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간 전 연재]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 8회에서는

 제2장 '케이틀린 모란과의 대화'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케이틀린 모란과의 대화

케이틀린 모란과 멍크 디베이트 사회자 러디어드 그리피스



러디어드 그리피스

멍크 디베이트의 진행자 러디어드 그리피스입니다. ‘남자는 퇴물인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오늘 밤 토론에 앞서서 무대로 모시게 될 멋진 여성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영국에서 오신 『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의 저자 케이틀린 모란을 만나보겠습니다. 2011년 영국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캐나다와 미국에서도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요.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케이틀린 모란

안녕하세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러디어드라는 이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은 제가 만난 첫 러디어드예요. 


러디어드 그리피스

그런가요? 놀랍군요. 알고 보면 영국식 이름인데요. 물론 이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영국 골목골목을 뛰어다니지는 않지만요. 


케이틀린 모란

우리가 오래전에 전파해놓고서는 깜빡 잊은 것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렇게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기 위해서 외국에 나와야 하나 봅니다. 


러디어드 그리피스

그러게 말입니다. 먼저 케이틀린은 이 시대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페미니즘에 확고한 열정을 갖고 적극적인 활동을 펴고 계십니다. 모든 여성이 성차별이라든가 남녀평등을 가장 먼저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케이틀린 모란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러디어드 그리피스

같은 세대나 그보다 젊은 세대의 여성 중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거나 케이틀린이 주장하는 조직화된 운동 차원의 페미니즘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케이틀린 모란

왜냐하면 ‘페미니즘’이 마치 ‘러디어드’란 이름처럼 한동안 묵혀 있다 보니 사람들이 단어의 본래 의미를 잊어버렸기 때문이에요. 90년대 초반에는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페미니즘이 있었고 그 시절에 십 대를 보낼 수 있었다는 건 저에게는 행운이었어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팝스타는 비요크, 알라니스 모리셋, 라이오트 걸 밴드, 코트니 러브였습니다. 그때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습니다. 

   남자들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지금보다 적었고 자주 언급했지요. 커트 코베인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나는 열혈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다음에 스파이스 걸스가 등장했고 언젠가부터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대신에 ‘걸 파워’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역사 속에 등장했던 고리타분한 무언가가 되어버렸지요. 페미니스트란 멜빵 달린 작업복을 입고 화를 내면서 “나는 남자가 싫어!”라고 외치는 성질 고약한 여자라는 이미지로 오해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 작업복을 입고 “나는 남자가 싫어!”라고 소리 지르는 드세고 성질 고약한 여성분들을 상당히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불과 150년 전만 해도 남자들은 여자를 가축과 동격으로 여겼으니까요. 

   앞으로도 이렇게 화난 여자들이 나서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분들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셨고 가정 내 학대와 강간을 불법으로 만드셨습니다. 저는 화내지 않는 온건한 페미니스트 세대입니다. 저는 여자들이 훨씬 살 만해진 세상에 살고 있고, 남녀 차별적인 언사는 마음껏 비웃어줄 수도 있어요. 호사를 누리고 있는 현대 페미니스트죠. 


러디어드 그리피스

멋진 답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페미니즘이 자주 부딪치는 곤란한 상황이라든가 무너뜨려야 할 장벽과 한계는 무엇일까요?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었고 이제 많은 사람이 여성을 향한 폭력에 매우 민감합니다.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는요. 인도는 아마 아직 아니겠지만요. 우리가 넘어야 할 새로운 한계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케이틀린 모란

여성 할당제 도입이 중요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할당제에 관해서라면 찬반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는 우리 직장과 특히 의회에서 이 제도가 의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어떤 조직에 남성과 여성을 같은 비율로 채우게 된다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대거 영입되어서 멀쩡한 복사기를 망가뜨리거나 프로젝트를 망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회사에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지 않습니까? 회사와 일터에 이미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 수도 없이 들어와 있어요. 둘러보시면 지금도 사무실에서 멀쩡한 복사기를 망가뜨리고 주변을 지저분하게 해놓고 프로젝트를 망치는 월급 도둑들이 존재합니다. 남성분들 말이죠. 사무실을 전부 남자로만 채운다고 해서 일이 척척 풀리지는 않아요. 그중에 일부는 형편없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니 일 못하고 능력 없는 남자들 대신에 일 잘하는 여성들을 넣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는 남녀 비율 5 대 5 할당제 도입이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다소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들 몇몇이 들어간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거예요. 

