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간 전 연재] 사피엔스의 미래 - 5회에서는

 제2장 '해나 로진과의 대화'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해나 로진과의 대화

해나 로진과 멍크 디베이트 사회자 러디어드 그리피스


러디어드 그리피스

다음은 해나 로진입니다. 〈애틀랜틱〉의 에디터이자 오늘 밤 토론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책 『남자의 종말』의 저자입니다. 고등학교 때 토론반에서 활발히 활동했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해나 로진

네, 맞아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제가 남자들로 가득 찬 방에 와 있다는 거예요. 이러면 늘 인터뷰가 어색해지더라고요. 하지만 잘 해보겠습니다. 


러디어드 그리피스

어떤 면에서는 본인이 오늘 밤 토론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해나 로진

왜요? 제가 고등학교 토론반 학생이어서요? 아니면 제가 토론을 할 줄 알아서일까요? 네. 어쨌든 저는 고등학교 때 토론광으로 살긴 했죠. 학창 시절의 거의 80%를 전국의 각종 토론 대회에 참가하며 보낸 것 같아요. 물론 그게 저의 매력 지수를 높여주지는 않았습니다만.


러디어드 그리피스

무슨 그런 말을, 요즘은 토론을 잘하는 사람이 대세인걸요. 먼저 책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젠더 문제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탁월한 비유를 했더군요. ‘유연한 여자plastic women’와 ‘뻣뻣한 남자cardboard men’라고 표현했는데 조금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해나 로진

제 주장의 핵심은 세계 경제가 급변하고 있고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여성이 남성보다 변화에 더 쉽게 적응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더 똑똑해서일까요? 글쎄요. 그건 아닐 겁니다. 여성들이 더 지능이 높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조건에서 테스트를 받으면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여성들이 현대 사회에 더 잘 적응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걸까요? 저는 생물학적 결정론자가 아니라 그렇게 믿지도 않아요. 수많은 경제학자와 이야기해본 결과 얻은 결론은 여성들이 더 유연하고 적응이 빠르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것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약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갖게 된 성질이겠지요. 약자는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살아남아야 했기에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보다 눈치가 빠르고 융통성이 있죠. 반면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점점 완고해지고 엄격해지는 성향이 있고요. 저는 우리가 비로소 여성의 위치를 조정해 나가는 역사적인 순간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연한 여자’는 유연한 여성의 특징을 가리키고, ‘뻣뻣한 남자’는 적응하고 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남성들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런 특징들은 단순히 경제나 우리가 택하는 직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에요. 남성다움이라는 개념과도 관련이 있죠. 


‘남성의 신비’에 대해 말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이 의미하는 남성성은 1962년도의 여성이 처한 상황에서의 여성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1962년의 사회는 여성들을 협소한 방식으로 정의했죠. 여성들은 작은 공간에만 갇혀 어디로 갈 수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마 그 상황이 오늘날의 남성들이 처한 상황과 약간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성성을 너무 편협하게 정의 내리기 때문이지요. 


러디어드 그리피스

저도 그 점을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들은 가족을 반드시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능력이 점차 사라진다는 점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책에 썼더군요. 전통적으로 가장의 역할이 남성성이라는 개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처럼 공장이 줄줄이 외국으로 이전하고 제조업이 쇠락한 상황에서 남성이 집안의 기둥이라는 개념은 무너질 수밖에 없지요. 


해나 로진 

맞습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저메인 그리어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고전적인 저작을 보시면 여성이 가정 안에서 왜 ‘제2의 성’일 수밖에 없는지 깨닫는 부분이 나옵니다. 여성들이 약자의 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무조건 남성들이 부양자이고 여성들은 피부양자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그런 조건이 해체되고 있어요.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생계를 책임집니다. 상위 계층의 소득이 비슷한 남녀는 결혼 제도를 좀 더 평등하게 바꿔가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층에서는 남자들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어요.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하고 자녀들에게도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바뀌는 문화 풍조가 이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리라 예상합니다. 이제 더는 남성이 우월한 존재가 아닙니다. 지난 천년 동안 이해해왔던 식의 위계질서는 해체되고 있습니다. 


러디어드 그리피스

그러면 하위 계층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에서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점차 많아지는 새로운 세상에서도 어린이들이 충분히 잘 성장하리라고 생각하세요?


해나 로진

남자의 종말 현상은 지금 현재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사회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임금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임금 불평등과 빈부 격차에 관련된 거의 모든 질문의 대답과 같다고도 할 수 있어요. 


당신이 상위 계층 출신이면 이 세상은 당신 손안에 있습니다. 전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부모님은 그 어느 때보다 자녀에게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투자하죠. 그런 가정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살기가 더 낫죠.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계층은 어떻게 될까요? 국가에 따라서 대졸자들은 전체 인구의 30~35% 정도니까 대졸자가 아닌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죠. 이들에게 인생은 이전보다 더 팍팍합니다. 그런 이들은 아마 싱글맘 가정에서 성장했겠지요. 싱글맘들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하루하루가 고달프기도 했을 겁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생활비는 부족하고 어머니는 그리 좋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 않겠죠. 남자의 종말이 모든 여성이 근사한 고소득 전문직으로 일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일을 하고는 있지만, 장시간 일하고도 임금이 적지요.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방을 가진 마지막 사람’(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부러움을 살 만한 입장은 아니죠. 아이와 남겨진 엄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지만 쉽지 않지요. 이 또한 큰 문제이기도 하죠. 


_『남자의 시대는 끝났다』출간 전 연재 6회에 계속


             


해나 로진

미국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 이스라엘 출신으로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자랐고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여러 해 동안 시사 잡지 애틀랜틱, 슬레이트에 칼럼을 썼다. 두 번째 책 남자의 종말에서 남녀 간 힘의 역전에 따른 사회 질서의 재편을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인비저빌리아라는 여성 토크쇼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hannarosin.com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출간 전 연재]는 

총 8회의 걸쳐 진행될 예정이고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회 - 들어가는 말 #1 토론 배경 : 여자의 부상과 남자의 추락

2회 - 들어가는 말 #2 토론자 소개 :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 4인

3회 - 들어가는 말 #3 찬반 양측의 핵심 주장

4회 - 들어가는 말 #4 토론 결과는?

5회 - 사전 인터뷰 #1 해나 로진

6회 - 사전 인터뷰 #2 커밀 팔리아

7회 - 사전 인터뷰 #3 모린 다우드

8회 - 사전 인터뷰 #4 케이틀린 모란


* 도서 정보 : 7.3일 출간 예정이고 지금 예약 판매 중입니다.















* [출간 중 연재] 기간 중 좋아요, 추천을 하시거나 덧글을 달아주신 다섯 분께는 신간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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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17-06-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화에 적응하는 여성 이란 말이 인상적이네요
가부장적 사회에서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던 남성들이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욱 많은 직업을 여성에게 양보해야 할것 같습니다

paperdo 2017-06-30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나 로진의 이야기가 매우 설득력있게 느껴지는군요.

아이시스 2017-07-24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적으로 수백년간 여성에게 요구해온 많은 절제들이 여성들을 진화하게 만들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또한 여성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노력 중에 왜 눈치를 봐왔는지도 알겠군요. 과도기의 시대에 태어난게 글을 읽고 새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