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간 전 연재] 사피엔스의 미래 - 5회에서는

 제2장 '알랭 드 보통과의 대화'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알랭드 보통과의 대화


멍크 디베이트 사회자인 러디어드 그리피스와 알랭 드 보통 ⓒMunkdebates


러디어드 그리피스

이 자리에는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 씨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 말콤 글래드웰 씨와 한 팀을 이뤄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주제를 두고 반대 입장에서 의견을 펼 예정입니다. 보통 씨, 토론토에서 뵙게 돼 기쁩니다. 


알랭 드 보통

감사합니다. 


러디어드 그리피스

오늘 밤 토론에 어떻게 임하실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제 생각에 보통 씨는 지금 세간의 사회적 합의로 보자면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 씨 편을 들 것으로 우려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나 앞으로 닥칠 일에 관해서는 낙관적일 것 같다는 말이지요. 


알랭 드 보통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배후에는 대단히 강력한 낙관론의 두 가지 동인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바로 비즈니스와 과학입니다. 우리는 상업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무엇이든지 팔려고 하면 자신이나 자신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긍정적인 얘기를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의 분위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쾌활합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엄청난 변화를 약속합니다.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와 과학이라는 두 가지 아주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가 적절한 행복과 만족을 얻는 것을 주기적으로 완강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할 때 교육 같은 것을 들곤 합니다. 그런 문제들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올바른 교육 체계만 갖출 수 있다면 만사가 잘 풀려나갈 거라고 보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끝이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경제를 계속 성장시켜 빈곤을 퇴치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게 잘 풀려 나갈 거라고 말합니다. 또 전쟁과 분쟁의 종식이 문제의 해법이라고도 하겠지요. 의학을 둘러싼 희망도 대단히 큽니다. 의학을 어느 수준까지만 발전시킬 수 있다면 많은 고통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저는 스위스 사람입니다. 스위스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한 나라에서 살아본 셈입니다. 지금 스위스는 우간다나 라이베리아 같은 나라와 비교하면 발전 정도가 500년 가까이 앞서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소식은 그런 스위스에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이른바 제1세계 나라들의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보통 남을 내려보거나 젠체하는 것처럼 비칩니다. 마치 실제로는 문제가 없는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실재할 뿐 아니라 인간 존재를 망쳐놓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밤 제 이야기의 초점은 상당 부분 이런 제1세계 국가의 문제가 무엇이며,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이 이 지구상에서 삶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우리의 거대한 비전을 얼마나 저해하는지에 맞춰질 것입니다. 


러디어드 그리피스

비단 피라미드의 최상층부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일 뿐 아니라 실제로 정말 심각하고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제1세계 국가의 문제 실례를 한두 가지 들어주실 수 있나요? 


알랭 드 보통

경제 발전의 진정한 비극 중 하나는 사람들의 물질적 조건을 향상시키면 인간이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40년도 더 전에 리처드 이스털린이라는 경제학자가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관한 유명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사회가 모든 면에서 극도로 부유하다고 해도, 그 이상을 추구하는 욕망과 타인에 대한 부러움, 지위욕과 불안은 지속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경제적 불만을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남과의 비교는 사회에서 근절할 수 없는 일종의 풍토병이며,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불만족의 느낌은 억만장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합니다. 무작정 부를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생각을 해봐야 할 게 많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전 세계 사람을 억만장자로 만든다고 해도 경제적인 급변과 불행, 탄식은 존재할 겁니다. 부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가령 스위스 치과의사의 소득 수준만큼 부를 누리게 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걸로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조차 500년이 지난 후에야 지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러디어드 그리피스

오늘 밤 상대편으로부터 듣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 주장에 대해 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아마도 데이터에 근거를 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은데요. 가령, 질병 퇴치나 개발도상국 전반에 걸쳐 극심한 빈곤의 감축, 지구 전역에 걸쳐 기대수명이 전반적으로 얼마나 올라갔는지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00여 년 전부터 데이터 추세를 보면 해당 수치를 나타내는 선들이 아주 인상적이게도 보기 좋게 위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견에 어떻게 답하실 건가요?