   솔직히 직장 생활 오래 하신 분들을 모두 인정합니다. 어떤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일 잘하는 사람이 최대 딱 세 명만 있으면 됩니다. 일은 이 세 사람이 다 해요.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이 사람들이 심심하지 않게 주변에 어슬렁거리다가 말도 시켜주고 놀아주면 됩니다. 일 잘하는 사람들도 화장실 갈 때는 수다 떨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러디어드 그리피스

오늘 밤 토론의 상대편은 이 시대 남성은 점점 쇠퇴해 퇴물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할 텐데요. 이 주장에는 어떻게 반응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케이틀린 모란

제가 남자들을 전부 몰아내고 처치해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서 너무 고맙지 않으세요?


러디어드 그리피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케이틀린 모란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남자들을 수거해 저 커다란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않을게요.


러디어드 그리피스

저의 Y염색체가 하루는 더 살아남을 수 있겠네요. 


케이틀린 모란

제가 오늘 토론에서 이기면요. 제가 오늘 진다면 남자들은 지옥행 당첨입니다! 지금 이 공간에 있는 모든 남성은 (목을 자르는 손짓을 하며) 오늘이 지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러디어드 그리피스

아! 네. 그렇다면 그런 극단적인 주장에는 어떻게 반박할지 미리 맛보기로 보여주세요. 여성의 부상이 그렇게까지 세상을 바꿀 정도는 아닐까요? 아니면 남성의 후퇴가 과장된 것일까요? 아니면 둘 다일까요? 


케이틀린 모란

저는 남자 대 여자 이렇게 서로를 대결 구도로 놓고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접근하니까 자꾸 일을 그르치는 겁니다. 페미니스트로서 저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문장 중 하나가 “이건 페미니스트 이슈야”입니다. 보육 문제가 대표적인 예죠. 경제적 필요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둘 다 일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다음에 나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가 우리의 아이들을 키우는가?’죠. 이건 비단 페미니스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육 문제는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 모두의 문제예요. 

   어떤 사회 문제들을 ‘남자 문제’라든가 ‘여자 문제’로 분리해서 보는 식의 관점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것이 여자의 문제라고 설명할 때마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하잖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알아서들 하세요. 저희는 빠져드리겠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건 남자들의 문제입니다”라고 말하면 여성이 슬쩍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크고 작은 문제를 인류 공통의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말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같은 팀이잖아요. 그렇게 단순히 생각해야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성분들에게 어마어마한 호감과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 한 명과 결혼했고, 한 명을 낳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가족이 되기도 했네요. 저는 남성 여러분과 관련된 따뜻하고 다정한 추억이 꽤 많답니다. 



_『남자의 시대는 끝났다』출간 전 연재가 종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케이틀린 모란


영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칼럼니스트. 8남매 중 장녀로 11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을 했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어 16세에 자전적 소설 『나모 연대기』를 발표했고, 이후 음악 방송 진행자와 방송 작가로도 활동했다. 18세부터 현재까지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에 칼럼을 쓰고 있다. 2011년 『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를 펴내 큰 사랑을 받았다. caitlinmoran.co.uk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출간 전 연재]는 

총 8회의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1회 - 들어가는 말 #1 토론 배경 : 여자의 부상과 남자의 추락

2회 - 들어가는 말 #2 토론자 소개 :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 4인

3회 - 들어가는 말 #3 찬반 양측의 핵심 주장

4회 - 들어가는 말 #4 토론 결과는?

5회 - 사전 인터뷰 #1 해나 로진

6회 - 사전 인터뷰 #2 커밀 팔리아

7회 - 사전 인터뷰 #3 모린 다우드

8회 - 사전 인터뷰 #4 케이틀린 모란


* 도서 정보 : 7.3일 출간되었고 지금 출간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 [출간 중 연재] 기간 중 좋아요, 추천을 하시거나 덧글을 달아주신 다섯 분께는 신간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를 보내드립니다. 이벤트 당첨자는 7.8일에 발표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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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17-07-06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긍정적인 페미니스트 인것같습니다
진보적이지 않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이해 하다보면 남녀 관계가 좋은 쪽을 발전할것 같군요

모던아카이브 2017-07-10 10:36   좋아요 1 | URL
네. 케이틀린 모란이 남녀의 화합을 강조하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출간 전 연재 기간 중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7.12(수)일까지 여기 비밀 댓글로 성함, 주소, 전화번호 남겨주시면 도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7-12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4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부기 2017-07-25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팔아먹으려고 만든 자극적인 제목이 대단하군요,네네,남자여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