했다. 나는 출판사를 통해 하라리와 연락이 닿았고 이메일로 인터뷰까지 해 그때 준비하고 있던 특집 북섹션의 커버 스토리로 실었다. 섹션 제목이 ‘다가온 미래’였다. 그해 연말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가 국내에도 번역돼 나와 화제가 됐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 아마도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앞날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차원에서 바라보게 한 대중 교양서로는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책이 아닐까 한다.
2015년 말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모바일 기반 지식문화 채널인 북클럽 오리진을 시작하면서 첫 북토크(오프라인 모임) 때 내건 주제도 ‘디지털 시대, 사람의 길’이었다. 그 무렵 국내에 번역돼 나온 『인간의 품격』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를 인터뷰한 것과 『사피엔스』의 책 내용을 심화시킨 것이었지만 바닥에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 깔려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11월에 열린 캐나다의 멍크 디베이트가 내건 주제도 비슷했다. 인류는 진보하는가. 참 거창하면서도 대담한 물음이었다. 지금 왜 이 질문이 필요한가? 그에 대한 답변으로 옮긴이의 말을 대신할까 한다.
2015년 11월 진행된 멍크 디베이트.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가 격돌했다. ⓒMunkdebates
인류는 진보하는가
사실 이 물음은 근대 지식인들의 최대 화두였다. 당시엔 질문이라기보다 앞날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의 표방에 가까웠다. ‘인류는 진보한다’거나 ‘진보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이들이 더 많았다. 눈앞의 변화가 그런 기대를 낳을 만도 했다. 지식세계의 과학혁명, 경제 분야의 지리상 발견과 산업혁명, 정치사회 분야의 민주화와 더불어, 인류는 구태와 악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로 전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진보적 역사관의 등장이었다.
그때까지 인류 역사를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정한 패턴이 순환한다는 세계관, 다른 하나는 시작과 끝이 분명한 단선적 역사관이었다. 순환적 사관은 낮과 밤이 반복되고 계절이 되풀이되듯 인간 사회도 흥망성쇠를 오간다고 봤다. 왕조의 부침에 따라 세상의 명운을 이해한 것은 동서양이 비슷했다. 이런 원형의 사관이 직선적인 사관으로 바뀌는 데에는 유대-기독교 사상의 영향이 컸다. 이 믿음에 따르면 만물은 시작과 끝이 있고, 역사의 진행은 신의 섭리에 따른 것으로 이해됐다.
그 뒤를 이은 근대 계몽주의 사관은 신을 우주의 원리 혹은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의 빛을 통해 인간 사회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의 눈에 역사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하지만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단죄한 계몽주의 역시 기독교의 유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섭리가 이성적 원리로 바뀌었을 뿐 세상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목적론적 믿음은 그대로 답습했다. 오히려 이성의 시대야말로 진정한 진보의 출발점이라 믿었다.
물론 반론도 없지 않았다. 1749년 계몽주의의 물결이 거세던 유럽 중심부에서 반기를 든 장 자크 루소가 대표적이다. 당시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가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의 순화에 기여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벌인 논문 공모전에서 루소는 진보주의자들의 장밋빛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인간의 역사야말로 문명의 진보에 따른 도덕의 퇴화로 얼룩진 불행과 악덕의 창궐의 대서사”라고 반박한 것이다.
그 뒤에 전개된 역사의 현실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몽주의가 내건 이성 위에 쌓아올린 이른바 ‘근대의 기획’은 악몽 같은 사건들로 얼룩졌다. 비인간적인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확산, 제국주의와 양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사회주의의 파탄...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인류의 역사, 특히 근현대사는 내리막 길을 걸어온 것만 같다.
물론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와 해석 또한 이어져 왔다. 무엇보다 물질적인 면에서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평가에는 다수가 의견을 같이한다. 평균수명이 길어졌고 신체 조건이 뚜렷하게 향상 됐다. 전근대의 불합리한 관행들도 사라졌거나 격감했다.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을 옹호하는 민주주의 역시 최소한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는 폭넓게 확산됐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분위기는 다시 반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 다. 세계적으로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일상의 불안과 불만도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도 고장 났다는 소리가 들린 지 오래다. 국제 사회에서는 상호이해와 평화가 범위를 넓혀가는 게 아니라 갈등과 혐오, 테러 위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계화로 상품과 서비스는 더 다양하고 싸게 누릴 수 있게 됐다지만 왠지 내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는것 같지는 않다. 자동화로 편리해진다 싶었는데 내 일자리와 미래는 점점 불안해진다.
도대체 인류의 삶은 행복해지고 있는 건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런 ‘빅퀘스천’들이 잇따라 국내외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인문학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도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믿어왔던 인류 사회의 전개 방향과 기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멍크 디베이트가 이례적으로 인류의 진보를 주제로 내건 데에도 이런 문명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어느 국가가 더 잘사느냐의 차원을 넘어 인류 공동체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질 때가 됐다는 시대 분위기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_『사피엔스의 미래』 출간 전 연재 2회에 계속
옮긴이 전병근
다음카카오 북클럽 오리진의 지식 큐레이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공군사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 중남미 특파원을 지냈고 존스홉킨스대학교 부설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있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중심에 책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일에 전념하기 위해 〈조선비즈〉 지식문화부장을 거쳐 2016년 2월부터 모바일 기반 지식문화 채널인 북클럽 오리진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궁극의 인문학』과 역서로 『왜 지도자는 거짓말을 하나』가 있다.
『사피엔스』의 미래 [출간 전 연재]는
총 8회의 걸쳐 진행될 예정이고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회 - 옮긴이의 말 #1 번역을 하게 된 계기와 이 책의 주제는?
2회 - 옮긴이의 말 #2 멍크 디베이트는 어떤 행사이고 양측의 주요 주장은?
3회 - 옮긴이의 말 #3 토론의 쟁점은?
4회 - 옮긴이의 말 #4 토론 관전 포인트와 감상평은?
5회 - 사전 인터뷰 #1 알랭 드 보통과의 대화
6회 - 사전 인터뷰 #2 말콤 글래드웰과의 대화
7회 - 사전 인터뷰 #3 스티븐 핑커와의 대화
8회 - 사전 인터뷰 #4 매트 리들리와의 대화
* [출간 중 연재] 기간 중 좋아요, 추천을 하시거나 덧글을 달아주신 다섯 분께는 신간 『사피엔스의 미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