알랭 드 보통

낙관적인 상대 토론자들이 빠뜨리고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훌륭한 분들이 가리키는 상향 곡선을 부인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교육 기준을 높이고 사람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을 대규모로 늘리는 능력 같은 것과 더불어, 그런 교육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는 지속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계몽주의가 내건 위대한 꿈은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편견과 부패한 생각, 나쁜 충동을 포기할 것이고, 이성의 빛 아래에서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마치 햇살 아래 안개처럼 사라질 거라는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육 받은 사람 사이에서도 분쟁이 줄지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봐왔습니다. 교육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는 의학도 교육과 비슷합니다. 그동안 의학계에서 이룬 모든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사멸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작은 아마겟돈, 자신만의 묵시록에 직면해 있습니다. 물론 심장에 대한 지식이나 암 치료법, 기타 그와 유사한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도 못했고 그럴 수도 없을 겁니다.


저는 인간이라는 종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 미래의 인간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닐 겁니다. 천 년 뒤에는 죽지 않는 종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믿습니다. 이 새로운 종은 지식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서 항상 행복해하고 천성이 공격적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다른 종일 것입니다. 그런 종이 출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 그 종은 인류를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500년 내 어느 시점에 더 낫게 설계된 신종 인간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_『사피엔스의 미래』 출간 전 연재 6회에 계속


알랭 드 보통             


1969년 스위스 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킹스칼리진런던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23세에 발표해 200만 부가 팔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사랑, 행복, 불안 등 현대인의 관심사를 주제로 한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냈다. 2008년에는 현명하게 잘 사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 성인 교육 기관 ‘인생 학교’를 설립했다. 


저서로 2016년에 발표한 신작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비롯해 『뉴스의 시대』, 『인생학교 섹스』, 『영혼의 미술관』, 『일의 기쁨과 슬픔』, 『공항에서 일주일을』, 『행복의 건축』, 『불안』 등이 있다. 

             

『사피엔스』의 미래 [출간 전 연재]는 

총 8회의 걸쳐 진행될 예정이고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회 - 옮긴이의 말 #1 번역을 하게 된 계기와 이 책의 주제는?

2회 - 옮긴이의 말 #2 멍크 디베이트는 어떤 행사이고 양측의 주요 주장은?

3회 - 옮긴이의 말 #3 토론의 쟁점은?

4회 - 옮긴이의 말 #4 토론 관전 포인트와 감상평은?

5회 - 사전 인터뷰 #1 알랭 드 보통과의 대화

6회 - 사전 인터뷰 #2 말콤 글래드웰과의 대화

7회 - 사전 인터뷰 #3 스티븐 핑커와의 대화

8회 - 사전 인터뷰 #4 매트 리들리와의 대화


*『사피엔스의 미래』출간 예정일은 10월 24일(월)입니다. 지금 예약판매가 진행 중입니다.

예약 구매하는 분께 특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이벤트 바로가기 : https://goo.gl/5UrR7K


* [출간 중 연재] 기간 중 좋아요, 추천을 하시거나 덧글을 달아주신 
다섯 분께는 신간 『사피엔스의 미래』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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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2016-10-2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의 인간이 사피엔스가 아닐 것이라는 말이 흥미롭네요. 책 출간일이 기다려집니다

모던아카이브 2016-10-21 08:39   좋아요 0 | URL
네. 기대해 주세요^^

Chloe 2016-10-22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 드 보통과의 대화라서 더 열심히 봤는데요.
직접 대화를 들은것도 아닌데 이미 저는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제대로 이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만 드네요.

마키아벨리 2016-10-2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주제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특히 인류의 앞날이 최근처럼 불확실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기때문에... 유발 하라리의 책의 후속편 같기도 하고 ...
하지만, 토론에 참가한 분들의 조합이 무척 특이한 것 같습니다. 스티븐 핑커의 경우는 관련된 연구를 해오신 것 같지만 말콤 글래드웰의 경우는 자기계발서, 알랭 드 보통의 경우는 문학 및 철학의 분야라 어떤 이야기가 오갈 지 전혀 상상이 안됩니다. 사실은 그런 이유로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담론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기대됩니다.

계란 2016-10-3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적인 낙관이 아니네요 ㅎ